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밸리에 민노총 상륙… 인터넷·게임社도 노조설립

조선일보
  • 강동철 기자
    입력 2018.09.15 03:06

    [오늘의 세상] 네이버·넥슨·SK하이닉스 노조, 민노총 화섬노조 산하조직으로

    국내 IT(정보기술)업계에 노조 설립 붐이 불고 있다. 지난 4월 1위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가 노조를 설립한 데 이어 이번 달에는 한국 최대 게임 업체인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의 기술사무직 노조까지 연이어 설립됐다. 직원들의 처우가 국내 최고 수준인 데다 개발자들의 이직(移職)이 자유로운 인터넷·게임 업계에서 노조 설립은 이례적인 일이다. SK하이닉스의 연구·개발(R&D)직과 인사·재무 등 관리직 인력을 중심으로 한 기술·사무직 노조 설립도 국내 대기업에서는 드문 케이스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장시간 근무에 시달렸던 개발자들의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개발직·사무직들이 노조 활동을 꺼려온 탓에 처우와 고용 유지에 있어서 생산직에 비해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들 기업의 경영진들은 자동차나 중공업 기업들이 겪었던 대형 노사 분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계기

    IT업계의 연이은 노조 설립 배경에는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시간제와 포괄임금제가 있다. 특례 업종을 제외한 300인 이상 기업들은 주당 40시간이 기본 근로시간이고, 최대 12시간까지 초과근무를 시킬 수 있다. 직원들은 매주 12시간까지 초과근무를 하고 야근·휴일 수당을 별도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IT업계에서는 그동안 기본임금에 추가 수당을 포함한 형태의 포괄임금제를 적용해 별도의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국내 IT(정보기술)·게임 업계에 최근 노조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4월 네이버를 처음 시작으로 9월에만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SK하이닉스에서 설립됐다. 사진은 경기 판교 테크노밸리 소재 IT·게임업체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모습.
    국내 IT(정보기술)·게임 업계에 최근 노조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4월 네이버를 처음 시작으로 9월에만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SK하이닉스에서 설립됐다. 사진은 경기 판교 테크노밸리 소재 IT·게임업체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모습. /박상훈 기자

    이에 대해 IT업체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사에서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됐는데도 별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야근과 휴일 근무 수당을 제대로 받기 위해 교섭력을 가진 노조를 설립하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네이버는 지난 7월 노조의 요청을 수용해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기본급과 수당 제도로 전환했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노조 역시 출범 이후 핵심 과제 중 하나로 포괄임금제 폐지를 꼽았다.

    IT기업의 직원들이 점점 고령화되는 것도 한 요인이다. 네이버·넥슨 등 국내 1세대 인터넷·게임 업체들은 창립한 지 20년이 넘었고, 개발자들도 40대 중반을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술 변화가 빠른 인터넷·게임 업계의 경우, 40대 개발자들은 이직이 어려운 데다 특정 프로젝트에 실패할 경우 팀 전체가 해체될 정도로 고용 안정성도 떨어진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프로젝트가 실패하거나 중단될 경우 담당 조직원들이 책임지고 회사를 나가야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면서 "개발자는 겉보기엔 고액 연봉자이지만 사실상 비정규직"이라고 말했다. 한 인터넷 기업 직원은 "회사는 대기업이 됐지만 인사나 평가 기준은 여전히 벤처 수준"이라며 "이런 문제에 대해 회사와 직원들 간에 소통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많다"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연대…노조 설립 노하우에 강력한 교섭력까지 전수

    IT기업의 노조 설립에 눈에 띄는 특징은 모두 강성(强性)인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이하 화섬노조) 산하 조직으로 설립됐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기존 2개의 생산직 노조가 모두 한국노총 소속이지만, 기술사무직 노조는 민노총 화섬노조 산하로 들어갔다.

    연이어 설립되는 IT업계 노조 열풍
    /그래픽=김하경
    IT업계와 노동계에서는 화섬노조가 작년 불법 파견 논란을 빚었던 프랜차이즈 제빵업체 파리바게뜨의 노조 설립을 시작으로 세(勢)를 확장하면서 IT기업 노조들과 손을 잡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화섬노조는 네이버와 넥슨·스마일게이트의 노조 설립에서도 조직 구축과 운영 노하우 등을 지원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 IT기업의 노조 관계자는 "향후 다른 IT기업들도 화섬노조 산하로 노조를 설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IT 노조들이 대규모 파업을 하거나 정치투쟁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노조들의 요구 사항도 처우 개선, 소통 확대 등 회사 내부 사안에 국한된다. 하지만 노조가 경영에 사사건건 개입하기 시작하면 회사의 혁신 노력에 발목을 잡을 우려는 있다. 한 IT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IT 분야는 기술 변화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도 한 방에 무너질 수 있다"며 "여기에 노사문제까지 발생하면 한국 IT기업들의 경쟁력이 급격히 쇠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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