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나라 걱정한 창업세대, 갑질하는 2·3세들

조선비즈
  • 전재호 기자
    입력 2018.09.13 06:00

    최근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있는 SK 빌딩에서 ‘최종현 회장, 그를 다시 만나다’란 주제로 사진전이 열렸다. 지난달 26일은 고(故) 최종현 SK 회장의 20주기였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최 회장은 고 최종건 SK(선경그룹) 창업주의 동생으로, 1973년 형이 일찍 세상을 떠난 후 경영권을 이어받아 그룹을 비약적으로 키웠다. 동시에 한국 경제의 앞날을 내다보며 큰 그림을 제시해 존경을 받았다.

    최종현 회장은 외환위기 사태가 발생한 1997년 말 병석에서 유고(遺稿)를 남겼다. 이 유고는 최 회장 별세 1년 뒤인 1999년 8월 ‘최종현 회장을 추모하는 모임’에 의해 ‘21세기 1등국가가 되는 길’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책은 ‘20세기의 시련’, ‘21세기의 전망’, 21세기 정책제언’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나라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책의 소주제를 보면 ‘사회주의적 전체주의와의 대결’, ‘국가안보 개념의 변화’, ‘민생 불안요인의 변화’, ‘선진국의 경제발전 장애요인 해소’ 등으로 일반적인 기업인 저서와는 확연히 다르다.

    최 회장은 ‘정책제언’ 부분에서 최저임금, 세제, 정부규제, 노사관계, 교육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이 제도는 타당성이 없으며 21세기에는 폐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경제학자들 역시 최저임금제도가 오히려 실업문제만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음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고 적었다.

    기업인의 책임도 강조했다. 그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민간부문의 비중이 더욱 커지게 되고, 기업에서의 경험이 국가경영에 대부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사고나 행동에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이 책을 보면 기업인으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창업주가 떠나고 창업주의 2·3세가 경영권을 물려받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기업을 키워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갑질’로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기업인도 적지 않다.

    재계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0대 국회에서만 10번이나 국회를 방문했다. 기업들이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 규제개혁 법안을 통과시켜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기업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다.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면 모두가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부족한 탓이다. 사람들이 기업을 못 믿는 데는 일부 창업주 3·4세 기업인의 일탈에도 책임이 있다.

    최종현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SK 회장은 선친의 20주기 추모 행사에서 그의 경영철학을 되새겼다. 최태원 회장은 "선대 회장은 많은 인재를 육성하셨다. 저도 선대 회장의 뜻을 이어가고자 새로운 학술재단인 가칭 ‘최종현 학술원’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오너 갑질’ 뉴스가 나오는 요즘, 다른 2·3세 기업인들도 창업주의 창업정신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갑질 논란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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