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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층 개발과 맞바꾼 국제설계공모 뒤집히나?…서울시 '공익 강조' 신뢰 잃어

  • 이진혁 기자
  • 입력 : 2018.05.29 11:35

    “공익을 살리겠다고 국제설계공모전까지 해놓고 실제로는 민간 뜻대로 하게 두면 애초 취지가 퇴색하는 거죠. 잠실은 서울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매우 커 공공가치를 곁들인 설계가 필요합니다. 재건축과 단지 재생을 통해 기존의 도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 자신의 첫 저서인 ‘건축과 풍화’ 출간 발표회를 개최한 조성룡 건축가는 잠실주공5단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조씨는 최근 서울시가 진행한 국제설계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된 설계를 한 건축가다.

    그가 출판기념회에서 작심하고 발언을 쏟아낸 이유가 무엇일까. 서울시의 애매한 행동으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사업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조성룡 건축가가 28일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자신의 첫 저서 ‘건축과 풍화 ‘ 출간 기념회를 열었다. 하지만 저서와 관련된 설명보다는 잠실주공5단지 논란 관련 설명에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이진혁 기자
    조성룡 건축가가 28일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자신의 첫 저서 ‘건축과 풍화 ‘ 출간 기념회를 열었다. 하지만 저서와 관련된 설명보다는 잠실주공5단지 논란 관련 설명에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이진혁 기자
    2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잠실주공5단지에선 최근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한강변 재건축 아파트 중에서는 처음으로 50층(일부 동)까지 지어지는 아파트다. 한강변 아파트는 서울시가 2014년 발표한 ‘도시계획 2030플랜’에 따라 35층 이상으로 지을 수 없다. 공공가치인 한강 조망권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은 지난해 9월 재건축 아파트 면적 일부에 공공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컨벤션 시설, 호텔 등의 공간을 구성하는 조건으로 일부 동을 50층으로 짓겠다는 약속을 내걸었고, 서울시는 이곳을 준주거지역으로 종을 상향하며 조합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서울시는 50층짜리 4개 동이 포함된 이 구역의 공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국제설계공모전을 열었고, 올해 4월 20일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후 조합원들 사이에서 당선작과 관련한 논란이 시작됐다.

    일부 조합원들은 설계가 밋밋하고, 민주광장 등의 시설이 포함된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발하며 1등 당선작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섰다. 노골적으로 “이 설계안대로 지으면 집값이 오를 수 없다”며 반발하는 조합원도 생겼다.

    특히 잠실역 사거리에 조성되는 민주광장에 대한 불만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주민이 아닌 사람도 드나들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조합원들은 6월 2일 열릴 정기총회에서 1위 수상작 대신 다른 수상작을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조선일보DB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조선일보DB
    건설업계는 이번 논란이 서울시가 자초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우선 지나치게 정치 이슈를 의식한 서울시의 태도가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시는 지난 3월말 당선작을 선정하고도 4월 20일에서야 발표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지역에서 집값 과열 현상이 일어나면 정치적으로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접수와 선정, 발표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하지 못했고, 소통이 부족했던 탓에 논란만 커졌다는 시각이다.

    여기에 조합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는 데도 서울시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이 실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에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르면 재건축조합은 총회 투표로 설계안을 정하게 돼 있다. 조합원들이 설계안에 만족하지 않을 경우 복수 후보 중에서 다른 설계안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도정법이 그대로 있는 상황이라 설계가 반영되지 않을 수 있는 데도 국제행사는 행사대로 강행해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업계에서 “서울시가 아마추어같이 행동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국제적인 행사는 신뢰를 잃게 됐고, 공익보다는 일부 재건축 조합원의 이익이 더 우선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설계안은 처음에 정해진대로 꼭 가야 하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수정되거나 발전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조 건축가는 1983년 아시아선수촌부터 2002년 선유도공원, 2004년 소마미술관, 2011년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2015년 서울역 고가 설계 등에 참여했다. 조씨는 이번에 내놓은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설계안의 핵심이 주거환경 회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초고층 빌딩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도시 전체에 거대한 그늘이 드리워졌고 이에 따라 주거환경도 급속하게 나빠졌다고 본다. 그의 설계안은 초고층 동의 배치와 방향을 조절해 일조량을 극대화하고, 바람 영향이 낮은 층수와 각도를 연구해 황사와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멀리 보이는 아차산과 남한산 산세처럼 다양한 높이, 방향을 중첩해 도시 안에서 조화롭고 다채로운 경관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서울시는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을 모범으로 삼아 공공과 민간이 어우러진 정책을 내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하고 얘기해보면 이렇게 대놓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그림 그려서(설계해서)는 돈 못 번다고요.”

    조 건축가는 “서울시가 애초 조합원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좋은 뜻으로 시작한 것을 민간에 던져버리고 모른 척하면 안 된다”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시작한 일인데 판이 엎어져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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