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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인터넷은행은 자동차도 메기도 아니다

  • 이종현 경제부 금융팀 기자

  • 입력 : 2018.08.09 06:00

    [기자수첩] 인터넷은행은 자동차도 메기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을 강조하면서 '붉은 깃발법'을 꺼내들었다. 19세기 영국에서 시행된 붉은 깃발법은 영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은 걸림돌로 일컫어진다. 당시 영국에서는 자동차가 처음 등장하자 생계에 위협을 느낀 마차(馬車) 업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자동차가 폭발하는 등 안전 사고도 발생하자 영국 정부는 자동차의 운행 속도를 제한하는 이 법을 시행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혁신의 상징인 자동차를 규제하고 마차를 보호하려 한 시대착오적인 붉은 깃발법을 들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비유는 '메기'다. 강한 경쟁자가 뛰어들면 다른 사업자의 경쟁력까지 함께 좋아진다는 '메기 효과'를 들어 인터넷전문은행이 메기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메기 효과는 유럽의 어부들이 청어를 싱싱하게 운반하기 위해 수조 안에 포식자인 메기를 넣은데서 유래한 말이다.

    두 개의 비유 모두 인터넷전문은행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둘 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19세기 영국에 새로 등장한 자동차도 아니고, 수조 안의 포식자인 메기도 아니다.

    19세기에 등장한 증기자동차는 그야말로 이동수단의 혁신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인터넷전문은행에서는 새로운 혁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처음에는 비대면 거래 방식을 바탕으로 빠르고 편리한 은행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이후 기존 은행이 따라하자 별다른 혁신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노하우를 금융에 접목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이렇다할 한방도 없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진보진영은 "인터넷전문은행이라고 하지만 기존 은행과 다를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지금의 모습만 놓고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을 메기에 비유하는 건 더 큰 모순이다. 청어 입장에서 메기는 절대적인 포식자다. 청어는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다녀야 한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뛰는 건 기존 은행이 아니라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정부는 중금리 대출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은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살아남기 바쁘다보니 당장 돈이 되는 고신용자에 대출을 집중한다. 올해 1분기 인터넷전문은행 가계신용대출에서 신용등급 1~3등급이 차지하는 비율은 96%에 달했다. 기존 은행들의 가계신용대출에서 1~3등급이 차지하는 비율(84.8%)보다 훨씬 높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를 합쳐봤자 지방은행 하나 정도 크기인데 메기 운운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터넷전문은행을 경계하던 기존 은행업계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규제를 푸는 것만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이 자동차와 메기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다. 결국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은 자본확충에 애를 먹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통했지만 앞으로는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어쩌면 자동차와 메기가 돼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중국 최대 ICT 기업인 알리바바의 인터넷전문은행 ‘마이뱅크’는 국내 인터넷전문은행들과는 사뭇 다른 전략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마이뱅크의 황하오 행장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작은 식당, 작은 매점들처럼 기존 은행들이 상대하지 않던 곳으로 모세혈관처럼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존재. 인터넷전문은행이 가야할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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