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22조원 영국 원전 우선협상자 지위 상실

조선일보
  • 최현묵 기자
    입력 2018.08.01 03:07

    사업권 가진 도시바가 해지 통보
    英언론 "정권 교체로 불확실성"… 탈원전 정책 여파를 에둘러 지적

    한국전력이 수주가 유력했던 150억파운드(약 22조원)짜리 영국 원전 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1일 "(영국의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권을 보유한) 도시바가 다른 업체와도 협상할 기회를 갖기 위해 지난 25일 한전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해지를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도시바로부터 일방적 해지 통보로 비상이 걸린 산업부는 원전산업정책관을 29일 런던에 급파해 영국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원전 사업권은 도시바에 있지만, 원전 계약의 키를 쥔 건 전기료 판매수익을 보장해줘야 할 영국 정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인 29~30일 영국 현지 언론은 잇따라 한전의 우선협상권 상실 소식을 보도했다. 자금난 때문에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을 매각하려는 도시바와 한국을 상대로 계약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영국의 압박 전략이었다. 애초 6월 말까지 본계약이 체결될 예정이었지만 미뤄져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9일(현지 시각) "한전이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의 구원자로 나섰으나, 이후 협상이 계속 지연되면서 본계약이 아직도 체결되지 않았다"며 "한국의 정권 교체와 신임 한전 사장 임명 등으로 불확실성이 조성됐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본격화 및 한전 사장 교체 등으로 협상이 지지부진해졌다는 것이다.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은 작년 12월 영국 원전 우선협상권을 따낸 직후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한전은 작년 12월 중국 국영 원전 기업 광허그룹을 제치고 사업의 우선협상권을 따냈고, 2025년까지 무어사이드에 한국형 원전(APR 1400) 3기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선협상권을 상실하면서 수주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한국 정부·한전과 영국 정부 간 협상이 난항을 겪는 건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 방식 때문이다. UAE 원전 수출의 경우 UAE 정부가 건설비를 전액 부담하는 방식이었지만, 무어사이드 원전은 사업자가 수십조원 건설 비용을 모두 부담해 완공한 뒤 30여 년간 영국 시장에서 전기를 팔아 투자비를 회수해야 한다.

    문제는 영국 정부가 적정한 수익을 보장해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 정부는 2016년 프랑스 EDF와 중국광핵그룹(CGN)이 건설하는 '힝클리포인트' 원전 사업에서 시장가격보다 15% 정도 높은 전기료 판매 수익을 보장해줬다가 강한 비판 여론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에 대해선 최대한 국민의 전기료 부담을 낮추려 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영국 정부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달리 사업권을 매각할 곳도 없기 때문에 본계약 체결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고 했다.

    영국 원전 수주가 결국 무산되면 '탈원전'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는 고사 위기에 처한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원전 산업계는 신고리 5·6호기 납품이 끝나는 2021년 이후에는 국내에선 일감이 없기 때문에 무어사이드 원전에 기대를 걸어왔다"며 "영국 원전 사업마저 수포로 돌아가면 원전 관련 중소기업은 마지막 희망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생태계가 붕괴한다면 현재 국내 원전의 안전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직 원전업계 고위 관계자는 "영국 원전 수주에 실패하면 일감이 사라지게 되고 결국 국내 원전에 부품을 납품하던 기업들은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어 원전 유지보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원전 안전성을 위해서라도 국내 원전 사업 재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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