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면 1억 더… 이게 정상입니까

입력 2018.09.11 03:07

서울집값 '역대 최장' 49개월 연속상승, 10년前 침체 직전과 닮았다

회사원 김모(35)씨는 지난 4일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59㎡)가 7억3000만원에 거래됐다는 소식에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전화를 했다가 깜짝 놀랐다. 불과 사흘 뒤였는데도 같은 평형 매물이 각각 8억원, 8억3000만원, 9억원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사이에 호가가 20%나 치솟은 것이다. 지난 3월 7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성북구의 한 아파트(112㎡)를 알아보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이달 초 같은 평형대 호가는 12억5000만원까지 치솟아 있었다. 인근 부동산 중개인은 "이 평형은 한 동(棟)뿐이어서 실제 거래는 많지 않지만, 호가는 시세 이상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며 "강남이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처럼 오르던 지역이 아닌데도 요즘엔 호가가 이상 급등을 한다"고 했다.

노무현 정권 때 기록 깨고 역대 최장기 상승세… "코인 광풍처럼 거품 우려"

서울 집값이 급등세를 보이며 '부동산 거품'을 우려하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의 주택 가격은 2014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49개월 연속 올라 최장 상승기 기록을 세우고 있다. 기존 최장 상승기 기록은 44개월(2005년 2월부터 2008년 9월)이었다. 상승 폭도 '비이성적'이다. 지난 2014년 8월 9억7000만원에 거래됐던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84㎡)는 지난달 17억9500만원에 거래돼 이 기간에만 85%나 올랐다.

역대 최장 기간 연속 상승 중인 서울 주택 가격
전문가들은 서울의 주택 경기 과열이 지난 2007년 부동산 가격 침체 직전과 닮았다고 지적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서울 집값이 5년 가까이 꾸준히 상승하며 지난해 주택 거래량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올 들어 거래량이 급감했다"면서 "부동산 가격이 고점(高點)에 접근할 때 거래량이 감소세로 돌아서는 것으로 2006~2007년 상황과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2017년 11월=100)는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며 2008년 9월 95.8까지 올랐다가 이후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고 원장은 "부동산 경기 예측 이론인 '벌집 순환 모형' 이론에 따르면 부동산 거래가 늘며 가격도 오르다 거래는 줄며 가격만 오르는 국면이 전개되는데 지금이 그때"라며 "그다음은 거래량이 급감하며 가격이 침체에 빠지는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20대 청년들까지 '갭 투자'(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는 것)에 나서고 지방 주민들의 상경(上京)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부동산 거품의 증거로 보고 있다.

세계 주요 도시의 소득 대비 집값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올해 초 가상 화폐 광풍에 이어 최근 부동산에도 광풍이 불고 있는 형국"이라며 "이는 부동산 시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한국에 안전한 투자처가 없다'는 불안감이 팽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 자금이 일시에 부동산에 몰린 데다 지방 아파트값 하락세가 2년 이상 이어지는 바람에 지방 부동산 자산도 서울로 몰려 서울 부동산이 비이성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같은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1980년대 엔화 가치가 급등하자 일본 당국은 내수 활성화를 위해 과도한 금융 완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며 집값이 급등했고, 1990년대 일본 은행이 대출을 규제하자 거품이 한순간에 붕괴되며 부동산 가격이 급락세를 보였다.

◇소득 대비 집값은 런던·도쿄보다 높은데, 임대료는 낮아… "거품의 증거"

최근에는 서울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price to income ratio)'이 세계적 도시들에 비해 낮지 않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왔다. PIR은 평균 소득의 국민이 월급 몇 년치를 안 쓰고 모아야 중간 가격대의 집을 살 수 있느냐를 가리키는 지표다.

지난 6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내놓은 '글로벌 부동산 버블 위험 진단 및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PIR은 11.2배로 도쿄(4.8배)·싱가포르(4.8배)는 물론 런던(8.5배)·뉴욕(5.7배)보다도 높았다.

임대료 관점에서 보면 우려는 더욱 커진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 분석 업체 '넘베오'가 올해 상반기 세계 주요 도시의 소득 대비 주택 임대료 비율(RIR· Rent to income ratio)을 분석한 결과 미국 뉴욕을 100으로 봤을 때 서울은 29.91에 불과했다. RIR은 주거를 위해 쓰는 주택 임대료와 월 소득을 비교하는 것으로 전세나 월세를 사는 세입자의 임대료 부담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김흥진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관은 최근 조선일보 주최 '2018 대한민국 부동산 트렌드쇼' 강연에서 '서울 집값 거품론'의 근거로 낮은 RIR을 들었다. 그는 "전·월세는 시세 차익 목적 없이 순수하게 그 집에서 살기 위해 지불하는 돈이라는 측면에서 실제 집의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며 "서울 아파트 시장은 전·월세가 안정된 상태에서 매매가격만 치솟고 있는데, 이는 집값에 거품이 끼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상황에서 무리해서 내 집 마련을 서두르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등 대도시 집값은 중·장기적으로 오름세를 보이겠지만, 지금은 정부 규제로 매물이 급감해 집값이 이상 과열된 상황이어서 가격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시장에 공급을 늘려 '지금 서두르지 않아도 집을 살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 과열된 부동산 시장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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