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정복 어디까지]① 암세포의 철벽을 뚫어라…면역항암제+TGF-β억제 병용요법 개발 활기

조선비즈
  • 허지윤 기자
    입력 2018.07.28 06:00

    면역항암제의 등장으로 암(癌) 치료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면역항암제는 직접적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사선 요법이나 화학·표적 항암제 등 1세대·2세대 치료법과 달리 환자 면역력을 강화해 암 치료를 돕는 3세대 치료법이다. 최근 학계와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사람의 면역체계와 복잡한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면역항암제’ 개발과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 에 대한 연구개발(R&D)에 앞다퉈 나섰다. 이 분야는 빌 게이츠가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집중 투자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면역항암제 등장과 함께 급부상한 암 치료 및 연구 개발 트렌드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최근 학계는 암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암 세포뿐 아니라 암의 미세환경을 조절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암 미세 환경을 조절하는 형질전환증식인자 ‘티지에프-베타(TGF-β)’가 암 치료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27일 의료계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현재 다국적제약사들은 ‘TGF-β’의 신호를 차단하는 다양한 약제와 기존 항암제와의 병용 투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노바티스, 사노피, 일라이릴리, 머크 세로노 등 다국적 제약사들이 TGF-β 저해 항체 및 저해 물질을 개발 중이다.

    국내 제약사 중에서는 테라젠이텍스의 자회사 메드팩토가 TGF-β 신호를 특이적으로 억제하는 약물 ‘백토서팁’을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최근 다국적제약사 MSD(미국 머크),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등 2곳과 면역항암제 병용 투여 임상 공동 개발하는 계약을 각각 체결해 TGF-β 억제제 개발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국내·외 제약사들이 ‘TGF-β’의 신호를 차단하는 다양한 약제와 기존 항암제와의 병용 투여 개발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면역항암제는 사람 몸 속의 면역체계를 활용해 암을 치료하는 의약품으로, 특히 기존 치료법으로 실패한 전이 암과 재발 암에서 효과가 높아 1세대 화학항암제, 2세대 표적항암제에 이은 3세대 최신 치료 요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조선DB
    ◇ 면역세포 공격으로 부터 암 세포 보호하는 TGF-β

    암세포는 생존을 위해 면역세포(T세포)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숨기고 면역세포를 약하게 만든다.

    새롭게 등장한 면역관문억제제 등 면역항암제는 암세포가 숨는 데 도움을 주는 단백질 ‘PD-1’· ‘PDL-1’, ‘CTLA4’ 등의 작용을 차단하고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공격한다. 면역관문억제제는 면역세포 표면에서 면역의 강약을 조절하는 ‘면역관문’에 붙어 약해진 면역세포를 강하게 만들고, 강해진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해 파괴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 치료법으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전이·재발성 말기 암 환자 중 일부 환자들은 면역관문억제제(면역항암제) 투여로 암 종양이 줄어들거나 종양이 사라지는 치료 효과를 보였다. 이 때문에 면역항암제는 암 치료에 새 희망이 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PD-L1 항체 항암제로 치료 효과를 보는 환자 군은 아직까지 약 10%정도에 불과하다. 기존 항암 치료 및 면역항암제의 낮은 치료율이 ‘TGF-β’와 밀접한 영향이 있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TGF-β는 정상 세포에서는 상피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암 억제 물질로 작용하지만, 암 세포에서는 이 기능이 소실되고 오히려 암의 전이성 진행을 촉진시키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암 세포들이 TGF-β를 분비하고 주변 세포에 ‘스트로마’라는 딱딱한 막이 형성되는 섬유화를 진행시켜 암세포에 유리한 미세환경을 만든다. 면역항암제가 면역세포(T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려고 해도 TGF-β 발현으로 형성된 암 세포 주변 두꺼운 철벽에 막혀 면역세포가 암세포에 도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실제 종양 내 TGF-β 발현이 높을 경우 PD-L1 항체 항암제 등 면역항암제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사실이 입증됐다. 특히 면역항암제 치료효과가 낮은 특징을 보이는 고형암(췌장암, 폐암, 두경부암, 간암)등에서 TGF-β가 과다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초 국립보건원(NIH) 소속으로 정상세포의 증식을 방해하는 세포 구성물질인 'TGF-β' 수용체 유전자가 손상되거나 돌연변이로 변하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김성진 메드팩토 대표 겸 테라젠이텍스 기술총괄 부회장은 “항암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암 미세환경인데, 암 미세환경을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인자가 TGF-β”라고 설명했다.

    면역항암제 개발에 주목하고 있는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겸 캔서롭 회장은 "면역관문억제제가 위장한 테러범(암세포)을 잡기 위해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특수기동대(SWAT) 같은 역할을 한다면 TGF-β 억제 약물은 면역항암제의 암공격 전투력을 높이는 보급병 또는 수송기로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면역관문억제제, 항암바이러스 등 다양한 면역 항암 기술이 봇물 터지듯 나오면서 암 치료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며 "특전사, 테러진압부대, 보병 부대 등이 결합해 암을 향해 전략적으로 돌격하면 최종 목표인 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제약계 소리없는 전쟁 “TGF-β 신호전달과정 막아 암 치료효과 높인다”

    일부 대형 제약사들은 TGF-β 신호전달과정을 억제하는 물질을 오랫동안 개발해왔다. 하지만 해당 약물이 단독요법으로는 치료에 한계를 보이면서 개발이 중단됐다. 당시만해도 요즘 트렌드인 치료제 병용요법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면역관문억제제(CPI) 등 면역항암제가 등장하면서 ‘TGF-β’ 선택 억제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면역항암제의 치료 반응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제약사와 연구자들이 ‘TGF-β’의 신호를 차단하는 다양한 약제와 기존 항암제와의 병용 투여 요법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는 자체 2세대 (TGF-β 제1형 수용체) 인산화 저해제를 개발하고 있으며 현재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 약물은 앞서 개발을 추진하다 중단한 갈루니서팁(LY2157299)의 물성과 효능을 개선·향상한 2세대 약물이다.

    머크 세로노(Merk Sereno)는 지난 6월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TGF-β를 억제하는 단백질과 면역항암제를 융합한 이중 작용 면역항암 융합단백질(M7824)의 임상 1상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백토서팁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남수연 메드팩토 수석 부사장은 “메드팩토의 항암신약 후보물질 백토서팁의 궁극적인 목표는 암 종류에 관계없이 TGF-β 발현으로 인해 치료를 방해하는 종양 주변 세포의 섬유화를 깨고, 면역억제기능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데 있다”며 “섬유화 조직이 많이 발달해 항암 치료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말기 암환자에게 면역항암제 병용 치료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메드팩토도 ASCO에서 TGF-β 신호 억제 약물 백토서팁의 임상 1상 디자인과 결과를 담은 포스터를 발표해 당시 참석한 대형 제약기업과 연구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제약시장 분석기관 이밸류에이트파마(EP)는 세계 면역항암제 시장 규모가 2015년 16억달러에서 오는 2020년 350억달러(39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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