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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자귀나무, 배롱나무... 장마철에 피는 나무꽃

  •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7.14 05:00

    장마철에도 꽃은 피어납니다. 궂은 날씨로 벌과 나비의 활동이 확연히 줄어드는 시기인데도 왜 꽃을 피워대는 걸까요? 식물은 저마다의 전략으로 살아간다지만 장마철에 피는 꽃은 무슨 생각에서 그러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략적이지 못하다고 단정 지어선 안 됩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전략이 있는 것인데, 우리의 얄팍한 지혜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네들은 장마철보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춰 꽃 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장마철 풍경
    장마철 풍경
    장마기간을 끼고 피어서 그런지 여름 꽃은 개화기가 긴 편입니다. 특히 나무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능소화, 모감주나무, 자귀나무, 배롱나무입니다.

    하늘을 업신여기며 피는 꽃이라는 뜻의 능소화(凌霄花)는 장마철을 제철로 아는 듯합니다. 부러 그러는 것인지 비가 오는 때를 기다려 수십 개의 주황색 나팔을 불어댑니다. 다른 꽃은 바람 불고 비가 내리면 꽃잎을 닫지만 능소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펼쳐낸 꽃을 다시 오므리는 법이 없으니 자존심 하나만은 최고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며 피어나는 능소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며 피어나는 능소화
    능소화는 중국이 원산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주 옛날에 들여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조선 시대만 해도 능소화는 양반들이나 심었다 하여 양반꽃으로 불렸습니다. 양반이 아닌 사람이 심으면 잡아다가 곤장을 쳤다고 하니 신분의 차이가 확실하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때나 그랬지 지금은 아무 집에서나 능소화를 심어 기를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도 요즘 뉴스를 보면 아직도 신분의 차이가 아주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느낍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피어 올라가는 능소화 너머로 날아가는 비행기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제 시대가 또 바뀔 테니 높은 곳에 있더라도 낮게 고개 숙여 피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전북 진안군 마이산 탑사의 능소화
    전북 진안군 마이산 탑사의 능소화
    어쨌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피어 올라가는 능소화의 진수를 보려면 공항보다 전북 진안군의 마이산 탑사를 찾으면 됩니다. 한 그루의 능소화가 커다란 암벽 하나를 다 뒤덮으며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경외감마저 듭니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모감주나무 군락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모감주나무 군락
    이맘때면 모감주나무는 노란 꽃을 비처럼 떨어뜨려 골든레인트리다운 짓을 합니다. ‘골든레인트리(Golden rain tree)’라는 영어이름에서 보듯 아예 ‘비’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꼭 비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고, 자잘한 꽃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이 황금비가 오는 것 같다 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모감주나무의 꽃
    바닥에 떨어진 모감주나무의 꽃
    이 모감주나무가 전남 완도군의 대문리나 충남 태안군의 안면도 같은 서해안에서 발견되었을 때만 해도 중국에서 해류에 종자가 떠밀려 와서 전래됐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내륙 지방과 동해안 쪽에서도 모감주나무의 자생지가 발견되면서 자생종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에서 해류에 의해 종자가 떠밀려왔을 것이라는 설은 모감주나무의 종자가 과연 바다의 짠물에서 어떻게 오랫동안 견딜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모감주나무의 풍선 같은 열매
    모감주나무의 풍선 같은 열매
    그런데 모감주나무의 열매를 보면 풍선처럼 부풀어 물에 잘 뜨게 생긴 구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보트 역할을 한다면 황해를 건너오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암만 그렇다 해도 험난한 바다를 내내 온전하게 건너온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한두 개만 상륙에 성공한대도 그 희박한 가능성이 현실로 이뤄지는 것이기에 억측이라고 치부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자귀나무는 향기로운 분홍색 총채를 들어 수수한 꽃내음을 선사합니다. 그 분홍색 꽃이 잔뜩 핀 모습이 아름다워 경관수로 심어놓은 곳도 있습니다. 아름다움 못지않게 좋은 향기가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만들어 눈과 코를 동시에 즐겁게 해주니 그 밑에서의 데이트는 성공 확률이 매우 높을 것 같습니다.

    자귀나무의 꽃에서는 매우 좋은 향기가 난다
    자귀나무의 꽃에서는 매우 좋은 향기가 난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 밤이 되면 잎이 겹쳐지는 모습에서 남녀 간의 애정행각을 떠올려 유정수니 합환수니 하는 식의 재미난 별칭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소가 좋아해서 소쌀나무라고도 합니다.

    겨울이면 가지 끝에 남은 꼬투리 열매가 바람에 나부끼면서 서로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데, 그것이 여자의 수다스런 혀와 같다 해서 여설목(女舌木)이라고 한다는 사실은 이제 그만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자귀나무의 겨울 열매
    자귀나무의 겨울 열매
    배롱나무는 개화 기간으로 따지면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마가 끝난 9월까지도 계속해서 피어납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무색케 하는 백일홍처럼 오래도록 피는 나무라 하여 ‘백일홍나무’라고 하던 것이 변해 배롱나무가 됐습니다.

    한 송이의 꽃이 실제로 그렇게 오래도록 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꽃이 계속해서 피고 지는 것입니다. 그런 특징에 주목해 주로 경관수로 심고 가로수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배롱나무
    배롱나무
    배롱나무의 또 다른 특징은 매끈한 껍질에 있습니다. 나무껍질이 미끄러워 원숭이도 미끄러진다는 뜻에서 일본에서는 ‘원숭이미끄럼나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사람의 피부처럼 보이다 보니 간지럼을 잘 탈 것 같아 ‘간지럼나무’ 또는 ‘간질나무’라고도 불립니다.

    실제로 나무가 간지럼을 잘 타는 거냐며 간지럼을 태워보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땐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무를 간질이면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가지 끝이 흔들린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정말정말 난감합니다. 나무는 나무일 뿐 사람이 아닙니다.

    배롱나무의 매끄러운 껍질
    배롱나무의 매끄러운 껍질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 그렇지 장마나 태풍이 생태계에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일단 초목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병충해도 많이 줄여줍니다. 한바탕 비가 퍼부어지고 나면 혼돈의 상태가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식물들은 새로이 재편되는 질서체계에 순응하며 안정을 되찾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새로운 식물들에게 번성할 기회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큰 나무가 넘어져 뿌리가 드러난 자리는 수많은 생명이 살아갈 터전이 되어줍니다.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다 찢겨져도 그 덕에 어둡던 숲의 바닥으로 많은 빛이 떨어져 새 생명을 깨어나게 합니다. 그런 게 다 자연의 이치인데 알고 나니 너무 싱겁고 당연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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