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강남·홍대… 서울 핵심 상권마저 줄폐업

입력 2018.07.30 03:05

무너지는 자영업 현장 가보니… "2년만에 임대료 반토막 났다"
공실률, 홍대 소형상가 17%… 이태원 중대형 22%로 치솟아

점원만 7명인 대형 신발 판매점을 둘러보는 손님은 달랑 1명이었다. 맞은편 A 화장품 가게엔 점원 1명에 손님 0명, 인근 B 화장품점은 점원 3명에 손님 0명, C 화장품점은 점원 3명에 손님 1명….

토요일인 지난 28일 저녁 8시경 우리나라 최고 상권으로 꼽히는 서울 명동 상점가의 풍경이다. 문을 연 가게 사이엔 문을 닫은 점포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명동 내 캘빈클라인·휠라 등 유명 브랜드가 늘어선 150m 거리의 한 골목길엔 상가 1층 매장 25곳 중 7곳이 문을 닫았다. 굳게 닫힌 출입문마다 '임대 문의'라는 팻말과 함께 문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현지 중개업자는 "최악의 경기에 임대료는 2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고 했다.

29일 서울 명동 공실 상가 앞에 임대인을 구하는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이 골목 25개 상점 중 7개가 이렇게 비어 있었고, 전화를 받은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이전 계약보다 40%가량 낮춰서 제시했다.
29일 서울 명동 공실 상가 앞에 임대인을 구하는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이 골목 25개 상점 중 7개가 이렇게 비어 있었고, 전화를 받은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이전 계약보다 40%가량 낮춰서 제시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자영업자 줄폐업과 공실(空室) 급증 현상이 '어지간한 불황에도 끄떡없다'던 서울의 핵심 상권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사드 사태'로 인한 중국인 관광객의 급감, 직장인 회식 문화의 변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자영업 경기(景氣)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의 3대 상권으로 꼽히는 명동·테헤란로·홍대의 최근 1년간 공실률은 가파르게 올랐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작년 2분기 9.6%에서 올해 2분기 10.7%로 1.1%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명동은 4%→6.4%로, 테헤란로는 9.3%→11.9%로 서울 전체 평균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다. 홍대 상권은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떨어졌지만, 대형 쇼핑몰이 유동 인구를 흡수하면서 영세 자영업자가 주로 운영하는 소형 상가 공실률은 3.7%에서 17.2%로 급등했다. 급성장하던 이태원 중·대형 상가는 용산 미군 부대가 이전하면서 지금은 5곳 중 1곳이 비어 있다.

공실률이 높아지니 그동안 치솟기만 하던 상권 임대료는 급락하고 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사드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 감소가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 52시간 근로제, 최저임금 인상이 잇달아 시행됐다"며 "공실률과 임대료 등 관련 지표는 갈수록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핵심 상권 공실률 1

현장에서 느끼는 서울 핵심 상권의 위기는 '통계 그 이상'이었다. 28일 오후 8시부터 30분간 명동 유네스코빌딩 뒤편에 있는 박모(45)씨의 수제 햄버거 가게에는 대만인 남녀 커플 한 팀이 들어와 1만9000원어치를 쓰고 갔다. 그 외 시간에 박씨는 스마트폰을 하거나 가게 입구에서 담배를 태웠다. 그는 3년 넘게 운영하던 가게를 석 달 전 부동산에 내놨지만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는 "권리금 1억5000만원에 각종 취사도구 구입에 5000만원 이상 들어갔다"며 "임대료를 30~40%씩 내리는 상황에 '본전 생각'을 접은 지 오래"라고 했다. 명동 골목길에서 담배가게를 하는 양학태(80)씨는 "시골에서 열여덟에 상경해 장사로 자식 넷을 다 대학 보냈는데, 지금은 내 한 몸 생활비 건지기도 어렵다"며 "여기서 62년 장사했는데 지금 같은 불경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강남도 다르지 않았다. 27일 오후 강남파이낸스센터에서 구(舊)역삼세무서 사거리로 이어지는 약 560m 대로변. 지상 4~7층 규모 중소형 빌딩 외벽엔 예외 없이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맥도날드 매장이 빠져나간 한 건물의 1층 상가는 3개월째 공실이었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테헤란로의 한 치킨 매장은 작년 말부터 폐업을 준비 중이지만 권리금을 회수할 새 세입자를 찾지 못해 적자(赤字)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치킨집 주인이 중개업소에 의뢰한 권리금은 4억원에서 1억5000만원까지 낮아졌다. 역삼동 으뜸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10여 년간 중개업소를 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관광객 감소' 엎친 데, '정치·정책 문제' 덮쳤다

층 공실 넘치는 명동 골목

핵심 상권 침체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외국인 관광객 감소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상반기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은 2016년보다 10.9% 적은 722만명이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회복되지 않은 탓이다. 명동 해산물요리 전문점 주인은 "원래 우리 가게는 관광객이 매출의 70~80%를 담당했는데 사드 여파가 치명적이었다"고 했다.

반면 일본은 관광객 급증세와 맞물리면서 대도시 주요 상권 공실률이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방일 관광객은 2011년 622만명에서 작년 2977만명으로 늘었고, 이들이 쓰고 간 돈은 8135억엔에서 4조4162억엔으로 늘었다. 일본 부동산정보업체 '미키'에 따르면 2011년 9~12%이던 도쿄·오사카·나고야 중심부 공실률은 작년 말 3~4%까지 떨어졌다.

'사회 분위기 변화'와 '정치 상황'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명동 금융사 밀집 지역 내 삼겹살집 매니저는 "'저녁 있는 삶' 확산으로 회식이 사라지면서 대목인 목·금요일 매출이 1년 새 반으로 줄었다"며 "매출은 15% 줄었는데, 인건비는 계속 오르고 있어 사장님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일식점 주인 도모(43)씨는 "재작년 하반기부터 김영란법, 탄핵 국면,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등 악재가 이어질 때마다 매출이나 이익이 계단식으로 내려앉아 이제는 한계"라며 "식당이 음식 품질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종업원이라도 줄일 생각"이라고 했다.

◇임대사업자 대출 부실화 우려도

장사가 안 되니 임대료는 내린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명동은 공실이 늘면서 임대료가 1년 새 3.3㎡당 91만4595원→89만6544원으로 2% 내렸다. 명동의 빈 상가에 붙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여성 건물주는 "월 4400만원 받던 상가인데, 작년에 세입자가 나갔고 지금은 2000만원대 후반까지 내렸는데도 공실"이라고 했다. 그는 "갈수록 문의가 줄고 있어, 지난봄에 3500만원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퇴짜 놓은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위기는 '예비 자영업자'들도 느끼고 있다. 홍대·신촌 상권 전문인 '수 공인중개 사무소' 정은호 과장은 "이달 들어 상가 문의 전화는 이틀에 한 통꼴"이라며 "식당·카페를 차리려던 사람들도 '더 생각해보겠다'고 입장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홍대 건물주 김모(52)씨는 "3층을 주변 시세보다 30% 저렴한 월세 100만원에 내놨는데, 두 달 만에 겨우 찾은 입주 희망자가 외벽 단열 공사와 바닥 광택 작업 등 500만원어치 추가 공사를 요구한다"며 "대출은 많고, 금리는 오르니 무리한 요구라도 들어줘야 하나 고민이 크다"고 했다.

이와 관련, 키움증권은 27일 보고서에서 '공실률 상승, 임대수익률 하락은 은행의 임대사업자 대출 부실화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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