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이이잉~, 슈우우웅~!"

지난달 26일 오후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제주시 한경면 해안가. 높이 120m가 넘는 풍력발전기가 거센 바람에 돌아가고 있었다. 비행기가 머리 바로 위를 지나는 듯한 굉음을 끊임없이 토해냈다. 이 지역엔 이런 해상풍력발전 10기(基)와 육상풍력발전 10여 기가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바람의 섬' 제주도엔 최근 풍력발전 설비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119기(육상 109기, 해상 10기)가 운전 중이다. 여기에 현재 짓고 있는 7기를 포함해 81기가 신규 건설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육상풍력발전기는 1메가와트(㎿)당 25억원, 해상풍력발전기는 50억~60억원의 비용이 든다. 이를 바탕으로 추산하면 현재 270㎿ 규모의 제주 풍력발전 시설 조성엔 7500억원 넘는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시 한경면 해안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풍력발전기. ‘바람의 섬’ 제주엔 육상·해상 풍력발전기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지만,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니 화력발전소도 더 짓고 있는 실정이다.

같은 날 제주시 삼양1동엔 중부발전이 짓는 240㎿급 LNG 화력발전소 건설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8월 준공이 목표다. 남부발전도 2020년 6월까지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해안로에160㎿급 LNG 화력발전소를 세우기로 했다. 화력발전소 건설 두 곳에 들어가는 자금은 6430억원이다.

이처럼 제주에선 풍력발전 설비와 화력발전이 덩달아 늘고 있다. 풍력발전이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화력발전소를 더 지어 재생에너지를 '백업'하기 위해 벌어지는 일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제주 지역 풍력발전 설비의 평균 이용률은 23%. 제주의 풍력발전 설비 용량이 270㎿라도 실제 공급 능력은 62㎿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정부는 제주 지역의 전력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4500억원을 들여 육지로부터 전력을 끌어 쓸 수 있도록 2020년까지 해저 송전선로도 더 건설할 예정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별도로 1조원 이상 자금을 쏟아붓는 셈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늘렸지만 수급 불안

자유한국당 최연혜 의원이 전력거래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주 지역의 연평균 소비 전력은 657㎿, 최대 소비 전력은 950.4㎿다. 제주의 전력 설비 용량은 중유화력발전 590㎿, 재생에너지 400㎿, 육지와 제주를 잇는 송전선(연계선)을 통해 공급받을 수 있는 전력(700㎿) 등 총 1690㎿다. 설비 용량만 놓고 보면 최대 소비 전력을 충족하고도 남아 정전 우려는 전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햇빛과 바람 등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오락가락한다는 점이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우리나라 태양광발전의 평균 이용률은 13%, 풍력발전은 23%에 불과하기 때문에 설비 용량만큼 전력을 공급하지 못한다"며 "날씨나 기후 조건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 줄 화력발전 등 기저전력(基底電力·지속적·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전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람 많이 불어도 발전 중단

제주는 10~3월까지는 풍속이 초속 7m가 넘어 풍력발전 이용률이 40%를 넘기도 하지만, 4~9월엔 풍속이 느려져 이용률이 10%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바람이 적게 불어도 문제지만 겨울철 바람이 많이 불어도 문제다. 풍력 발전량이 급격히 늘면 제주 지역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기 때문에 풍력발전을 중단해야 한다. 전력거래소가 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풍력발전량이 급격히 늘어 전력거래소가 각 발전소에 발전 중단을 요청한 것은 2015년 첫 요청 이후 올 5월 말까지 32회(2227MWh)에 달했다. 작년 16차례, 올해도 7차례 발전 중단을 요청했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화력발전과 육지로부터 공급받는 전력을 최소로 줄이고서도 재생에너지 발전 출력이 전력 수요를 초과하는 경우에만 발전 중단을 요청한다"며 "전력 계통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풍력발전 등으로 생산한 전력을 별도로 저장해놓을 수 있는 대용량 배터리(에너지 저장장치·ESS)만 충분하다면 이런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ESS는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저장 용량도 충분치 않다. 남부발전은 2015년 50억4000만원을 들여 ESS 설비를 마련했지만, 배터리 용량은 8㎿에 그친다. 중부발전도 2016년 27억원을 들여 2㎿급 ESS 설비를 마련했다. 풍력발전기 1기 용량(3MW)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겨울철 풍속이 좋을 때 많이 발전해야 풍속이 좋지 않을 때 손실을 보전할 수 있을 텐데 지금 같은 시스템에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현재 기술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화력발전소나 원전을 대체하는 기저전력이 될 수 없다"며 "정부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더라도 기술 혁신으로 발전 효율이 일정 수준에 오른 뒤에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