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콘퍼런스] “기술혁명이란 ‘소프트뱅크 DNA’로 스타트업 사냥”

조선비즈
  • 장우정 기자
    입력 2018.10.10 08:00

    [Interview]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투자사’에서 ‘투자자’로 합류
    인류 행복에 도움 되면 투자
    3400억원 규모 펀드로 中 공략

    소프트뱅크그룹에서 유일하게 초기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소프트뱅크벤처스’를 이끌고 있는 이준표(37) 대표는 손태장 회장이 이끄는 싱가포르 투자회사 ‘미슬토’에서 ‘대사(ambassador)’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미슬토가 한국에서 투자사들을 물색하거나 관련 미팅을 진행할 때 주선하고 돕는 역할이다. 이 대표는 시간을 쪼개 손 회장과 미팅에 동행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는 미슬토로부터는 단 한 푼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미슬토가 손 회장이 100% 지분을 가진 회사라는 점을 떠올리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의 혈연관계를 고려한 ‘봉사’ 정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런데 9월 20일 서울 서초동 소프트뱅크벤처스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 입에서는 뜻밖의 답이 나왔다.


    이준표 카이스트 전산학과, 에빅사 창업, 소프트뱅크코리아 사업개발 이사, 엔써즈 전략총괄 부사장, 소프트뱅크벤처스 투자부문 파트너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2002년 에빅사(PC 원격 제어 소프트웨어 업체)를 창업하고 그해 겨울 일본에서 소프트웨어를 팔아보겠다고 다짜고짜 현지 친구네 집에 찾아갔어요. 한국에서는 돈 주고 소프트웨어 사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이 친구가 회장님 사모님과 굉장히 친해서 저에게 소개해줬는데, 그분께서 제 사정을 듣더니 남편을 만나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처음 손 회장님을 뵀어요. 아무것도 없는 한국에서 온 초라한 창업가에게 너무너무 잘해주셨어요. 밥도 사주셨고요. 소프트웨어 유통사를 갖고 있으니 거기서 유통해주겠다고도 하셔서 계약을 맺었죠.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존경하는 형님이에요."

    미슬토가 최근 교육 스타트업 ‘클래스팅’에 41억원을 투자하며 한국 시장 투자를 시작한 데도 이 대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대표는 "작년에 손 회장께 한국도 중요하다고, 한 번 오셔서 기업들을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오셔서 창업자들 수준과 기술적 역량을 보고 감탄하셨다. 바로 한국 담당 투자 파트너를 채용했다. 한국도 미슬토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시장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중퇴한 이 대표는 재학 중 ‘에빅사’를 창업했고 이후 ‘엔써즈(2007년 동영상 검색회사, 2011년 KT에 매각)’를 연쇄 창업했다. 당시 두 회사에 투자받았던 인연으로 2015년 아예 소프트뱅크벤처스 투자부문 파트너로 합류해 ‘투자자’로 변신했다. 올 5월부터는 대표를 맡고 있다.

    一 최근 들어 창업가 출신이 벤처투자자로 변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창업가는 본인의 일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만큼 앞에 주어진 일에 집중한다. 반면 투자자는 여러 창업가를 만나고, 창업가들이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돈을 대는 것은 투자자의 역할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여정에서 신뢰할 만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가이다. 창업을 해봤기 때문에 창업가들의 상황을 더 제대로 공감하고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一 소프트뱅크벤처스의 투자 철학은.

    "우리는 소프트뱅크의 100% 자회사로 소프트뱅크의 DNA가 있다. 소프트뱅크가 추구하는, 정보통신기술을 통한 기술 혁명과 이를 통해 인류를 더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기본 철학을 소프트뱅크벤처스도 공유한다. 따라서 인류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一 최근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인공지능(AI) 관련 업체에 잇달아 투자했다.

    "AI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시간과 비용을 어마어마하게 절약하고 있다. 우리가 투자한 의료진단 스타트업 ‘루닛’의 경우 의사 대신 기계가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검사 결과를 분석해 암 발병 여부 등을 판단하는 기술을 갖춘 회사다. ‘비프로일레븐’이라는 회사는 AI를 통해 축구선수들이 뛴 경기를 카메라로 찍고 이 결과로 승패 요인부터 작전까지 분석해 가이드를 제공한다. 일종의 코치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미 독일 분데스리가를 비롯해 7개국 120개 이상의 구단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람 대신 기계가 영화, 광고 등 콘텐츠를 제작해 비용을 낮추는 ‘어레이’라는 회사도 있다."

    一 비전펀드를 비롯해 소프트뱅크 다른 관계사들과는 어떻게 협업하나.

    "그동안 아주 작은 반도체 칩에는 AI가 탑재되기 어려웠다. AI는 강력한 연산력이 필요하고 그만큼 배터리도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올해 3월 투자한 미국 AI 반도체 회사 ‘미식(Mythic)’은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작은 칩에도 AI를 넣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회사에 대한 투자 타당성을 검토하고 실사하는 데 비전펀드 반도체 담당 심사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결정적으로는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 암(ARM)의 도움을 받았다. 이 회사 투자를 두고 다른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털과 경쟁하는 상황이었는데,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아들이면 ARM의 르네 하스 사장(IP 제품 그룹)을 미식 이사회에 앉히겠다’고 설득해 투자에 성공할 수 있었다. 미식은 이 제안을 듣자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우리의 투자를 받겠다고 답했다. 물론 사전에 ARM의 본사가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까지 가서 하스 사장께 도움을 구했다. 그룹끼리 시너지를 낸 최고의 사례다."

    一 올 들어서 패스트캠퍼스나 인테이크, 라엘처럼 정보통신기술과 동떨어진 분야에 투자한 것이 눈에 띈다.

    "라엘의 경우 만드는 제품 자체는 위생용품이지만 물류부터 배송, 고객 리뷰, 마케팅까지 모두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 아마존을 활용해 성공한 회사다. 좋은 제품만 있으면 고객들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실천했다. 인테이크는 적은 비용으로 신제품을 검증하고, 고객 데이터에 기반해 성장성 높은 제품을 주력 생산하는 식으로 혁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기술이 활용되는 만큼 일종의 ‘푸드 기술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一 한국 스타트업뿐 아니라 미국, 동남아시아, 이스라엘 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한국과 해외 투자 포트폴리오 비중은 40 대 60 정도다. 최근에는 중국 스타트업 투자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 돈으로 약 3400억원 규모의 중국 벤처 투자펀드를 조성했다. 중국에 사무실을 두고 다양한 기업들과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중국은 데이터도 많고 개인정보보호에도 비교적 자율적인 측면이 있어서 의외로 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규제도 한국보다 덜해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서비스도 재밌는 게 많다. 다양한 기술 스타트업에 본격적으로 투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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