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16.4%)에 따른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인들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조성한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이 기대했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종업원 30인 이하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4대 보험 가입 근로자 중 월 보수 190만원 미만 근로자에게 월 13만원의 임금을 지원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축소를 막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후 최저임금 인상에 큰 영향을 받는 도소매·음식 숙박업 취업자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구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 셈이다. 지난달부터는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 부담을 견디지 못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이 경제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고용보험 등 4대보험 가입’이라는 자격 요건 때문에 올해초까지 가입률이 저조했지만 지난 12일 현재 가입자가 160만7000명을 돌파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밝힌 올해 지원가능 인원(236만4000명)에 대비한 가입률은 70%에 육박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가입률 상승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축소가 오히려 가속화하는 것은 ‘재정 투입식 일자리 대책’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일자리 안정자금은 종업원의 4대 보험료 지급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사업 규모를 갖춘 자영업자들이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정작 최저임금 인상에 취약한 영세 자영업자들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은 특성이 있다"며 “최저임금을 과도하게 올려놓고 재정을 투입해서 부작용을 없애겠다는 발상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 자영업 폐업으로 전이되는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통계청이 지난 11일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 취업자는 지난 2월 이후 각각 6만3000명과 8만4000명 줄었다. 두달 연속 감소세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자영업자는 2016년 8월 이후 지난해 8월(-1만1000명) 단 한차례를 제외하고 증가세를 이어왔지만 2월부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에 대해 고용시장 전문가들은 ‘자영업 폐업’이라는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이 불고 있다고 진단한다. 또 자영업자 감소가 도소매·음식숙박업 등 서비스 부문의 취업자 감소에 후행(後行)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소매·음식숙박업 등 개인서비스 취업자는 올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률(16.4%)이 시행되기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넉달 연속 감소했다. 감소폭은 지난해 12월 6만5000명에서 지난달 11만6000명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한 국책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고용원이 1, 2명 정도였던 영세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전후로 고용원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반된 재료비 등 각종 비용 상승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해석도 같은 맥락이다. 통계청은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크게 줄어들어 자영업자가 전체적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고용원 없이 자영업자 본인과 가족이 출근해 영업하는 영세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폐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 ‘사각지대 허점’ 일자리 안정자금…"재정 투입식으론 문제해결 어려워"
전문가들은 서비스 부문 고용조정이 영세 자영업자 폐업으로 전이된 것은 일자리 안정자금이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을 흡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소상공인, 중소기업 중에서 4대 보험에 가입된 근로자가 1명 이상인 사업장을 지원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고용원을 채용하지 못할 정도로 영세한 자영업자는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 일자리 안정자금이 사업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사업장에 집중돼 자영업자 내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되는 배경이다.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한 사업체의 평균 고용인원은 3.3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경준 교수는 “애초부터 최저임금 인상률을 적절하게 책정하고, EITC(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해서 저소득층에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제도를 설계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