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국가 지급 보장하면 수백兆 '국가 우발 부채' 증가 논란

입력 2018.08.16 15:36 | 수정 2018.08.16 17:51

국민연금 적립기금 고갈 시점이 당초 예상인 2060년 보다 3년 가량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가 지급 보장을 법에 못 박아야 한다는 논의가 불붙고 있다. 법에 국가의 지급 보장 책임을 명시해 기금 고갈에 대한 가입자들의 불안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국가 지급 보장은 ‘나랏빚 증가’ 논란과 불가피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 현재 국민연금 지급액은 공무원·군인연금과 달리 국가가 고용주로 책임져야 할 연금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 부채 계산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만약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 보장이 명문화되면 오는 2057년 기금 고갈 이후 수백조원의 지급액을 정부 세금으로 메꿔야 하기 때문에 국가 회계 지표상 ‘우발 부채’가 갑자기 증가할 수 있다. 국가 재정 건전성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에 난색을 표해왔다.

일러스트=조선일보
◇ 공무원·군인 연금 미래 지급액 ‘국가 부채’ 포함…"국민연금은 제외"

정부는 ‘나랏빚’을 국가채무(D1), 일반정부 부채(D2), 공공부문 부채(D3)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관리하고 있다. D1은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 채무의 합을 뜻하며, D2는 D1에 비영리공공기관 부채를 추가한 것이고, D3는 D2에 비금융공기업 부채를 추가한 것이다. 지난 2016년말 기준 D1은 626조9000억원, D2는 717조5000억원, D3는 1036조6000억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각각 38.2%, 43.7%, 63.1%다. 국가간 재정 건전성을 비교할 땐 주로 D2가 쓰이는데, 우리 나라는 4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6.3%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다만 정부는 D1, D2, D3와 별개로 나랏빚에 대한 보조 지표를 하나 더 공개하고 있다. 바로 연금 충당 부채다. 연금 충당 부채엔 공무원·군인 연금에 대한 미래 지급액이 반영된다. 현재 재직 중인 공무원·군인과 기존 연금 생활자 및 유족들이 사망할 때까지 받을 연금 급여를 매년 추정해 공개하는 수치다. 향후 공무원·군인 연금 조성액이 혹시 부족해 정부가 세금을 투입할 경우를 대비해 ‘연금 충당 부채’라는 개념으로 나랏빚에 포함하고 있다. 지난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 부채는 845조8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같은 연금이지만 국민연금 미래 지급액은 국가 부채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부가 공무원·군인 연금의 미래 지급액을 ‘연금 충당 부채’라는 개념으로 국가 부채에 포함하고 있는 것은 두 연금은 국가가 고용주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고용주가 직원 연금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국가가 고용주로서 책임져야 할 연금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에 현재 국민연금 고갈시 정부가 책임져야 할 미래 지급액은 국가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

국제 기준도 비슷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정부재정통계편람은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 보험 제도의 지급액은 정책에 따라 급여 구조가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계약상 의무를 초래하지 않는다며 국가 부채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 정부 “국민연금 국가 지급 보장 명시, 회계상 잠재 부채 증가할 수도”

기재부는 국민연금 국가 지급 보장을 법에 못 박으면 국가 부채 규모에 변화가 생길지 주시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제 3차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에 따르면 올해 기준 6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은 적립금이 계속 쌓이다 오는 2060년 고갈되는데, 그 해 부터 발생할 적자(총수입-총지출) 규모는 약 300조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 고갈 이후 적자를 세금 등 재정으로 메꾸는 것을 법적으로 공식화하면 수조원의 미래 지급액이 잠재적인 ‘국가 부채’에 편입될 수 있다.

기재부는 일단 내부적으로 국민연금 국가 지급 보장을 법에 명시해도 현행 연금 충당 부채 범위엔 변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연금에 대해 국가가 고용주가 아니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미래 지급액이 국가 회계상 별개의 우발 부채로 잡힐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나라의 국가 부채 규모 등 재정 건전성 지표는 국가 신용 등급 등 대외 신인도에 곧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에 대해 법적으로 국가 지급을 보장해도 정부가 고용주가 아니기 때문에 미래 지급액이 연금 충당 부채엔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국가 회계상 우발 부채로 편입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100조원의 국채도 문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기준 126조원의 국채를 갖고 있다. 국민연금은 적립금이 올해 기준 600조원에 달하면서 투자처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국가가 보증을 서는 국채는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매입량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매입한 국채는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정부 회계 또는 기금이 매입한 ‘가족 간 거래’로 인식해 국가 부채 계산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가입자가 잠시 맡겨 놓은 돈으로 간주하면 국채 매입은 국가가 가입자들에게 빚을 낸 것과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채 또한 국가 보장 지급 여부에 따라 내부 거래가 아니라 당연히 국가 부채로 인식해야 한다는 논란이 나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결국 고갈을 앞두고 국민연금의 성격과 운용 방식에 대해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는 2040년까지 약 2000조원 쌓이는 국민연금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국민연금 고갈 후 제도를 그 해 걷어 그 해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전환할 것인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얼마나 더 올릴 것인지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국민연금 관련 ‘국가 부채 편입’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회계 기준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져야 국가의 재정 책임 수준도 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국제적으로 국민연금 같은 사회 보험 제도는 국가 부채 산정 범위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국가 지급 명문화가 대외 신인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며 “국민연금 국가 지급 보장 논의도 필요하지만 지금 더 시급한 건 연금 재정을 지속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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