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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재계]② 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기업환경 ‘악화일로’

  • 조지원 기자
  • 입력 : 2018.07.09 06:00

    “월급 줄 돈이 부족해 직원을 170명에서 130명으로 줄였습니다.”

    경남 거제 조선기자재업체 A사 대표는 조선 불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6년부터 줄곧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사는 직원을 대폭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조선업 불황에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이 겹치다보니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조선소 일감도 없다보니 버틸 수 없어서 아예 문을 닫는 업체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은행도 조선업이 몇 년 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출도 잘 안 해주려고 한다”고 했다.

    조선업 뿐 아니라 국내 주요 산업 대부분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급격한 고용 환경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은 중견‧중소기업일수록 각종 고용 규제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업들은 보호무역주의 여파로 수출이 어렵고 경기 악화로 내수도 부진한 상황에서 경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2018년 3월 20일 서울 구로구 온수동 대일특수강. 주52시간으로 근로시간 단축으로 자동화 설비를 들여놓은 대일특수강. /사진=조선DB
    2018년 3월 20일 서울 구로구 온수동 대일특수강. 주52시간으로 근로시간 단축으로 자동화 설비를 들여놓은 대일특수강. /사진=조선DB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발표한 7월 경기전망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내수 부진’과 ‘인건비 상승’을 가장 큰 경영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특히 제조업체들은 인건비 상승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보고 있었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도 근로기준법(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개정으로 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지역으로 갈수록 좋지 않다. 창원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창원지역 제조업 기업경기전망(BSI)은 67.8을 기록해 2017년 3분기 이후 5분기 연속 기준치(100)를 밑돌고 있다. BSI가 100 이상이면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많은 것이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창원지역 기업들은 고용환경 변화를 최대 경영 리스크(위험)로 꼽았다. 포항상공회의소가 조사한 포항 지역 제조업 BSI는 86,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발표한 부산 제조업 업황 BSI는 59로 나타났다.

    ◇ 혼자서 하던 일을 여럿이…인건비 늘었는데 생산성은 떨어져

    고용환경 변화로 인건비는 늘었는데, 생산성은 떨어지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청주산업단지 입주기업인 제조업체 B사는 상시 근무자가 300인이 넘는 곳으로 근로시간 단축 규제 영향 때문에 최근 인력 채용을 진행했다. 기존 3조 2교대 근무방식으로는 최장 근로시간인 주당 52시간을 넘기지 않지만, 특근이 갑자기 생기면 최장 근로시간을 넘길 수도 있어 예비인력을 추가 채용한 것이다.

    이 공장 직원들은 하루 10시간씩 근무한다. 아침 근무조는 오전 8시 30분 출근해 오후 8시 30분 퇴근하고, 저녁 근무조는 오후 8시 30분 출근해 오전 8시 30분 퇴근한다. 이들은 하루 12시간 동안 회사에 있지만, 휴식 2시간을 제외하고 10시간 동안 근무한 것으로 계산한다. 1개조가 4일 근무하고 2일 쉬는 방식이기 때문에 주당 50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문제는 일부 인원이 연차, 예비군 훈련 등으로 불가피하게 근무에서 빠지는 경우다. 기존에는 쉬는 조에서 지원을 받아 특근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7월 이후에 쉬는 근무자가 특근을 하게 되면 주당 52시간을 넘기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위반이 된다. 숙련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임시 아르바이트를 쓸 수도 없다. 상시 채용을 하고 있는 A사는 결국 평소보다 2배 많은 인력을 보강했다.

    현재 A사는 업무는 그대로인데 사람만 많아지다 보니 예전에 혼자 했던 일을 두 명이 같이 하고 있다. 특근이 없는 평소엔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효율이다. A사 입장에서는 추가 인건비를 부담하고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심지어 일부 근무자들은 돈이 되는 특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이 회사 공장 직원들은 특근이 사라지면서 월수입이 50만~70만원씩 줄었다.

    일감이 없어 작년 2월부터 사실상 폐업에 들어간 경남 사천의 SPP 조선소 모습. /김종호 기자
    일감이 없어 작년 2월부터 사실상 폐업에 들어간 경남 사천의 SPP 조선소 모습. /김종호 기자
    ◇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이 경영에 어려움 줄 것”

    일부 중소업체들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인력 충원은 생각도 못 하고 작업량을 줄여 버렸다. 당장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 받지 않는 종업원 300인 미만 기업 중에는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손을 놓아버린 곳도 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대기업 협력업체인 경우가 많아 정해진 납기 일정과 물량에 따라 근무를 해야 한다. 개별 기업 자체적으로 유연한 생산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단가 인하 압력 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설비 투자나 신규 인력 채용이 어렵기 때문에 결국 근로시간 단축으로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도 나온다.

    인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인천 내 기업들도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상승이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뿐 아니라 납기를 제때 맞출 수 없고,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런 분위기에 신규 채용마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지역 내 제조업체 18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62.8%는 신규 채용 계획이 없고, 17.8%는 불확실하다고 답했다. 계획이 있는 곳은 19.4%에 그쳤다.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지역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급격한 고용 환경 변화에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러한 요인들이 지역 기업의 신규채용 계획을 더욱 위축시킨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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