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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칼럼] SOC 예산이 갖춰야 할 덕목

  • 이재원 부동산팀장

  • 입력 : 2018.08.13 06:00

    [팀장칼럼] SOC 예산이 갖춰야 할 덕목
    “XX로 가는 X번 국도 타보셨어요? 얼마 전 지날 일이 있었는데 차가 한 대도 안 다닙디다. 우리나라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은 낭비가 많아요.”

    친하게 지내는 기획재정부 공무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지방에 차가 다니지 않는 길, 다시 말해 쓸데없이 만든 길이 많다는 의미인데, 다른 부처 공무원들로부터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상당수 기재부 공무원이 이렇듯 SOC 예산의 결과물을 불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정기국회가 열릴 때마다 예산안을 제출하고 심의를 받는 과정에서 국회의원들로부터 SOC와 관련한 수없이 많은 쪽지를 받고 이중 상당수가 반영된다. 국회는 보통 정부가 낸 예산안을 깎기 마련인데 어찌 된 일인지 정부가 알아서 줄여서 들고 가도 매번 총량이 다시 는다. 이런 항목은 SOC가 유일할게다.

    없던 예산을 만들어 낸 국회의원은 보란 듯이 보도자료를 내고 지역에 업적으로 자랑을 한다. 쪽지를 넣어 예산을 타낸 일은 칭찬을 받을 일이고 표로 연결된다. 그러니 결과는 엉뚱한 길이 뚫리고 쓰지도 않을 공항이 건설되는 일이 반복된다. 그러니 기재부 입장에서 SOC 투자가 영 못마땅한 것도 이해가 된다. 안 그래도 부족한 재정에 허리띠를 졸라맬 1순위로 SOC를 지목한 게 수년째다.

    하지만 SOC 예산이 그동안 문제로 지목된 것은 잘못 쓰였기 때문이지 SOC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순기능이 얼마든지 많다.

    많은 경제학자가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는 지금 SOC만큼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도 찾기 어렵다고 한다. 꼭 필요한 곳에 도로와 철도를 놓고 이를 스마트화하는 일 등은 국가 전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심지어 오르기만 하는 집값 문제의 해결책을 SOC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대대적인 확장 재정을 예고하며 이례적으로 SOC 예산 확대를 공언했다. 고용 부진은 이미 다가온 현실이고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보니 고육책을 낸 것이다. 김 부총리가 재정 지출에 보수적인 예산맨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얼마나 다급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0만명대를 넘나들던 취업자 증가 폭이 최근 10만명 아래로 고꾸라졌는데 건설업에서만 15만명쯤이 빠졌다. 지난 6월 건설 기성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감소했고, 선행지표인 건설수주는 18.3%나 줄었다. 과거 경기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건설업이 이제는 경기 악화를 부추기는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지금 시점에 정부가 SOC 예산을 확대한다는 것은 경제 전반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부총리가 밝힌 이번 SOC 투자 확대 방향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전통적 의미의 SOC 예산은 하려던 구조조정을 덜 하는 방식으로 조금만 늘리고 도시재생 같은 생활혁신형 SOC와 체육관과 미세먼지 차단 숲 등을 만드는 지역밀착형 SOC를 대폭 늘리겠다고 한 것이다.

    결국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잘게 쪼개서 수많은 곳에 예산을 내리겠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비효율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 예산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체육관이 하나 있어도 더 짓겠다며 지자체마다 너도나도 달려들 게 불 보듯 훤하다. ‘쪽지’도 넘실댈 것 같다.

    우선순위 측면을 봐도 그렇다. 지금 체육관과 문화시설을 짓는 게 급한지, 치솟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수도권과 강북 교통망을 확충하고 임대주택을 짓는 일이 급한지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개발 열풍에 살던 곳에서 밀려나는 주거 취약 계층은 늘고만 있다. 다람쥐 도로가 있는 반면 경부고속도로는 경부 ‘저속도로’가 된 지 오래다. 철길도 포화 상태라 KTX 운행은 더 늘리려야 늘릴 수도 없다.

    정부는 전통 SOC를 등한시할 필요가 없다. 아직 투자해야 할 곳은 차고도 넘친다. 제대로 검증해 쓰기만 하면 된다.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받지 않을 수많은 SOC 예산을 뿌려두면 나중에 다람쥐 도로가 아닌 다람쥐 체육관만 많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 말고도 지역 경기를 떠받칠 아이디어는 꽤나 많다. 상수도관이 낡아 돈들여 만든 깨끗한 물이 절반 이상 흘러가는 곳이 허다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 예다.

    아직 예산안은 확정되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쯤 사명감 있는 공무원들이 밤을 새워 가며 막바지 아이디어를 내고 조정을 하고 있을 듯하다. 이들이 SOC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잘만 쓰면 경기도 방어하면서 성장 동력도 되는 게 SOC다. 지금 늘린 SOC가 경제를 살리려는 SOC라기보다는 정치를 위한 SOC였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내실 있게 예산안이 짜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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