국내 유일 '공장 내 기차역', SK 미래기지로 변신

입력 2018.10.12 11:40

전국에서 유일하게 공장 안에 있는 기차역 ‘장생포역’이 SK이노베이션(096770)의 미래 정유사업 핵심기지로 탈바꿈할 준비를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에너지는 1953년부터 64년 동안 석유제품을 수송했던 간이역 자리에 1조원 규모의 저유황유 생산설비를 짓고 있다.

지난 8일 울산광역시 남구 고사동에 있는 SK이노베이션 울산CLX(콤플렉스)에 들어서자 공장부지 정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장생포역 주위에 깔려 있던 철로는 이미 걷어냈고, 흙바닥을 다지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낡은 2층 건물인 장생포역 역사(驛舍)만 덩그러니 남아 예전에 이 곳이 기차역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난 8일 SK이노베이션 울산CLX에서 신규 설비를 건설하기 위한 부지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조지원 기자
◇ 울산 시민도 모르는 화물전용 간이역

장생포역은 1953년 한국전쟁 도중 군수용 유류를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이다. 당시에는 송유관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에너지 수송 대부분이 장생포역을 통해 이뤄졌다. 대한석유공사(현 SK에너지)가 1964년 국내 최초로 정유공장을 가동할 때까지만 해도 장생포역은 공장 바깥쪽에 있었다. 이후 공장이 차츰 확장하면서 장생포역은 SK 공장 내부로 편입됐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공장 안에 있는 기차역이 됐다.

장생포역은 여객 수송을 하지 않는 화물 전용 역사로 활용됐다. 공장 직원이 아니면 접근조차 어려워 울산 시민도 장생포역이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가 관리하는 정식 기차역이여서 역장과 역무원이 있었을 뿐 아니라 한 때 KTX 표 예매도 가능했다. 과거에는 명절마다 공장 직원들이 장생포역에서 표를 예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SK에너지는 석유제품 대부분을 송유관, 탱크로리(액체 운반용 화물차), 선박 등으로 운송했지만, 일부 제품은 유조화차(철도)를 이용했다. 장생포역은 최근까지 하루 평균 열차 12대를 운행하며 연간 88만t 규모의 경유, 등유, 벙커C유 등 석유제품을 동해 남부선을 따라 경북에서 강원도까지 실어 날랐다.

하지만 장생포역은 작년 12월을 마지막으로 기차가 운행하지 않는 역이 됐다. 장생포항을 주로 이용하는 SK에너지가 신설공장 부지로 기차역과 철로가 있던 자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SK 울산CLX는 826만㎡(약 250만평)로 여의도 면적 3배 규모지만, 크고 작은 정유‧화학공장 50여개로 꽉 차있다. 더 이상 공장을 지을 공간이 없어진 SK에너지는 수송 비중이 적은 철도 운송을 중단하기로 했고, 한국철도공사와 협의를 거쳐 역을 폐쇄하기로 했다.

울산CLX 내 장생포역 기차역 전경 /SK에너지 블로그
◇ 2020년 IMO 환경 규제 대응 위해 저유황유 생산 설비 신설

SK에너지가 장생포역 부지에 짓는 공장은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Vacuum Residue Desulfurization)다. SK에너지는 작년 11월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VRDS 신설을 결정했다. 하루 생산량 4만배럴 규모로 2020년 완공 목표다. 올해 안에 부지 정리 작업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장 건설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VRDS는 감압잔사유(VR)에 수소를 첨가해 탈황반응을 일으켜 경질유나 저유황유를 생산하는 설비다. 감압증류공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감압잔사유는 아스팔트나 고유황유 등 저가제품으로 쓰이는데, VRDS에서 황 함유율을 낮추면 저유황유‧디젤‧나프타 등 고부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특히 저유황유는 IMO의 황산화물(SOx) 배출규제로 수요 급증이 예상되는 제품이다. IMO는 2020년 1월 1일부터 세계 모든 해역에서 운항하는 선박을 대상으로 배출가스에 포함된 황산화물 비율을 기존 3.5%에서 0.5% 이하로 제한하는 환경 규제를 시행한다. 이는 해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규제라는 평가를 받는다.

해운사가 IMO 환경 규제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선박에 탈황장치(스크러버)를 설치하거나 황 함유량이 적은 저유황유를 쓰는 방법이 있다. LNG(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쓰는 선박을 새로 건조하는 방법도 있다. 오래 전에 건조한 노후선박은 탈황장치를 설치할 경우 투자비를 모두 회수하기 어려워 기존 연료유보다 값비싼 저유황유를 쓸 수밖에 없다. 해운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지만, 정유사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SK에너지는 해상 연료유 시장이 황산화물 0.5% 미만인 저유황유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VRDS 신설 뿐 아니라 바다 위에서 저유황유를 생산하는 해상 블렌딩 사업도 운영 중이다. 초대형 유조선을 이용해 중유와 황 함량이 적은 선박용 경유 등을 섞어 저유황유를 만든 뒤 바로 선박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전우제 흥국증권 연구원은 "IMO 규제로 인한 정제마진 개선폭을 배럴당 1.5달러 이상으로 추정한다"며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연간 영업이익 6600억원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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