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개인정보 막 쓰지 말라" 美·中·유럽·베트남, IT기업에 빗장

  • 강동철 기자

  • 입력 : 2018.07.09 03:06

    - 데이터 소유권, 누구에게 있나
    IT기업들 데이터 활용 맞춤 광고 천문학적 수익 올리자 견제 나서

    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 의회 앞에서 ‘페이크북(fakebook·가짜)을 고쳐라’는 티셔츠를 입고 화난 얼굴 이모지 가면를 쓴 한 시민이 유럽연합기를 흔들며 반(反)페이스북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 의회 앞에서 ‘페이크북(fakebook·가짜)을 고쳐라’는 티셔츠를 입고 화난 얼굴 이모지 가면를 쓴 한 시민이 유럽연합기를 흔들며 반(反)페이스북 시위를 하고 있다. /블룸버그
    세계 각국 정부가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들의 데이터 활용에 대한 규제안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실리콘밸리 IT(정보기술) 기업에 적대적인 중국·유럽에 이어 IT기업들의 본산인 미국에서도 개인정보·데이터 활용에 대해 규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세계 IT 기업들의 본사가 몰려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는 IT 기업들의 고객 정보, 데이터 활용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캘리포니아 소비자 프라이버시법(CaCPA)'을 제정하고 2020년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도 연방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개인정보 활용을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인터넷 기업들은 '개방'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비약적인 성장을 달성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구글·페이스북 등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시장 독점적 지위를 장악하고, 개인정보 유출, 가짜 뉴스 논란 등에 휩싸이면서 이들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 기업들의 주요 매출원(源)인 고객 개인정보·데이터가 집중적인 규제 대상으로 꼽힌다. IT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은 그동안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무한대로 영향력을 키워왔지만 앞으로는 주요 국가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3대 시장에서 모두 IT 기업 견제 시작

    이런 움직임이 가장 거센 곳은 유럽이다. 유럽연합(EU)은 올 5월부터 IT 기업들이 고객 정보를 수집할 때는 반드시 동의를 얻어야 하고 고객 정보를 다른 기업에 유출·판매할 수 없도록 하는 새 개인정보 보호규정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발효했다. 또 수집한 정보는 별도의 허가 없이는 유럽 밖으로 반출할 수 없고, 고객이 원하면 삭제를 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글로벌 매출액의 최대 4% 또는 2000만유로(약 260억원) 중 높은 금액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예를 들어 작년 매출이 1108억달러(약 123조7700억원)였던 구글이 GDPR을 어길 경우 44억달러(약 4조9200억원)를 벌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여기에 EU는 'e프라이버시법'이라는 이름의 다른 규제법안도 준비 중이다. e프라이버시법은 페이스북 메신저, 왓츠앱 같은 메신저 서비스뿐만 아니라 채팅 기능을 제공하는 모든 IT 기업들이 대화 내용, 통신 사용 이력 같은 개인 정보를 동의 없이 저장할 수 없도록 한다. 또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는 사용자들에게도 기업들이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될 전망이다.

    IT 기업들의 데이터 활용에 칼 빼든 각국 정부
    2020년부터 발효되는 캘리포니아 소비자 프라이버시법(CaCPA)도 GDPR 못지않은 강력한 규제안이다. 이 법안의 골자는 IT 기업들이 어떤 종류의 개인정보·데이터를 수집하는지를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사용자들에게 낱낱이 공개하도록 했다. 또 데이터 판매·제공을 거부한다고 밝힌 사용자의 데이터는 다른 기업들에 제공할 수 없도록 한다. 구체적인 과징금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 법안을 어긴 기업에는 상당한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의 시장인 중국은 작년부터 시행한 '사이버보안법'을 통해 모든 기업들의 데이터를 자국 외로 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중국인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서버(대용량 컴퓨터)를 중국 내에 두도록 했다. 이로 인해 세계 1위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서비스 업체인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최근 중국 내 데이터센터를 모두 현지 협력사에 매각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는 중국에 데이터센터를 별도로 세웠다. 동남아시아의 맹주인 베트남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달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모든 기업은 현지에 데이터센터를 건립해야 하고, 고객 정보나 데이터를 국외로 반출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데이터 활용 방식에 제동… 스타트업에는 치명타 될 수도

    그동안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IT 업체들은 사용자들에게 명확한 고지 없이 데이터와 개인정보를 수집·분석한 뒤 사용자들에게 맞춤형 광고를 보여주고 막대한 매출을 올렸다. 일부 기업은 다른 기업들에 자신들이 보유한 사용자 데이터를 제공·판매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혁신'과 '소비자 편익 증대'라는 논리에 묻혀 버렸다. 하지만 글로벌 IT 기업들이 막강한 독점력을 통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자 분위기가 확 바뀌고 있다. 데이터의 소유권이 사용자와 IT 기업 중 어디에 귀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고, 일각에서는 글로벌 IT 기업들이 매일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주는 사용자에게 수익의 일부를 나눠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IT 기업들은 각국 정부의 규제가 산업 발전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데이터 사용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신생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구글·페이스북·애플·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은 데이터 관련 규제를 준수할 수 있는 자금과 역량이 있고, 고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객 동의를 받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갓 서비스를 시작한 스타트업들은 까다로운 개인정보 규제를 피해가며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사용자 입장에서도 신뢰할 만한 대기업과 잘 모르는 스타트업이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당연히 대기업 서비스를 쓸 것"이라며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규제와 싸워나가야 하는 환경에 처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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