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증시서 나흘새 2조원 순매도...채권도 이달 순매도 전환
미국 국채 금리가 ‘마의 3%’를 넘어설 정도로 급등하면서 한국 금융시장이 다시 휘청거렸다. 25일 금융시장에서는 주식, 원화, 채권 값이 일제히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를 기록했다.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기대감도 나왔지만 미국 금리발 충격이 남북 해빙 무드라는 호재를 압도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 3%는 그동안 이어진 ‘채권 강세장’(채권 금리 하락, 채권 가격 상승)을 마무리 짓는 상징적인 숫자로 인식된다. 이에 따라 주식을 팔고 국채를 사는 안전자산 선호(위험자산 축소) 현상이 나타나는 이른바 ‘머니 무브(money move)’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신흥국 등으로 유입되던 자금이 미국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은 최근 나흘새 2조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날 순매도 금액만 8000억원에 육박했다. 그 결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0.6% 하락한 2448.8에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도 0.4% 떨어졌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3.8원 오른 1080.6원에 마감해 지난 3월 26일(1081.1원) 이후 한 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 등 원화 자산을 매도하면서 원화 값이 떨어진 것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0.3원 내린 1076.5원에 거래를 시작해 1075원까지 하락하기도 했지만 오전 중 상승 반전해 1080원대에 올라섰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밤사이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3%를 기록하고도 미 달러가 큰 폭의 강세를 보이지 않았지만, 미 증시가 하락하는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떨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채권 금리가 상승하면서 채권 가격은 떨어졌다. 만기 1년 국고채 금리는 소폭 하락했지만, 이를 제외한 장단기 금리는 일제히 상승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4bp(1bp=0.01%포인트) 오른 연 2.241%,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7bp 오른 연 2.753%에 거래를 마쳤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26일(연 2.244%),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12일(연 2.759%) 이후 한 달 만에 최고치였다.
특히 지난달까지 순유입세를 유지한 외국인 채권자금이 이달 순유출세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만기가 돌아온 채권에 대한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영향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본격적으로 빠져나가는 조짐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면서도 “다만 4월에는 순유출세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미 국채 금리 급등으로 글로벌 자금 흐름이 바뀌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국내 금융시장 지형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 전략을 수립할 때 미국의 금리 변화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국내 증시는 대외 개방도가 높아 금리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흐름이 ‘셀코리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긴 했지만 미국 경기와 기업 실적이 양호해 증시 상승 여력이 아직 충분한 만큼 급격한 위험자산 축소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신동준 KB증권 연구원은 “지난 4년 동안 연평균 4.1%이었던 미국 S&P500 기업들의 순이익 증가율이 올해 18%, 내년 10%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가의 밸류에이션 부담도 낮은 상태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금리 인상 공포가 서서히 잦아들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