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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칼럼] 관료들 마음에 상처낸 '김기식 지키기'

  • 정원석 경제부 정책팀장

  • 입력 : 2018.04.16 06:00

    [팀장칼럼] 관료들 마음에 상처낸 '김기식 지키기'
    최근 세종시 관가(官街)에서는 국장급에서 1급(차관보급)으로 승진하는 과정을 ‘지옥문’이라고 부르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1급 승진 인사검증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증 탈락 사유도 뚜렷하지 않다. 1급 승진이 유력했던 모 국장의 낙마 사유는 소문만 무성하다.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 아니냐는 추측에 공무원들은 어리둥절했다. 음주운전 전력 등이 문제가 된 적은 있지만, 직업 공무원인 1급 인사 검증에 ‘정무적 잣대’를 들이댄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1급 승진 검증에서 탈락한 국장들은 ‘비명횡사(非命橫死)’했다는 위로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비명횡사한 고위 공무원들은 묘한 공통점이 있다. 전 정권에서 잘나가는 자리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주요 정책을 추진하는 핵심 위치에 있었다던가, 청와대 등에 파견 근무한 경험이 있는 관료들이 ‘먼지털기식 검증’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흠집이 발견될 때까지 현미경 검증을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최근의 ‘김기식 논란’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의 심경은 착잡하다.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 돈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오고, 피감기관 임직원 상대로 1인당 수백만원의 강연 장사를 한 의혹이 제기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청와대가 감싸는 듯한 뉘앙스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법성이 드러나거나 기준에 못미치는 도덕성 문제가 확인되면 김 원장을 사임시키겠다”고 했지만 공무원 사회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부처 고위 공무원이 비슷한 논란을 일으켰다면 당장 직위해제하고 구속시켰지 않았겠느냐.”

    세종시 관가에서는 청와대의 ‘김기식 지키기’를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1급 승진길에서 비명횡사한 국장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업 공무원에게는 지옥문, 정치인에게는 천국문”이라는 넋두리가 술자리 곳곳에서 나온다. 공무원들에게는 ‘과거의 직위, 위치’ 등으로 부적격 판정을 내리면서, 김기식 원장에 대한 의혹에는 ‘과거의 관행’이라고 면죄부를 주는 것이 공무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있다.

    고위 공직자를 일컫는 말인 ‘관료(官僚·bureaucrat)’는 ‘당국자(authority)’라는 단어와 함께 쓰인다. 직업 공무원들은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지만, 주어진 일만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현대사회의 관료에 대해 “분노도 편견도 없이 일을 처리하는 존재이며, (관료들에게)명령을 수행하는 규율과 극기가 없으면 관료제는 무너진다”고 규정했다. 관료들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공무를 처리하면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게 막스 베버의 가르침이다. 공무에 이념지향성이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과거 정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가 검증 목록에 오르는 것은 부당하다. 과거의 직무 경험이 현재 집권층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배척하는 행위다. 공무 수행 과정에서 사익추구를 했는지,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전문성이 있는지, 위법 행위를 했는지 정도만 검증 대상이 돼야 한다. 특정 공무를 오랫동안 수행한 관료들은 전문지식이 축적된 국가의 자산이라는 점도 감안돼야 한다. 전문성이 존중되지 않고 집권층의 이념적 잣대로 공직자들을 재단하는 것은 관료를 관노(官奴)로 전락시키는 지름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공무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다른 눈치 보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실현되려면 ‘정무적인 비명횡사’는 없어야 한다. 문 대통령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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