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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펀드매니저 떠나자 1조원이나 빠져나가…

  • 이경은 기자

  • 입력 : 2018.09.14 03:08

    '키맨' 따라 울고 웃는 펀드

    지난 7일 설정액이 2조6000억원이 넘는 '신영밸류고배당펀드'의 펀드 운용역이 바뀌었다. 밸류고배당펀드를 지난 2012년부터 맡아 운용해 왔던 박인희 본부장이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밸류고배당펀드는 국내 주식형 펀드 중에 가장 덩치가 큰 맏형급 펀드다.

    신영자산운용 관계자는 "박 본부장이 번아웃(극도의 피로)된 상태여서 잠시 쉬고 싶다며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 운용업계에선 박 전 본부장이 퇴사한 후에 남편(박현준 전 한투운용 본부장)이 대표로 있는 씨앗자산운용으로 옮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펀드를 운용하는 키맨(Keyman·핵심 운용역)이 속속 빠져나가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주식형 펀드의 성과는 매니저의 안목과 실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주부 이모(46)씨는 "은행 직원은 매니저가 바뀌어도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펀드 성과가 나빠진 상태인데 새 매니저가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밸류고배당펀드의 경우 올해 수익률이 -9.7%(12일 기준)로, 코스피지수(-7.5%)보다도 부진한 상황이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해당 펀드는 팀 운용 방식이기 때문에 운용역 한 명이 빠진다고 해서 투자의 원칙과 일관성이 무너지진 않는다"면서 "해당 펀드는 (대표인 내가) 직접 맡아서 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맨 빠지자 1조 회수한 큰손

    지난 5월 말 메리츠자산운용의 주식형 자산 규모는 전달 대비 1조원이 줄어들었다. 1100조원을 굴리는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가 메리츠운용에 일임 형태로 맡긴 1조원의 위탁 자금을 몽땅 회수한 데 따른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운용 성과도 썩 좋지 않았지만 키맨이었던 권오진 전무가 사임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면서 "연기금과 같은 큰손들은 키맨이 퇴사하는 등 변화가 생기면 운용 능력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계약을 해지한다"고 말했다. 권 전 전무는 존리 메리츠운용 대표와 20년간 동고동락을 함께해온 인물로, 지난 2013년부터 펀드 운용을 책임져 왔다. 권 전 전무는 향후 독립해서 신규 운용사를 차릴 것으로 알려졌다.

    1조원 빠져나간 메리츠운용

    메리츠운용의 간판 펀드인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여전히 자금 이탈로 고전하고 있다. 올해 수익률은 -4.9%로, 시장 상황에 비해 선방했지만 돈은 1900억원 넘게 빠져나갔다. 홍정모 매니저가 지난 2014년부터 운용했던 'Allset 성장 중소형주 펀드' 역시 그가 퇴사한 이후 200억원 넘게 빠져나갔다.

    ◇자금 이탈→성과 부진 악순환

    키맨의 교체는 자금 이탈 혹은 유입 정체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수익률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것이 업계 정설이다. 새 매니저가 포트폴리오를 바꾸면서 매매 비용도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기관은 키맨이 빠져나간 펀드에선 발을 빼기도 한다. 한화생명은 최근 변액보험 위탁운용사에서 신영자산운용을 제외했다. 키맨의 퇴사가 주된 교체 요인으로 꼽힌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매니저가 갑자기 바뀌면 펀드가 과도기를 겪게 되어 수익률 반등을 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기간 펀드 운용을 책임져 온 키맨이 바뀐 뒤 펀드 수익률이 나빠진 사례가 적지 않다. 한투운용의 간판 펀드인 '네비게이터 펀드'는 지난해 키맨이 떠난 후에 큰손들이 뭉칫돈을 빼내면서 운용 규모가 거의 반 토막 났다. 펀드 운용역도 3차례나 바뀌었다. 키맨이 바뀌는 펀드를 판매한 은행·증권사들은 고객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매니저가 바뀌어도 펀드 운용에는 큰 무리가 없으니 환매를 권하진 않지만, 불안해하는 고객이 많아서 같은 유형의 펀드 상품 안내도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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