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그린벨트 맞습니까

입력 2018.09.28 03:09

[서울 근교 8곳 현장 가보니]
폐기물 창고로 쓰고, 심지어 공장까지 들어서… 서울·경기 그린벨트 훼손 60% 급증

지난 26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신축 아파트 단지 옆 광암동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지역에 들어서자 컨테이너 박스 수십개가 층층이 쌓여 있는 물류 창고가 나왔다. 옆에는 고철 등 각종 폐기물이 널브러져 있었다. 고층 아파트와 작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둔 이곳 그린벨트 인근에는 택배 트럭 주차장, 건축용 철강 자재(H빔) 적치장 등이 있었다. 인근 골재 채취장 직원은 "여기가 지금은 그린벨트가 아닌 걸로 안다"고 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토지 이용 규제 지도 서비스'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이 지역은 여전히 '개발제한구역'으로 표시돼 있었다. 자동차로 5분 거리인 초이동도 마찬가지였다. 논밭 너머 그린벨트 내 기록상 '목장용지'로 표시된 어느 필지에서는 금속 자재 공장이 요란한 기계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경기도 군포시 대야미동의 한 비닐하우스 내부에 폐에어컨이 쌓여 있다.
경기도 군포시 대야미동의 한 비닐하우스 내부에 폐에어컨이 쌓여 있다. 그린벨트 안에서는 건축물 건축, 물건 적치 등을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사무실로 개조하거나 창고로 쓰는 경우가 많다. /김지호 기자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통해 서울 접경 지역 그린벨트 해제 방침을 공식화한 후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는 "제 기능을 못하는 그린벨트는 개발하는 게 낫다"는 입장인 반면 서울시와 시민단체는 반발한다. 국토교통부는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직권 해제'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그린벨트 해제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그린벨트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됐는지부터 점검한 후 균형 있는 해법을 내놔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경기 그린벨트 훼손 4년 새 60% 급증

그린벨트는 박정희 정부 때인 1971년 '도시의 과도한 팽창을 막고 환경을 보존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린벨트 해제를 공약으로 내건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경기도 전체 면적 12.3% (1325㎢)가 그린벨트다. 서울시는 이 비율이 25%이고 하남시는 77.3%, 의왕시는 86.5% 수준이다.

문제는 관리 부실이다. 본지가 서울과 서울 접경 지역 여덟 곳을 돌아본 결과 서울 근교 그린벨트 훼손이 특히 심각했다. 지하철 4호선 대야미역과 인접한 아파트 단지 주변 그린벨트에는 비닐하우스와 가건물이 수두룩했다. 대부분 폐기물 창고나 사무실 등의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불법 건축된 주택 부지에는 목줄도 하지 않은 개들이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다. 폐(廢)에어컨 창고로 쓰이는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인부들은 기자가 접근하자 문을 걸어 잠갔다.

서울·경기 지역 그린벨트 불법행위 적발 현황 외
서울도 상황은 비슷했다.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인근 오륜사거리부터 서하남IC입구사거리까지 약 1㎞ 도로의 동쪽에 있는 그린벨트에는 폐기물 처리장, 창고, 자동차 정비소, 철물점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린벨트 훼손의 심각성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과 경기도의 그린벨트 내 불법행위 적발 건수는 2093건으로 집계됐다. 2013년 1346건에서 4년 만에 60%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올해 6월까지 적발 건수는 1118건으로 지난해의 절반을 넘어섰다.

그린벨트 훼손 부추기는 정치권

그린벨트 내 불법행위가 증가하는 원인은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장은 그린벨트 훼손 행위를 발견할 경우 건축물의 철거, 폐쇄를 명령할 수 있다. 정해진 기간 내에 개선되지 않으면 최대 5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는 그린벨트 내 불법행위에 대한 이행강제금 징수를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예했으며 2020년까지 한 차례 더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그린벨트를 불법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계형 자영업자'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단속을 총괄해야 할 시·군·구청장 역시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정치인이기에 지역 민심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방이동 소재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그린벨트에서 불법으로 사업하는 사람도 정치인들에겐 유권자"라며 "이 때문에 불법행위를 하다가 적발돼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지자체 담당자는 "제한된 인원으로 그린벨트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단속하기엔 행정력이 부족할뿐더러 적발한다 한들 제대로 규제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린벨트 훼손 현황에 대한 실태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영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그린벨트 해제 논의에 앞서 제대로 된 실태 조사가 우선 필요하다"며 "얼마나 많은 그린벨트를 해제할지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린벨트 선택과 집중 필요

결국 정부와 지자체 간 협의를 기반으로 한 '선택과 집중'이 최선의 해법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가 동의한다. 윤주선 홍익대 교수는 "서울 근교 그린벨트에는 보존 가치가 없는 '그레이(grey·회색)벨트'가 많다"며 "그레이벨트는 서민 주택 공급에 활용하는 한편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은 불법행위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등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 역시 "한국은 산악 지형이어서 남산처럼 그린벨트가 아니면서도 개발이 불가능해 녹지(綠地)로 남을 수밖에 없는 곳도 많다"며 "외곽 지역의 멀쩡한 농경지나 녹지를 개발하는 것보다 훼손된 그린벨트부터 개발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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