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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병역특례 폐지땐 제2 엔씨소프트·카카오 못나와"

  • 조재희 기자

  • 입력 : 2018.09.17 03:07

    스타트업들, 폐지 반대 목소리

    서울 강남에 있는 7년 차 앱(응용프로그램) 스타트업 A사는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병역특례(병특) 지정업체를 신청했다. 해외 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개발자 수요가 급증했지만 일반 채용만으로는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병특 업체로 지정받고 지난 1년간 신규 개발자 10명 중 5명을 석사 전문연구요원으로 채웠다. 이 중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경력자도 포함됐다. 이 회사 이모 대표는 "병역특례 덕분에 우수 인력 확보에 숨통이 트였다"며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아니었다면 미국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출신 인력이 우리 같은 스타트업에 왔겠나"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지난 4일 "병특을 포함한 전환·대체복무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자 중소벤처업계를 중심으로 폐지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IT(정보기술)벤처 성장을 뒷받침한 병특 제도를 갑자기 폐지할 경우 스타트업 창업과 성장 분위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만 2000명 근무 중

    이공계 석·박사가 기업이나 공공 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병역 의무를 대신하는 전문연구요원제도는 1973년부터 시행돼 왔다. 복무 기간은 시행 후 30년간 5년으로 유지되다가 2005년부터 3년으로 단축됐다. 해마다 2500명을 선발하며 지난해 말 기준 기업과 공공기관 등을 합쳐 7079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스타트업 등 중소기업에는 1406개 업체에 1851명, 대기업·중견기업에는 216곳 674명이 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나 대학연구소 등 공공 부문에는 4554명이 근무 중이다.

    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정부의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 폐지 방침에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중소벤처기업계에서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주완중 기자
    전문연구요원 인력 현황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중소벤처기업에 이공계 석·박사 인력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는 현실에서 제도 폐지는 중소벤처기업의 연구개발(R&D) 인력 수급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소벤처기업 대표는 "석·박사급 우수 인력들이 대기업이나 공공연구소를 선호하는 현실에서 자금력과 지명도가 떨어지는 중소벤처기업이 제도의 도움 없이 이들을 채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불과 수개월 만에 회사를 옮기는 경우가 수두룩한 중소·벤처업계의 상황에서 3년 동안 안정적으로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해당 분야 전공자들을 찾기 어려운 분야에서는 병역특례에 대한 의존도가 더 크다는 설명이다. 경기 성남에 있는 한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공정·제품 개발용 소프트웨어) 업체의 임원은 "우리 분야는 한 해에 나오는 전공자가 워낙 적어 대기업들도 인력 확보에 애를 먹는 분야"라며 "병특이 없어지면 신규 인력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특 폐지는 최근 불이 붙기 시작한 청년 창업 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카카오 김범수 의장 등 벤처 1세대는 물론 네이버의 자회사 스노우 김창욱 대표, 퀴즈앱 봉봉 김종화 대표, 부동산 중개앱 직방 안성우 대표 등 30, 40대 벤처인 중 상당수도 병특으로 병역 의무를 마쳤다. 한 병특 출신 스타트업 CEO는 "병특을 하면서 IT 분야와 기업에 대해 이해를 높이고 스타트업 창업이라는 꿈을 가졌다"며 "제도 폐지는 창업 열기를 꺾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평성과 국익 사이에서 공감대 필요

    국방부가 모든 대체 복무 폐지를 검토하는 상황에서 중소·벤처기업에만 혜택을 주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벤처 토양이 척박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제도를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계속 유지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2020년부터 군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감축되는 것도 군 복무에 따른 이공계 석박사들의 연구 공백 우려를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의 R&D 인력 수급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갑작스러운 제도 폐지는 중소·벤처 R&D 역량 약화라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반론도 많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조사에서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활용하는 중소기업의 83%가 전문연구요원이 기술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고 응답했다"며 "일자리 창출 등 긍정적인 측면을 감안하면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전문연구요원 제도 폐지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벤처 병역특례 1호 기업인 비트컴퓨터의 조현정 회장은 "국방의 의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나라와 산업 발전에 무엇이 더 이바지하는 방안인지를 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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