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전경련 왕따', 너무 한 것 아닌가

입력 2018.09.11 04:00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기업인자문회의(ABAC) 총회 참석. 미국에 투자사절단 파견. 대만국제경제합작협회(CIECA)와 ‘한·대만 경제협력위원회’ 개최. 미국상공회의소, 일본 경단련과 ‘한·미·일 경제계 전략회의’ 개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회’ 참석.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경제단체연맹(GBC) ‘2018 셰르파 회의(Sherpa Meeting)’ 참석. 터키산업경제협회(TUSIAD)와 ‘한·터키 CEO 포럼’ 창설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 중국국제다국적기업촉진회(CICPMC)와 ‘한·중 CEO 라운드 테이블’ 개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2018 아시아 비즈니스 서밋’ 참석.

올해 전경련이 주최했거나 참석했던 주요 국제 행사다. 지난 7월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 맞춰 세계경제단체연맹이 발표한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전경련 등 14개국 경제단체들이 서명한 이 성명서는 세계적인 보호주의 추세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시장개방 유지, 자유무역 확산, WTO 역할 강화 등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전경련은 국내에서 ‘버린 자식’ 비슷한 처지다. 정부의 의도적인 외면과 무시로 ‘왕따’를 당하며 "아직 버티고 있는게 용하다"고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여전히 전경련이다. 지난 수십년간 축적한 국제 네트워크의 힘이다.

정부가 ‘경제계 맏형’이자 ‘정책 파트너’라고 추켜세우는 대한상의도 나름 열심히 뛰기는 했다. ‘한·몽골 비즈니스 포럼’,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 ‘한·터키 비즈니스 포럼’,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 ‘한·중 기업인 및 전직 정부 고위인사 대화’ 등의 행사를 개최했다.

그러나 대한상의 행사는 거의 대부분 정부 지원으로 이뤄졌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또는 외국 정상의 방한 일정에 맞춰서 기획한 행사다. 사실상 정부가 밥상을 다 차리고, 대한상의는 숟가락만 얹은 것과 비슷하다. 질(質)과 양(量)에서 모두 전경련의 활동과 성과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는 민간 부문의 경제외교 역량이 전경련에 집중돼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경련은 APEC과 OECD 등의 자문기구에 참여하고 있고, 미국상공회의소와 매년 한·미 재계회의를 개최하는 등 정례 행사가 많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민간 외교의 경험과 노하우, 네트워크 등 모든 면에서 전경련이 월등 앞서 있다.

정부는 이런 사실에 눈을 감고 있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전경련이 발벗고 뛰는 데도 정부는 "수고한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남의 일 보듯 하고 있다. 아무리 국익을 위한 행사라도 전경련과는 손을 잡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듯하다.

정부는 ‘촛불 민심’을 내세우고 있다. 전경련 해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핑계다. 실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전경련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국회의원들이 청문회에서 대기업 총수들을 윽박지르며 전경련 탈퇴 약속을 받아낼 정도로 이미지가 나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책임을 전경련에 뒤집어씌우려 한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시 청와대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재단을 설립했고, 이를 전경련이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K스포츠재단 이사장 등을 전경련이 추천했다는 허위 진술을 꾸며내기도 했다.

검찰 수사와 재판 등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전혀 다르다. 모든 과정을 청와대가 주도했고, 전경련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예를 들어 재단 사무실과 관련해 청와대는 ‘강남의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 쪽에 주택처럼 보이는 단독 건물을 구하라’는 식으로 세세하게 챙겼다. 심지어 쓰레기통을 몇개 준비하라는 지시까지 있었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 "(전경련 부회장이) 꼭두각시나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전경련 임직원 중 사법처리 대상에 오른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만일 조금이라도 꼬투리 잡을 일이 있었다면 검찰이 별건수사를 해서라도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경련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 계속 ‘적폐’로 몰고, ‘죄인’ 취급하고, ‘경제계 맏형’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해묵은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핍박했다. 정부가 민간 경제단체에 대해 누가 맏형 노릇하라고 정해준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전경련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해체 요구는 수그러들었지만 전경련 이미지가 개선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삼성·현대차·SK·LG가 회원으로 재가입하는 것을 비롯해 전경련이 예전 위상을 되찾을 전망도 잘 보이지 않는다. 전경련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 깊이 성찰하고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균형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 국익을 위한 전경련 활동까지 백안시(白眼視)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보수 궤멸’의 숨은 의도에 대한 의구심을 자극하고, 경제 심리도 위축시킬 수 있다.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이념 편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경련 왕따’ ‘전경련 패싱’은 이제 해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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