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역 주변 주유소 42개, 기름값 전쟁 20년

조선비즈
  • 조지원 기자
    입력 2018.10.10 06:00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국내 휘발유 값이 오름세를 타고 있다. 10월 첫째 주 국내 평균 휘발유 값은 L(리터)당 1659.55원으로 14주 연속 올라 3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은 휘발유 가격이 전국에서 가장 비싼 지역으로 L당 평균가격은 전국 평균보다 약 100원 비싼 1754.14원이다. L당 2300원이 넘는 초고가 주유소도 3곳이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전국 평균보다 휘발유값이 싼 지역이 있다.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에서 천호대교을 지나 상일동까지 가는 천호대로 주변에는 L당 1640원대인 휘발유를 쉽게 볼 수 있다. 지하철 5‧7호선 군자역이 있는 능동, 중곡동에서도 L당 1700원을 넘는 주유소를 찾기가 어렵다.

    광진구 군자역 인근 GS칼텍스 용마주유소 /조지원 기자
    광진구 군자역 일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주유소가 많고 가격 경쟁이 심한 곳으로 유명하다. 군자역 반경 3㎞ 안에는 주유소가 42곳 있다. 서북쪽으로 한양대, 서울시립대부터 동남쪽으로 워커힐호텔, 동서울터미널까지 이르는 지역에 SK이노베이션(096770)주유소 15개,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도 각각 10개씩 있다. 에쓰오일과 알뜰주유소는 각각 5개, 2개씩 있다.

    천호대로 인근에 주유소가 몰린 이유는 차량 통행량이 많기 때문이다. 천호대로는 답십리역부터 천호대교를 지나 상일동까지 잇는 왕복 10차선 도로로 1976년 개통됐다. 도로 폭이 넓은데다 과거 하루 16만대가 출퇴근길로 이용했던 청계고가도로와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이 많았다. 주말에도 나들이 차량으로 붐볐다.

    특히 장안평역부터 군자역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중고차 매매단지와도 인접해 있어 주유소 명당으로 꼽혔다. 1995년 주유소 간 거리 제한이 완전 폐지된 이후에는 200~300m마다 한 개 꼴로 주유소가 들어섰다. 주유소 간 가격 경쟁은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군자역 인근 주유소 현황 /그래픽=김란희
    ◇ 능동주유소, 박리다매 전략으로 경쟁 주도…다른 주유소 동참에 최저가 지역 등극

    군자역 일대 기름 값 경쟁을 주도하던 곳은 군자역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현대오일뱅크 능동주유소다. 1993년 세워진 능동주유소는 당시에는 에쓰오일 폴(상표) 주유소였다. 이 주유소는 2000년대 초반부터 파격적인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을 내세웠다.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더라도 무조건 많이 팔고 보겠다는 전략은 시장에서 통했다.

    고유가에 부담을 느끼던 소비자들은 먼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와 기름을 넣었다. 능동주유소는 지금도 인접 주유소 두 곳을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큰데, 1~2일 만에 다른 주유소 한 달 치 물량을 팔았다. 2006년 이후에는 한동안 서울 지역 내 판매량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능동주유소가 초저가 전략을 펼치자 인근 주유소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저가 정책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주유소 휘발유 값은 국제유가, 정유사 공급가격, 부지 임대료, 인건비, 기타 서비스 비용 등을 고려해 결정하는데 경쟁 주유소 가격이 가장 큰 변수다. ‘능동주유소 효과’로 천호대로는 서울 시내에서 기름 값이 가장 싼 지역으로 유명해졌다. 2014년에는 서울 시내에서 가장 저렴한 주유소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광진구에 있는 주유소가 차지할 정도였다.

    주유소 사장 A씨는 "주유소가 주변 주유소 가격에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 지역은 주유소가 밀집해 있었기 때문에 정도가 심했다"며 "능동주유소가 가격을 내리면 바로 옆 주유소가 따라 내리고, 다른 주유소가 따라가는 구조"라고 했다.

    지난 5일 군자역 인근 현대오일뱅크 능동주유소. 셀프 주유기를 이용하면 휘발유를 L당 1644원에 살 수 있다. /조지원 기자
    ◇ 치열해진 경쟁에 광진구 內 주유소 26곳에서 18곳으로

    하지만 이 일대도 최근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경쟁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버틸 수 없는 주유소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전국 주유소 숫자는 2010년 1만3000개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데, 광진구 내 주유소는 2009년 26개에서 2010년 23개로 줄었다. 현재 광진구 내 주유소는 18개다. 작년 7월에도 능동주유소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아차산역 인근 주유소 한 곳이 문을 닫았다.

    거래 정유사도 자주 바뀌었다. 능동주유소는 과거 에쓰오일에서, SK에너지를 거쳐 현대오일뱅크로 바뀌었다. 용마주유소는 정유사 간판을 떼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국내 첫 사례였지만, 3년 전 GS칼텍스로 전환했다. 현대오일뱅크였던 평안주유소는 현재 알뜰주유소다.

    능동주유소는 2016년 자영주유소에서 현대오일뱅크 직영주유소로 전환했다. 지금은 현대오일뱅크가 소유자에게 임대료를 지불하고 주유소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박리다매 전략은 유지하고 있지만, 마진도 남지 않을 정도의 극단적인 가격 경쟁은 피하고 있다. 아직도 서울 시내에서 판매량이 많은 주유소로 꼽히지만, 판매량 1위는 아니다.

    능동주유소 관계자는 "과거 천호대로 일대는 정도가 심할 정도로 경쟁을 펼치던 지역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소비자들이 가격이 저렴한 고속도로 주유소 등으로 많이 몰려갔다. 최근 추석 연휴 기간에도 절대적인 물량이 줄었다"고 했다.

    ‘가장 싼 주유소’란 타이틀은 강북구, 도봉구 등 다른 지역에 넘겨줬다. 8일 기준 강북구 북서울고속주유소는 L당 1617원, 수유동 주유소는 L당 1619원이다. 도봉구에도 도봉제일주유소(L당 1615원), 도봉행복주유소(L당 1617원) 등 저렴한 주유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그만하고 싶어도 소비자들이 1원이라도 더 싼 곳을 찾아가기 때문에 저가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며 "나보다 밑천 없는 사람이 먼저 떨어져나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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