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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직장' 외국계 기업, 현실은 악몽이더라

  • 양지혜 기자

  • 이동휘 기자

  • 입력 : 2018.05.16 03:13 | 수정 : 2018.05.16 14:27

    한국 오라클 전면 파업 돌입

    미국계 IT(정보기술) 회사인 한국오라클 노동조합이 16일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 이들은 임금 인상과 고용불안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조합원 대상 쟁의 찬반 투표에서 96%의 찬성률로 파업안이 가결됐다. 노조는 16일 오전 한국오라클 본사가 있는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앞에서 파업 집회를 연다.

    김철수 노조위원장은 "1000여명에 이르는 직원의 70%가량이 입사 이후 임금이 전혀 오르지 않았다"면서 "2009년 입사한 부장 월급은 230만원인데 최근 입사한 연차 낮은 경력직은 400만원을 받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연봉 재계약을 위해 퇴사했다가 재입사하는 직원들도 있다는 것이다. 오라클은 게다가 작년부터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진행되고 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판매가 주업이었던 오라클은 작년부터 클라우드(가상 서버 대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 재편 과정에서 작년에만 200여명이 퇴사했으며, 노조는 100명 이상이 부당 권고사직과 일방적인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한국오라클 측은 이에 대해 "임금 협상에는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꿈의 직장' 이미지는 허상

    IT 업계에서는 한국오라클의 파업이 고연봉과 복지, 적정한 근무시간 등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이미지로 포장된 외국계 회사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IT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외국계 IT기업은 연구·개발(R&D) 등 핵심 부서는 모두 해외 본사에 두고, 한국에는 영업·마케팅 조직만 갖고 있다"면서 "실적이 부진하거나 주력 사업이 바뀌면 한국 지사도 조직 축소와 해고 압박에 내몰린다"고 말했다.

    한국오라클뿐만 아니라 과거에 비해 성장세가 주춤한 글로벌 IT 기업들의 한국 지사는 대부분 비슷한 처지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윈도·오피스 같은 소프트웨어 대신 클라우드 위주로 사업 조직을 개편하면서 작년부터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MS는 작년 7월 노조를 결성하며 정리해고를 막아보려 했지만, 결국 5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한국MS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분야에 직원을 투입하자마자 실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한국휴렛패커드도 작년 120여명이 퇴사하는 등 최근 3년간 직원이 400명이나 줄었다. 이 회사 김용환 노조위원장은 "대기발령 상태인 직원도 20여명"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회사 직원들의 불만
    그래픽=김성규
    한때 직원 2700명이 근무했던 한국 IBM은 현재 1500명까지 줄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에도 조기퇴직 신청을 받았다. IBM에서 20년을 근무하다 최근 퇴직했다는 A씨는 "2010년부터 실적 성장세가 주춤해지자 부서당 몇 명씩 내보내라는 할당량이 떨어졌다"며 "구매력 없는 거래처를 할당하거나 콜센터로 발령내는 꼼수까지 동원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시도했다면 여론의 몰매를 맞을 법한 일들이 외국계 회사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얼마 버는지도 모르는 직원들

    게다가 외국계 회사들은 경영 실적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 대부분 외국계 기업이 유한회사로 등록돼 있어 매출과 이익, 직원 연봉, 배당금 등을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계 기업들은 이를 악용해 국내 영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배당,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본사로 송금하고 한국에는 세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한국오라클은 지난해 국내 이익을 외국으로 빼돌리며 세금을 회피했다는 이유로 국세청에서 3000억원을 추징받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국세청은 한국오라클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로열티 명목으로 2조원을 본사에 보낸 것으로 파악했다.

    한국오라클 노조는 "한국 지사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다 미국 본사로 가져가는 구조"이라면서 "한국 지사 직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도 불투명한 경영 방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애플코리아·구글코리아·페이스북코리아 대표들이 "국내 매출을 모른다"고 답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해외 유명 명품 회사들도 한국 시장에서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300여명의 판매사원으로 구성된 샤넬코리아 노조 조합원들은 지난 3~4월 유니폼 대신 ‘임금 인상’ ‘인원 충원’ 등의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근무했다. 샤넬코리아 노조는 전 직원의 70%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기본급을 받는 데다 경력에 따른 호봉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사가 기본급 인상과 인력 재배치에 합의하면서 4월 말 파업은 종료됐지만, 한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명품 업체가 국내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논란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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