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독선이 빚은 '일자리 파국'

입력 2018.08.18 03:07 | 수정 2018.08.19 15:19

[고용 파국] 작년대비 취업자 증가 '30만→10만→5000명' 0%대로 추락
실업자는 8만명 늘어 7개월 연속 100만명대… 18년만에 최악

일자리 창출을 국정(國政)의 제1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일자리 상황이 '파국(破局)'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처럼 고용 시장에 충격이 큰 친노동정책을 고집하는 독선(獨善)에 빠져 국민들 살림살이에 가장 중요한 일자리 상황이 세계 경제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다.

통계청은 17일 발표한 '7월 고용 동향'에서 "지난달 취업자 수가 2708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00명 늘었다"고 발표했다. 고용 시장이 정상이던 작년에는 취업자 증가 숫자가 31만명이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2월 취업자 증가 숫자가 10만4000명으로 떨어지더니 6개월 연속 10만명 안팎에서 맴돌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취업자 증가율이 0%대로 주저앉았다. 이런 부진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충격으로 고용 시장이 마비됐던 2010년 1월(-1만명) 이후 8년 6개월 만이다. 지난달 제조업 취업자는 12만7000명, 도소매ㆍ숙박음식점업·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 취업자는 18만명이 넘게 줄었다. 7월 실업자는 103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만1000명 늘었다. 실업자 숫자는 최근 7개월 연속 100만명을 넘겼는데, 이는 외환 위기(1999년 6월~2000년 3월, 10개월) 이후 최장(最長) 기록이다. 지난달 실업률은 3.7%로 1년 전보다 0.3%포인트 올랐고, 고용률은 61.3%로 0.3%포인트 떨어졌다.

경제부총리, 휴가중 긴급 간담회 -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사진 가운데) 경제부총리가 긴급 경제 현안 간담회를 가졌다. 휴가 중이던 김 부총리는 청와대 일자리수석과 경제수석, 관계 부처 장관들을 급히 불러 간담회를 갖고 “고용 부진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밝혔다.
경제부총리, 휴가중 긴급 간담회 -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사진 가운데) 경제부총리가 긴급 경제 현안 간담회를 가졌다. 휴가 중이던 김 부총리는 청와대 일자리수석과 경제수석, 관계 부처 장관들을 급히 불러 간담회를 갖고 “고용 부진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고용 시장이 작동을 멈추다시피 한 원인은 제조업 구조조정, 자영업종 부진, 생산 가능 인구 감소, 폭우·폭염 같은 날씨 요인이 거론된다. 그러나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면밀한 준비 없이 밀어붙인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같은 정부의 '정책 독선'이 고용 참화를 부른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자동차·조선 등 주력 산업의 부진, 경제구조 변화에 따른 내수(內需) 정체 같은 우리 경제의 고질병을 고치려는 시도는 게을리하면서 중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반대에도 친(親)노동정책을 고집하다 본격적인 시장의 역풍(逆風)을 맞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7월 고용 지표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 방침이 발표된 그다음 주에 통계청 조사가 이뤄졌다. 자영업자와 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이 계속될 악재(惡材)라고 인식하고 고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청와대와 정부는 고용 부진을 최저임금 탓으로 볼 수 없다고 고집해왔다. 특히 장하성 정책실장을 위시한 청와대 경제 실세(實勢)들은 상반기 내내 이어진 고용 부진에도 "최저임금이 분배를 악화시키고, 일자리를 줄였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학계와 재계, 중소기업 등의 우려를 일축해 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가격(최저임금)이 오르면 수요(일자리)에 영향을 미친다"며 이견을 냈지만, 그 역시 최저임금이 고용을 악화시킨 주범(主犯)이라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에 3조원, 청년 일자리 추경에 4조원, 공기업ㆍ기금 확대에 4조원 등 2년간 33조원에 달하는 재정을 쏟아붓는 대증(對症) 요법으로 고용 위축을 막아보려 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지난달 정부는 일자리 증가 목표치를 기존 32만명에서 18만명으로 대폭 낮춰야 했다.

취업자 증가 수 그래프

고용 시장이 사실상 작동 정지 상태에 빠지고, 도소매업ㆍ음식숙박업ㆍ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 등 이른바 '서민업종'에서 18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줄자 청와대와 정부에서도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김동연 부총리는 17일 청와대 일자리수석과 경제수석, 관계 부처 장관들과 긴급 경제 현안 간담회를 열고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는 입장을 냈다. 정부는 회의 후 "최저임금 인상 영향도 일부 업종·계층에서 나타나 영향을 더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는 자료를 냈다. 정부 공식 자료에서 최저임금 부작용을 처음 언급한 것이다.

물밑 분위기는 한층 심각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간부들은 17일 최악의 성적표가 공개되기 2~3일 전부터 이미 사태를 인지하고 대응안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지 못했다. 정부 내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제조업 부진과 인구 감소 등이 고용 부진의 주원인으로 지목됐지만 당장 뚜렷한 해법이 없는 것들"이라며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무제의 단기 부작용이라도 해소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악의 일자리 지표가 자칫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과 경제 비관론으로 번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19일 긴급 당정청 회의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기류에도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의 기조를 바꿀 생각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앞으로) 기업들이 일자리를 잘 만들기 위한 각종 인프라 구축과 지원이 강화될 것"이라면서도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 주도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 기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전문가들 "일자리 정책 틀 수정해야"

정부의 독선과 무능이 빚은 고용 지표 추락이 무서울 정도인 한국과 달리 미국과 일본에선 정부 정책이 완전 고용을 달성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월 실업보험 청구자 숫자가 1969년 이후 4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지난 2년간 제조업에서만 26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미국은 완전고용 상태이거나 이를 넘어섰다"고 말할 정도다. 일본도 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를 내리는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으로 실업률이 2%대 중반까지 내려갔다. 기업들이 일손을 구하지 못해 인력난에 시달릴 정도다. 유럽의 고용 상황도 개선되고 있다. 영국은 지난 2일 완전고용 수준으로 일자리 시장이 회복되자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약 10년 만에 최고 수준(연 0.75%)으로 금리를 올렸다.

최저임금 영향 받는 3대 업종 취업자 증감 그래프

정치권과 경제 전문가, 현장의 소상공인들은 한목소리로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한 독선과 집착을 버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야당은 17일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근본적 정책 수정을 하라고 요구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일자리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의 고용 성적표가 재난 수준"이라며 "명백한 소득 주도 성장 정책 실패 탓"이라고 했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를 새겨듣고 경제정책 전반을 대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실패했음을 국민 앞에 솔직하게 인정하고 규제 개혁과 노동 개혁을 전면 단행하는 결단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경제 전문가들 진단도 다르지 않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불과 3~4년 만에 최저임금이 2배로 오르는 현실에서 지원금 등 미봉책만으로는 국내 기업들이 원가 경쟁력을 되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2분기 건설·설비 투자가 전분기 대비 감소해 취업자 수는 더 줄어들 것"이라며 "이쯤 되면 소득 주도 성장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임호열 경기대 무역학과 교수도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관련 책임자들을 물갈이해야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 단체들의 목소리는 한층 격렬하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소득 주도 성장이 1년이 흐른 지금 보니 오직 근로자만을 위한 정책이었다"며 "오죽했으면 우리가 '소상공인도 국민이다'라고 말하겠느냐"고 했다. 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 부회장은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저임금 노동자들부터 일자리를 잃고, 소상공인들은 폐업의 벼랑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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