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자동차의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판매가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현대·기아차는 국내와 해외시장에서 모두 판매실적 개선에 성공했지만, 제네시스의 주력 모델인 G80과 EQ900은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감소했다.
국내 시장에서 제네시스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수입차로 눈길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고전하고 있다. 미국 시장 역시 글로벌 고급차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지난달 20% 넘게 판매량이 줄었다.
제네시스는 현대차가 초일류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하기 위해 지난 2015년 11월 별도로 출범시킨 브랜드다. 특히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브랜드의 기획과 출범, 신차 개발을 직접 챙길 정도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계속된 제네시스의 판매 부진에 현대차는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현대차는 현재 강남에 있는 제네시스 전용 전시관을 제주에도 추가로 열기로 하는 등 국내 소비자들의 끌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내년 EQ900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G80 신차가 출시되면 판매량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 만회를 위해 중국에서도 제네시스를 판매하기로 하고 최근 별도의 태스크포스(TF) 팀도 구성해 실무작업에 착수했다.
◇ 벤츠·BMW 공세에 주춤하는 G80…美 판매량도 전년比 26% 급감
지난 2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제네시스의 지난달 판매량은 5148대로 전년동월대비 21.4% 증가했다. 전체 판매량은 늘었지만,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출시가 되지 않았던 중형세단 G70의 판매가 포함돼 있는 수치다. 주력모델인 대형세단 G80의 판매량은 3132대로 전년동월대비 13.4% 줄었고, 플래그십 대형세단 EQ900은 913대로 8% 감소했다.
G70의 판매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G70은 지난해 9월말 출시 후 11월과 12월 각각 1591대, 1619대가 판매됐다. 그러나 올들어서는 단 한 번도 월간 판매량 1500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달 판매량도 전월대비 10.5% 감소한 1103대에 그쳤다.
국내 시장에서 최근 제네시스의 판매가 부진한데 대해 전문가들은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의 판매 공세로 브랜드 인지도에서 밀리는 제네시스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G80의 경우 주요 경쟁모델인 벤츠의 E클래스와 BMW 5시리즈에게 판매량이 뒤처지고 있다. 지난 3월 E클래스는 4494대, 5시리즈는 3919대가 판매돼 3618대가 팔리는데 그친 G80을 앞섰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G80이 기업체 임원 지급용 등 법인 수요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개인 소비시장에서 E클래스, 5시리즈와의 판매량 차이가 더욱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E클래스, 5시리즈의 경우 가격이 6000만원대 초반에서 시작하지만, 최근 벤츠와 BMW가 판촉을 강화하면서 가격 할인 폭도 커졌다”며 “이 때문에 4000만원대 후반부터 살 수 있는 G80과의 가격 차이가 줄면서 소비자들이 수입차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 시장 역시 판매실적이 꺾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지난달 현대차는 미국에서 5만5035대, 기아차는 5만585대를 판매해 전년동월대비 각각 10.8%, 5.2% 줄었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6% 줄어든 1028대가 판매되는데 그쳐 현대·기아차보다 감소 폭이 훨씬 컸다. 올들어 4월까지 누적 판매량도 5390대로 전년동월대비 17.5% 감소했다.
◇ 현대차 ‘제네시스 띄우기’ 안간힘…中 판매 추진·제주에도 전시관 오픈
최근 지속된 판매 부진에 대해 현대차는 제네시스의 브랜드 가치가 여전히 글로벌 고급차 메이커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 동안 ‘제네시스 챔피언십’ 골프대회를 개최하는 등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 왔지만, 제품 라인업이 부족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 역시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만약 단기적인 판매량 확대를 위해 가격 할인 공세에 나설 경우 고급차를 지향하려는 장기 전략마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에 대한 홍보와 마케팅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 판로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현대차는 제주 연삼로 인근에 제네시스 전용 전시관을 열기로 하고 최근 이 곳에 위치한 한 대형식당 부지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곳은 벤츠와 BMW, 벤틀리, 재규어랜드로버, 미니 등 여러 수입차 브랜드가 밀집해 있어 제주에서 ‘수입차 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제주 전시관이 완공될 경우 올 초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에서 문을 연 ‘제네시스 강남’에 이은 두 번째 제네시스 전용 전시관이 된다.
현대차는 이와 함께 최근 세계 최대 고급차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서도 제네시스를 판매하기로 하고 지난 3월 제네시스의 중국 판매 실무작업을 담당하는 ‘중국제네시스 실행 TF’를 발족했다. 이 조직은 제네시스 중국기획팀을 비롯해 현대차 베이징사무소, 인사, 서비스, 재경 등 각 관련 부서에서 인력을 차출해 구성됐다.
중국제네시스 실행 TF는 오는 8월말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 제네시스의 중국 내 생산과 판매 등을 위한 구체적인 사전작업을 마무리한 뒤 연말까지 현지 조직 구성과 생산시설 확충 등을 완료해 내년부터 판매를 시작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최근 제네시스의 판매실적이 부진하지만, 아직 국내와 북미 등으로 판로가 한정돼 있고 라인업도 3종에 불과해 단기간에 경쟁 고급차 브랜드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라며 “중국 판매를 시작하고 내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이 추가되면 실적이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