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도 나선 조선사 갑질…협력사 죽이는 '선시공, 후결제'

조선비즈
  • 전재호 기자
    입력 2018.10.11 06:00

    물량 미리 납품하고 정산은 나중에…대금 놓고 갈등
    협력업체 "밉보이면 문 닫아야…사실상 강제로 수용"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 업체에 불공정 거래를 강요한 혐의로 현대중공업(009540)에 대한 직권 조사에 착수하면서 조선업계에 만연해 있는 ‘선시공, 후결제’ 관행이 개선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시공, 후결제’는 협력업체가 원청업체의 요구에 따라 미리 물건을 제작하고 나중에 정산받는 식인데, 협력업체는 원청업체가 실제 들어간 돈보다 적은 금액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사내 협력업체인 대한기업은 현대중공업이 공사대금(기성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11일 주장했다. 김도협 대한기업 대표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지난 6월의 경우 직원 임금 등으로 총 5억6000만원을 썼는데, 현대중공업은 기성금으로 3억3000만원만 줬다"며 "이런 식으로 적자가 누적되면서 최근 3년간 빚만 20억원이 쌓였다"고 했다.

    지난 5월 촬영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일감이 없어 독(dock·선박조립시설)이 비어있다./주완중 기자
    대한기업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매주 스케줄표를 협력업체 주고 기한 내 물량을 납품하라고 요구한다. 문제는 납품한 물량에 대한 단가를 산정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이 선박 블록(Block·선박을 만들기 위해 일정한 크기로 분할해 만든 제품) 10개를 한 달 안에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협력업체가 200만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정산은 100만~120만원만 이뤄지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협력업체가 공사대금을 부풀린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10명의 인력만 쓰고도 제품을 만들 수 있는데, 20명의 인력을 쓰고 더 쓴 만큼 돈을 달라는 것은 들어주기 어렵지 않느냐"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또 사전 계약을 원칙으로 하고 예상치 못한 작업이 발생할 경우 정산 개념으로 본계약에 추가 계약을 체결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협력업체들은 현대중공업이 제시한 인력만으로는 현대중공업이 요구하는 공정을 맞추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김 대표는 "현대중공업은 10명의 인력으로 충분한데 20명을 투입했으니 나머지 돈은 못 주겠다고 하는데, 연장·주말 근무를 안 하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일정을 주니 거기에 맞추기 위해 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적은 인력으로 공정을 맞출 수 있다면 일부러 인력을 더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협력업체들은 현대중공업이 제시한 납기를 맞추지 못하면 업체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는다. 현대중공업은 매년 한 차례씩 협력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는데, 평가 점수가 낮은 업체와는 재계약을 안 할 수 있다. 협력업체는 현대중공업과 재계약이 안 되면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해 현대중공업이 요구하는 납기를 무리해서라도 맞추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사내 협력업체는 150개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김 대표는 "다른 사내 협력업체도 비슷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안다"며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니 다른 업체로부터 연락이 많이 온다"고 했다.

    ‘선 시공, 후 계약’은 현대중공업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대우조선해양(042660)은 작년 12월 1143건의 하도급 계약 서면을 지연 발급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2억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우조선은 2013년 1월 30일부터 2016년 11월 30일까지 18개 수급사업자에 물품 제작 작업을 위탁하면서 1143건의 하도급계약 서면을 수급사업자가 작업을 시작한 이후에 발급했다. 이 중 592건은 수급사업자가 작업을 완료한 후에 계약서면을 발급했다.

    하도급법 제3조 1항은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제조 등을 위탁하는 경우나 위탁 이후에 계약내역을 변경하는 위탁을 하는 경우 대금과 지급방법, 공급원가 변동 시 대금 조정요건 등의 내용을 담은 서면을 발급하도록 하고 있다. 공정위는 당시 대우조선해양을 제재하면서 "서면 지연발급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조선경기가 예전만 못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갈등도 심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조선경기가 회복되면서 발주가 늘고 선박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발주량이나 선박 가격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최근 초대형유조선(VLCC·Very Large Crude-oil Carrier)의 가격은 9150만달러(약 1035억원) 수준인데, 2008년 9월엔 1억6200만달러에 달했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조선업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원청업체도 가격 경쟁이 심해졌다. 불황이 이어지면서 원청업체와 협력업체 간 갈등이 불거지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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