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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가짜백신 공포 확산...'약의 신' '백신의 왕'에 비친 中 의약계 현실

  •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 입력 : 2018.07.23 04:00 | 수정 : 2018.07.24 21:27

    ‘나는 약의 신이 아니다’ 영화 흥행 1위⋅‘백신의 왕’ 글 SNS 확산...가짜 백신 잇단 적발
    백신공포 확산에 리커창,일요일에도 특별지시 “즉각 모든 백신 생산⋅판매 조사하라”

    지난 21일 중국 최대 SNS 위챗에서 ‘백신의 왕(疫苗之王)’이란 글이 급속도록 퍼져나갔다. 수시로 삭제되지만 네티즌들은 복제한 글을 다시 퍼나르고 있다. 바이두로 검색하면 대부분 삭제됐다고 나온다.

    이 글에는 가오쥔팡(高俊芳) 한강쥔(韓剛君) 두웨이민(杜偉民)이란 3명의 이름과 창성(長生)바이오,옌션(延申)바이오, 캉타이(康泰)바이오 3개 백신 기업이 등장한다. 선전 증시에 상장된 캉타이는 22일 안정된 품질의 백신을 공급중이다며 이 글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는 공시를 냈다.

    하지만 이 글은 가짜 백신 공포 확산과 맞물리며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글은 이들 3개사가 모두 국유생물제제연구소를 기반으로 설립된 국유기업을 전신으로 하고 있다며 헐값에 민영화된 뒤 빠른 시간에 여러 종류의 백신 생산 자격을 얻어 높은 수익을 얻거나 증시에 상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 3명이 큰 부(富)를 쥐었지만 가짜 백신에 연루됐다고 폭로한다.

    ‘백신의 왕’ 글 등장은 창성바이오의 가짜 백신 문제가 잇따라 불거진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 15일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관리국은 창성바이오가 인체용 광견병 백신 ‘베로 셀(Vero-cell)’ 생산 기록을 조작하는 등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을 위반했다고 밝히고 광견병 백신 제조와 관련한 GMP 인증을 즉시 취소하고 해당 제품의 생산 및 판매를 금지시켰다.

    또 18일엔 지린성 식약품 감독관리국이 창성바이오에 디피티(DPT, 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백신 효과 부적합 판정에 따른 부당소득 몰수와 벌금 등 344만위안(약 5억 7400만원)에 달하는 처벌을 내렸다고 창성이 19일 저녁 이를 공개했다. 재고로 남은 100개만 압수됐고, 산둥성에 25만개가 넘는 DPT 백신이 공급된 것으로 알려져 아이를 둔 부모들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일요일인 22일 상하이 허난 하이난 충칭 광시 등 중국 전역의 지방정부가 창성이 만든 광견병 사용 중단 조치 사실을 있따라 공지한데 이어 국가약품감독관리국 관계자가 창성에 대한 조치를 설명하는 게 이날 중국 관영 CCTV 메인 저녁 뉴스를 타는 등 중국 당국은 불안감 진정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중국이 백신 공포에 휩싸이자 급기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까지 나섰다. 리 총리는 “이번 백신 사건은 인간의 도덕 마지노선을 깬 것으로 모든 인민들에게 명명백백하게 설명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즉각 조사팀을 구성해 모든 백신 생산과 판매 등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고 중국 정부망이 이날 저녁 전했다. 리 총리는 어떤 기업이나 누가 연루됐든 절대로 관용을 베풀지 말고 엄정 처벌하라고도 했다.

    ♢ ‘백신의 왕’ ‘나는 약의 신이 아니다’ 인기 폭발 배경은 어두운 제약 현실


    ‘나는 약의 신이 아니다’ 영화 포스터
    ‘나는 약의 신이 아니다’ 영화 포스터
    사실 여부를 떠나 ‘백신의 왕’이란 글이 공감을 얻는 건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나는 약의 신이 아니다(我不是藥神)’ 가 21일까지 28억 3000만위안(약 4726억원)의 티켓 판매수입으로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중국 제약업계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화를 기초로 만든 ‘나는 약의 신이 아니다’에선 고가의 복제 항암약을 인도에서 구해 싼 값에 대주는 ‘약의 신’이 등장한다. 리커창 총리까지 이 영화를 거론하며 "암 등 중증 질환자가 돈이 없어 약을 못 사는 현실에 대한 호소는 약값 인하와 공급 확대의 시급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각 정부 부처에 관련 대책을 마련해 신속히 집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지난 18일 중국 정부망이 전했다.

    ‘백신의 왕’이나 ‘약의 신’이나 모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9차 당대회 보고에서 새로 규정한 중국의 모순,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충분한 발전 사이의 모순’을 보여준다. 2008년 멜라민 분유 사건 등 식의약품 안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관련 실상을 폭로한 중국 SNS의 글이나 영화의 인기로 불거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이 지난 5일 중국 제약사 저장화하이(浙江華海)가 만든 의약품 원료 발사르탄에서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을 발견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진 중국 제약 품질 문제도 다르지 않다. 한국을 비롯해 28개 국가는 이미 이 제품에 대한 판매 중지와 제품 회수에 들어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인민일보는 22일 논평을 통해 문제 있는 백신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모든 제약 공장의 생산허가를 새 기준에 맞춰 갱신하는 형식으로 난립한 불량 공장 정리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모순의 근저에 있는 정경유착 등에 기반한 기득권층의 이익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중국 제약의 공급측 구조 개혁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신의 왕’ 탄생기

    “백신의 왕들이 지배한 3사가 중국 백신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중국 1위 간염 백신 기업, 1위 독감 예방주사 기업, 2위 수두 백신 기업, 2위 광견병 백신기업 등의 타이틀이 붙은 이들 기업이 만든 제품이 매일 당신과 당신 아이의 몸에 흐르고 있다. ”

    ‘백신의 왕’ 글의 한 대목이다. 이 글에 따르면 장시성과 허난성 카이펑의 위생방역담당 공무원이던 두웨이민과 한강쥔은 2001년 창성바이오 지분 인수에 나서고, 1994년부터 총경리를 맡아오던 가오쥔팡과 함께 2003년 이 회사의 지분 절반을 차지했다. 2007년 한강쥔은 지분을 매각해 가오쥔팡이 실질적인 지배주주가 되도록 했다. 이들이 창성을 인수한 2003년 기업가치는 1.2억위안(약 200억원)이었지만 2015년 우회상장때는 55억위안(약 9185억원)으로 불어났다. 20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141억위안(약 2조 3547억원)에 달했다.

    창성은 중국 광견병 백신 시장 점유율 23%로 2위에 올라있다. 지난해에만 354만 세트의 광견병 백신을 생산했다. 이 회사가 생산한 광견병 백신은 인도 캄보디아 나이지리아 등에서도 판매 허가를 받았다.

    이 글은 두에이만과 한강쥔이 다음 타깃으로 또 다른 광견병 백신 기업 옌션바이오를 잡고 2000만위안(약 33억원)에 지분 90%를 인수해 민영화했다고 주장했다. 한강쥔이 동사장이 된 옌션바이오는 이후 3년간 각종 백신 생산 자격을 회득했고 독감 예방주사 시장에서 1위에 올랐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상장이 추진됐지만 식약당국에 의해 광견병 백신 기록을 조작하고, 원료를 적게 사용해 약효를 내지 못하는 문제가 적발돼 상장은 물건너 갔다.하지만 이후 다른 백신 수주와 생산 자격을 있다라 따내면서 투자한 돈을 회수할 만큼의 순이익을 내는 회사로 성장했다.

    이어 두웨이민은 선전의 국유기업 캉타이바이오를 2008년 인수했다. 당시 기업 가치 6억위안(약 1002억원)의 회사는 2016년 상장 첫날 138억위안(약 2조 3046억원)의 회사로 커졌다. 중국 최대 간염 백신기업으로 2013년 이 회사 간염 백신을 접종한 신생아 8명이 사망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한달 후 당국의 백신은 문제없다는 조사 결론을 냈고, 회사는 상장에 성공했다. 캉타이는 ‘백신의 왕’이란 글을 반박하면서 이 사실을 들어 당시 백신 문제를 지적했던 중국 매체들이 관련 기사를 삭제했다며 자사의 백신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웨이민은 중국 부호전문기관인 후룬연구원이 선정한 2017년 중국 부호 순위에서 73억위안(약 1조 2191억원)의 자산을 가진 559위 부자에 올랐다. 가오쥔팡은 51억위안(약 8517억원)의 자산으로 820위를 기록했다.

    ♢감옥에 간 ‘약의 신

    ‘백신의 왕’이 승승가도를 달려왔다면 ‘약의 신’은 굴곡의 삶을 살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인도에 가서 항암제 복제약을 대신 사다주는 것으로 떼돈을 번다. 제약업계의 압박과 경찰의 수사로 불안감을 느낀 뒤 다른 사업자에게 계약권을 넘겼지만 백혈병을 앓던 친구가 값싼 복제약을 구하지 못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인도 복제약을 들여와 원가만 받고 환자들에게 팔기로 한다. 약의 신이 된 배경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밀수, 불법 약품 판매로 재판을 받는다.

    이 영화 시나리오는 본인이 2002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인도 복제약 효과를 본뒤 다른 환자들을 위해 이를 대신 사다주다 불법 약품 판매죄로 구속된 루융(陸勇) 사건을 기반으로 했다. 수천 명의 환자와 가족들이 루융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고 루융은 2014년 보석금을 내고 가석방됐다. 그는 지금도 값싼 인도 복제약을 복용하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4월과 6월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항암제 수입관세 폐지 등 공급 확대 정책을 지시했다. /중국정부망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4월과 6월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항암제 수입관세 폐지 등 공급 확대 정책을 지시했다. /중국정부망
    ‘나의 약의 신이다’를 거론하며 “세금을 내렸는데 약값을 못내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한 리 총리는 4월과 6월 2차례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항암제 공급 확대 정책을 지시할만큼 제약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이에 따라 지난 5월1일부로 수입 항암제에 대한 관세 철폐 조치를 내린 데 이어, 의료보험 적용대상에 포함되는 항암제 범위를 확대했다. 또 제약회사와의 협상을 통해 약품 가격도 낮추기로 했다. 전자상거래 등을 활용해 중간 유통단계를 없애는 데도 속도를 내고, 혁신 신약에 대한 지식재산권 보호도 강화하기로 했다.

    고가 약 논란이 불거지면서 백신 기업들의 높은 수익률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신경보는 22일 ‘백신의 왕’ 매출 총이익률이 중국 증시 황제주인 마오타이를 웃돈다고 보도했다. 중국 증시에 상장된 백신 업체는 52개사로 올 1분기 이익률이 평균 50%를 웃돌았다. 특히 창성과 캉타이가 각각 91.59%와 91.07%로 1,2위를 차지했다. 창성의 이익률은 같은 기간 마오타이의 이익률(91.31%)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명보는 "정부가 약값 인하 정책을 추진하지만, 기득권 집단의 저항에 부딪혀 유명무실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며 중국 정부의 대책이 실효성을 거둘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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