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Notch]79 실리콘밸리의 노동 운동··· 혁신과 권익의 충돌 해법 찾을까?

조선비즈
  • 방성수 기자
    입력 2018.10.04 20:00

    ‘세계 기술 혁신의 심장, 실리콘밸리의 노동 운동이 예사롭지 않다.’

    미국의 유력 주간지 ‘아틀란틱’은 "전통 블루칼라 노동조합이 실리콘밸리 진출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가운데 화이트 칼라 근로자들이 정치, 사회 문제에 집단 목소리를 내는 등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 테슬라,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 기업이자 무인 매장 ‘아마존 고(GO)'를 통해 차세대 유통 혁명을 주도하는 아마존이 ‘노동 리스크’가 가장 큰 실리콘밸리 기업으로 꼽힌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디지털 대기업들의 노사 문제도 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다.

    테슬라의 프리몬트 전기자동차 공장 전경(사진 위). 500만 평방미터(165만평) 규모의 생산 시설에서 1만명의 근로자가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테슬라의 네덜란드 공장에서 조립된 전기 SUV인 ‘모델 X’가 고급 세단 ‘모델 S’ 자동차와 함께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사진 아래)./사진=테슬라, 블룸버그
    "테슬라 공장은 혁신과 노조의 격전지"

    ‘테슬라 자동차 공장은 기술 혁신과 전통 노조가 부딪치는 최전선이다.’

    미국의 IT 전문지 ‘더 버지'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테슬라의 노동 활동 방해 혐의에 대한 연방정부 산하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National Labor Relationship Board) 조사와 향후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지난 달 29일 보도했다.

    테슬라 직원 3명은 작년 9월 미국 자동차 항공 농업기계 노동조합(United Automobile Aerospace, and Agricultural Implement Workers·UAW)과 공동으로 테슬라를 노조 활동 방해 혐의로 전국노동관계위원회에 고발했다.

    사내 일을 외부에 발설하면 해고나 고발될 수 있다는 비밀준수 서약 서명을 강요하고, 사내 안전 문제 제기에 대해 일론 머스크 CEO가 "노조 설립을 포기하면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등 노조 활동을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슬라의 노조 설립 움직임은 작년 초 노조 창설을 주장하는 문건이 사내에 뿌려진데 이어 "테슬라 공장 근로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본격화됐다.

    1970년대 잦은 파업과 무리한 임금 인상, 과도한 복지 요구 등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 몰락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세력이 쪼그라든 UAW가 실리콘밸리에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테슬라를 공략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은 미국 기업이 소유한 자동차 공장 가운데 유일하게 노조가 없다. 자동차 노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자동차 노조’라 불리는 UAW가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추세에 맞춰 테슬라를 공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조 창설을 주장하는 근로자들에게 “자동차 노조와 함께 하면 테슬라 근로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메이저 자동차 노조의 목소리만 남는다"며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블룸버그
    테슬라는 "테슬라 근로자의 임금은 미국 자동차 산업 평균 보다 높다"며 "자동차 노조의 악의적인 개입"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CEO는 "20만명이 넘는 자동차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는 동안 자동차 노조가 한 게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자동차 노조가 개입하면 테슬라 근로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메이저 자동차 회사 노조의 목소리만 남는다"며 근로자들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2년 제너럴모터스(GM)가 세운 프리몬트 공장은 경영 악화로 1982, 2010년 두 차례나 폐쇄됐다. 테슬라는 2010년 5월 자동차산업 몰락의 상징이던 이곳을 인수, 1만여명의 근로자가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는 핵심 생산 기지로 변모시켰다. 테슬라는 캘리포니아주에서만 근로자 5만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1조달러 기업’ 아마존, 훌 푸드 노조 추진에 ‘전전긍긍’

    최근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하는 아마존도 테슬라에 대한 연방정부 조사를 불안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고 ‘더 버지'는 보도했다.

    아마존이 2017년 160억달러에 인수한 ‘훌 푸드’의 일부 근로자들은 지난 달 노조 창설을 주장하는 이메일을 전직원에 보냈다. 유기농 식품 전문 유통 기업인 훌 푸드는 미국과 영국 의 490개 매장에서 직원 9만1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노조 창설을 추진하는 근로자들은 최저 시급을 15달러로 인상하고, 퇴직 수당, 유급 육아 휴직 등을 신설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뉴욕 중심의 도소매, 백화점 노동조합들이 적극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그래도 동부 자영업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마존을 ‘탈세 기업’이라 비난하는 가운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민주당)이 세계 최고 억만장자로 등극한 제프 베조스 CEO를 겨냥한 ‘베조스 법’을 입안하는 등 정치권과 대중의 부정적 시선도 부담이다.

    샌더스 의원은 "아마존 같은 대기업 근로자의 상당수가 정부의 저소득 지원 프로그램 등 국가 지원을 받는다면 연방 정부는 그만큼의 세금을 회사에 부과해야 한다"는 ‘베조스법'을 발의했다. 지난 달 반노조 내용이 담긴 사내 교육 비디오가 언론에 공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아마존이 지난 1일 미국과 영국 근로자들의 최저 시급을 13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한다고 전격 발표했으나 안팎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는 올해 회사 시가 총액이 1조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최고의 부자(2018년 7월 현재 개인재산 1500억달러 추정)로 등극했지만 훌 푸드의 노조 설립 움직임과 짠돌이 기업이란 비난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존을 탈세 기업이라 비난하며 세무 조사를 위협하고 있다./사진=블룸버그
    구글 엔지니어 등 고액 연봉자들도 집단 행동

    구글 등 ‘꿈의 직장'에서 평균 연봉 10만달러가 훌쩍 넘는 고연봉을 받고 있는 엔지니어 등 화이트칼라들도 집단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구글 직원 1400여명은 지난 8월 회사가 중국 정부와 함께 검열 기능이 추가된 검색 엔진을 개발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개발 중단과 내부 감시 절차 강화, 투명성 제고를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구글 직원 3100여명은 지난 4월 ‘전쟁 비즈니스는 안된다'며 구글과 미국 국방부의 인공지능을 이용한 드론 이미지 식별 프로그램 개발 계약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구글 경영진은 장기적으로 수십억달러 가치를 지닌 사업에서 철수했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직원 100여명도 지난 6월 불법 체류자와 아이들을 분리시키려는 연방 이민관세국(ICE·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과 사업 관계를 청산하라는 공개 메시지를 발표했다.

    아마존 직원들도 회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안면인식프로그램을 국방부에 팔면 안된다고 요구했고 1세대 클라우드 소트프웨어 기업인 세일즈포스 직원들도 회사가 세관국경보호국(CBP)과의 협력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민, 성차별 관련 크고 작은 분쟁과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아틀란틱'은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이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사회, 정치적 쓰임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집단으로 내고 있다"라며 "임금, 복지 등 전통적인 노조의 요구와는 다르지만 노조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등의 개발로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도 언제든 실업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CEO이자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 그는 지난 4월 구글의 국방 프로젝트 참여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는 직원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는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 뿐 아니라 책임과 신중함, 휴머니티가 중요하다"는 서한을 주주와 직원들에 보냈다./사진=블룸버그
    실리콘밸리식 갈등 해법 찾을까?

    1970년대 이후 실리콘밸리는 최고의 인재들이 최대한 열심히 일하고 최대의 보상 받는 ‘메리트 시스템’의 선순환이 작동하는 ‘혁신의 수도’였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다른 지역 보다 더 많은 임금, 더 많은 복지 혜택에다 파격적인 스톡옵션까지 제공, 노조가 힘을 쓰지 못하는 ‘무풍지대’였다.

    덕분에 보스턴, 디트로이트 등 동부 대도시들이 강성 노조의 힘 자랑에 무너지는 동안 아이디어와 열정을 가진 인재들이 인텔, IBM, 제록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대박 신화’를 끝없이 탄생시키면서 ‘미국의 성장 엔진’으로 자리잡았다.

    실리콘밸리를 만들고 성장시킨 혁신 기업가들도 기회의 자유 보다 분배의 평등을 주장하는 노조 활동에 비판적이었다.

    1957년 페어차일드 반도체, 1968년 인텔 창업으로 반도체 혁명을 주도하며 ‘실리콘밸리의 시장’이란 애칭으로 불린 로버트 노튼 노이스 인텔 공동창업자는 "무노조는 기업들의 필수 생존 조건"이라고 했고, 그를 ‘정신적 멘토’로 추앙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교사 노조야말로 미국 학교의 골칫거리"라고 했다.

    넷스케이프 공동 창업자이자 수퍼 벤처캐피탈 ‘안데르센 호로비츠'를 통해 실리콘밸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크 안데르센은 "과거 노조가 필요한 때와 장소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공언했다.

    테슬라, 아마존과 같은 간판 혁신 기업들에서 노사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점에서 미국 산업 전반에 미칠 파급력이 클 것이란 전망이 많다.

    테슬라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내연기관에서 전기 모터로 전환시킨 기업이고 아마존은 온라인 유통 혁명에 이어 무인 매장을 통해 전통 유통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두 기업의 창업자들은 스페이스X(일론 머스크), 블루오리진(제프 베조스)을 통해 정부 주도의 우주 개발 산업을 민간 주도 산업으로 바꾸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움직임은 과거 ‘도전자’였던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들이 주류 기업으로 올라서면서 기존 제도와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각국의 규제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창조적 혁신은 기존 질서의 파괴를 수반한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성공은 새 일자리와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을 뜻하지만 전통 산업 종사자들에게는 ‘커다란 재앙'이다. 파괴적 고통 없이 달콤한 과실만 가져다 주는 혁신은 없다.

    눈부신 혁신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출한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들이 전통 제조업과 다른 새로운 노사 관계 모델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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