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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의식했나… '소문난 만남' 어정쩡하게 끝났다

  • 평택=최종석 기자

  • 김강한 기자

  • 입력 : 2018.08.07 03:06

    김동연 부총리, 취임후 첫 삼성공장 방문… 이재용 부회장 만나

    6일 오전 삼성전자 평택 공장 로비는 삼성그룹 임직원과 취재 기자 등 120여명이 꽉 들어차 북적였다. 10시 좀 넘어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았다. 부총리는 방명록에 '우리 경제 발전의 礎石(초석) 역할을 하며 앞으로 더 큰 발전 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쓰고, 이 부회장 등 삼성 임원진과 함께 '혁신 성장' 구호를 외치며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을 모은 경제 부처 수장과 재계 1위 총수의 첫 만남에서 구체적인 투자나 고용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투자 구걸' 논란 이후 말 아낀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이날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에 관심이 쏠린 이유는 지난주 벌어진 '투자 구걸' 논란 때문이었다.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이 투자를 구걸하는 것 같다는 청와대 일각의 비판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고, 부총리가 입장문까지 내며 반박했다. 5월 말 소득 주도 성장을 둘러싸고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대통령 면전에서 설전을 벌인 데 이어 또 경제팀 내부의 이견이 불거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6일 오전 김동연(왼쪽) 경제부총리가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이재용(오른쪽) 삼성 부회장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있다.
    金부총리에 깍듯한 인사 - 6일 오전 김동연(왼쪽) 경제부총리가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이재용(오른쪽) 삼성 부회장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 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궨투자 구걸궩 논란 여파로 경제부총리와 재계 1위 총수가 만났는데도 투자·고용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김연정 객원기자
    김 부총리는 이날 "기업의 애로 사항을 들으러 왔다"는 발언을 반복하며 말을 아꼈다. 이 부회장에게는 "삼성이 선도적으로 미래의 성장 동력을 만들고 상생 협력, 지배 구조와 불공정 관행 개선에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그간의 대기업 방문에서 혁신 성장을 강조했던 부총리가 지배 구조와 불공정 관행의 개선을 입에 올린 것은 다분히 청와대 일각의 비판적 시각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말을 조심하기는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방식에 대해 의견 조율이 있었지만 구걸이라는 말이 나온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부총리에게 그런 말을 쓰는 것은 결례라는 게 청와대 경제정책 라인의 생각"이라며 "다만 과거처럼 투자를 위해 대기업을 압박한다는 오해는 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게 오해를 샀다"고 했다.

    김 부총리는 이에 화답하듯 이날 기자 브리핑에서 "어떤 대기업을 방문해서도 직접적으로 투자나 고용을 종용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을 '구원투수'로 본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청와대 경제팀과 갈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건설적인 토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며 갈등이 봉합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청와대 안팎에선 "부총리 방문이 소득 주도 성장과 재벌 개혁을 포기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와해 의혹 등 삼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먼저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도는 등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겨우 만난 정부와 삼성, 투자 계획 발표 없었다

    이날 부총리와 이 부회장 만남에서 구체적인 투자·고용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김 부총리가 그동안 방문한 현대차·SK 등 대기업들이 예외 없이 방문 당일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삼성도 100조원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삼성이 사업 계획을 브리핑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삼성이 상생 협력을 위해 현재 1·2차 협력업체까지 공유하고 있는 스마트 공장 설비 노하우를 3차 협력업체까지 전수하겠다고 한다"며 "소프트웨어 분야 일자리 창출 계획도 밝혔다"고 했다.

    김 부총리는 특별히 노무현 정부 시절 경기도 파주에 LCD(액정표시장치) 단지를 유치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여러 부처가 모여 패키지로 규제를 풀고 삼성이 투자를 하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김 부총리는 "기업의 투자나 고용 계획은 전적으로 기업에 달린 일"이라면서 "삼성이 진정성을 갖고 굉장히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머지않은 시간 내에 이야기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은 "인공지능(AI), 자동차 전자장비, 5G(5세대) 이동통신, 바이오, 반도체 등에 집중 투자하겠다"며 "100조원짜리 '중장기 기업 혁신 전략'을 곧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어정쩡하게 마무리된 이날 만남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지금 경제 상황은 구걸 논란으로 시간을 보낼 만큼 한가하지 않다"며 "경제정책을 책임져야 할 청와대와 정부가 갈등을 보이며 기업에 부담만 주고 있다"고 했다.


    ※ 이 기사는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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