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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사태 2년…여전히 표류 중인 한국 해운

  • 조지원 기자
  • 입력 : 2018.09.12 11:00

    세계 7위, 국내 1위 선사 한진해운이 2016년 8월 31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지 2년이 지났다. 한진해운은 작년 2월 법정관리 신청 6개월 만에 파산 선고를 받은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빈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1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 파산재단은 파산 선고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청산 작업을 진행 중이다. 파산재단은 한진해운 국내외 재산을 찾아내고, 변제‧배당해야 될 채권을 확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진해운 파산관재인은 청산 작업에 최소한 5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청산 작업은 5년 뒤 마무리될 수도 있지만, 한진해운 파산 후유증은 수십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한지 2년이 지났지만, 한국 해운 경쟁력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대신 해운업을 이끌어야 하는 현대상선(011200)은 1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제 살길을 찾기도 버겁다. 수십 년간 아시아 역내 지역에서 굳게 자리를 지켜오던 근해 선사들마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4월 한진해운 파산으로 무너진 한국 해운업 경쟁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해운재건 5개년 계획(2018~2022년)’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해운 재건 정책을 체감할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해운업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머스크 유레카’호가 된 ‘한진 수호’호 과거 모습 /마린트래픽 홈페이지
    ‘머스크 유레카’호가 된 ‘한진 수호’호 과거 모습 /마린트래픽 홈페이지
    ◇ 외화가득‧점유율‧선복량…어느 하나 채워지지 않은 한진해운 빈자리

    한진해운 사태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해운업은 경쟁력이 반 토막 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해운업 외화가득액은 최대치를 기록했던 2008년 380억달러(42조8000억원)에서 2017년 180억달러(20조3000억원)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외화가득액은 해외로 지급된 금액을 제외하고 국내에 남긴 금액을 말한다. 외화가득산업 10위인 무선통신기기 수출액(220억달러)보다 적다.

    점유율과 선복량(적재 용량)도 회복이 안 된다. 점유율은 해운사가 실제로 운송한 물량을, 선복량은 해운사가 보유 중인 선복(적재 공간) 규모로 얼마나 많은 짐을 싣고 나를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점유율과 선복량 모두 해운업체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해상무역 데이터 분석기관 피어스(PIERS)에 따르면 지난 6월 현대상선과 SM상선의 미주 노선 점유율은 각각 5.1%, 1.2%로 10위와 14위를 기록했다. 한진해운이 파산하기 전까지 양대 국적 선사의 미주 노선 점유율은 11.4% 수준이었다.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물량 일부를 가져오긴 했지만, 대부분 외국 선사로 흡수됐다.

    선복량 회복도 요원하다. 국적 원양선사 선복량은 2016년 8월 한진해운(61만TEU)과 현대상선(43만TEU)을 합쳐 104만TEU이었다가 현재 50만TEU 이하로 줄었다. 현대상선이 40만TEU 규모의 신조 발주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선복량은 2020년 이후 일정 부분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선대를 늘리는 동안 글로벌 선사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지난 2년 간 머스크라인(391만TEU→401만TEU), MSC(278만TEU→324만TEU), COSCO(155만TEU→281만TEU), CMA‧CGM(230만TEU→265만TEU), 하팍로이드(91만TEU→157만TEU) 등 글로벌 주요 선사 대부분은 선복량을 크게 늘렸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현대상선 제공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현대상선 제공
    ◇ 한 발짝 늦은 구조조정에 해운 산업 경쟁력은 후진

    해운업계에서는 한진해운 사태 이후 정부가 내놓은 해운업 경쟁력 회복 정책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상황이다. 우선 정부는 대규모 선박 발주로 해운 위기를 헤쳐 나가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는 사실상 해운업이 아닌 조선업 지원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뿐 아니라 한물간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상선, SM상선 등 국내 주요 컨테이너 선사들은 거듭되는 적자로 운영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다. 선박 발주가 급한 것은 해운사보다 일감 부족에 시달리는 조선소라는 것이다. 해운사는 초대형 선박을 갖더라도 그만큼 많은 화주를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운임 사정이 뒷받침돼야 이익을 낼 수 있다. 현대상선이 선박을 확보해도 단기적으로 수익성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머스크라인을 포함한 MSC, COSCO, CMA‧CGM 등 글로벌 주요 선사들은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1만8000TEU가 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확보에 나섰다. 최근에는 초대형 선박 발주를 줄이고, 인수합병(M&A)으로 덩치는 키우는 추세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해운업계는 CMA‧CGM의 APL 합병, 하팍로이드의 UASC 흡수, 머스크의 함부르크수드 인수, COSCO의 OOCL 인수, 일본 3사 컨테이너 부문 통합 등 재편 작업이 숨 막히게 진행됐다. 최근에는 세계 4‧5위 CMA‧CGM과 하팍로이드 간 합병설도 돌고 있다.

    한국 선사들은 글로벌 선사들의 움직임보다 한 발짝씩 늦게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선사들이 초대형 선박을 발주할 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자구계획을 실현하느라 알짜 사업부와 핵심 자산을 모두 팔았다. 한진해운은 글로벌 선사의 초대형 선박이 만들어 낸 공급 과잉에 무너졌다. 글로벌 선사들이 작전을 바꿔 M&A로 점유율과 선복량을 동시에 늘리고 있는 사이 현대상선은 진작 했어야 할 초대형 선박 확보에 뒤늦게 매달리고 있다.

    심지어 선박 발주마저 골든타임을 놓쳤다. 해운 정책이 이번 정부 해운 컨트롤타워인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설립될 때까지 사실상 마비 됐기 때문이다. 해양진흥공사는 지난 7월 설립됐지만 내부 조직 정비, 자금 확충 등 여러 문제 때문에 아직도 지원 방안을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대규모 발주 계획을 발표하고도 해양진흥공사의 자금 집행 지연으로 조선소와 본계약을 체결하지 못 하고 있다.

    당초 현대상선이 선박 발주를 서두른 이유는 2020년이 되면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2M(머스크라인, MSC)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도 종료되기 때문이다. 환경 규제 대응과 2M과의 협상을 위해 2020년까지 선박을 확보하려면 올해 상반기 안에 발주가 이뤄졌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친 것이다. 현대상선은 아무리 늦어도 10월 안에는 본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진해운 사태 2년…여전히 표류 중인 한국 해운
    왼쪽부터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 이윤재 흥아해운회장,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 엄기두 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장이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한국해운연합(KSP) 2단계 구조혁신 합의서 서명식에 참석했다. /선주협회 제공
    ◇ 멀쩡하던 근해 선사마저 ‘휘청’…한국이 비운 자리에 들어오는 외국 선사

    흔들리던 원양 선사와 달리 아시아 역내 지역에서 나름 경쟁력을 가지고 있던 중소 근해 선사조차 2년 사이 위기를 맞았다. 대표 근해 컨테이너 선사인 흥아해운(003280)은 올해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이 149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적자 규모가 118억원 늘었다. 고려해운, 장금상선 등 탄탄했던 근해 선사들도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 사태 이후 그나마 결과물을 낸 한국해운연합(KSP) 항로 구조조정은 시기를 잘못 맞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컨테이너 선사로 구성된 KSP는 세 차례에 걸쳐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항로 구조조정을 통해 선박을 철수시켰다. 구조조정이 이뤄진 아시아 역내는 국내 선사들의 선복 공급 과잉이 꾸준히 우려되던 지역이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아시아 역내 물동량이 크게 늘면서 한국 선사들이 줄인 공간에 글로벌 선사들이 비집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산업정책조사팀에 따르면 전 세계 물동량에서 동서항로(유럽, 북미, 동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반면 아시아 역내 물동량 비중은 늘고 있다. 동서항로는 전통적으로 물동량이 많은 곳으로 꼽혔지만, 내년부터 아시아 역내 물동량이 더 많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선사들은 미주 노선 공급을 조절하는 동시에 아시아 역내 지역 진출에 나섰다. 머스크라인은 자회사 MCC를 통해 한국‧중국과 말레이시아 등을 잇는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였다. 대만 양밍해운도 서비스 개편을 통해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잇는 노선을 새로 깔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국 선사들이 항로 합리화를 진행한 아시아 역내로 진입하려는 글로벌 선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KSP 구조조정의 시기나 방법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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