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블록체인 포럼 만든 두 청년 “주식회사 모델 사라질 수도”

조선비즈
  • 박원익 기자
    입력 2018.04.13 06:10

    지난 3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분산경제포럼(Deconomy)’ 현장.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로저 버(Roger Ver) 비트코인닷컴 대표는 옆 사람에게 비트코인 캐시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었다. 비트코인 캐시는 비트코인으로부터 하드포크(hardfork, 분할)된 암호화폐인데, 거래 처리 속도가 빨라 일상생활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요지였다.

    다가가서 인사하자 그는 명함 대신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로고(bitcoin.com)가 박힌 스티커를 건넸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무료로 암호화폐 지갑을 내려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는 ‘비트코인 예수’란 별명에 걸맞은 행동이었다.

    연사 80명, 업계 관계자 2400여 명이 참석한 분산경제포럼은 블록체인 업계의 축제이자 배움터였다. ‘암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 이더리움을 창시한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 등 거물의 연설을 눈앞에서 듣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전문가들과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산경제포럼 공동주최자 백종찬(왼쪽), 한승환(오른쪽)씨. /박원익 기자
    “데이비드 차움이 등장하는 포럼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죠.”

    분산경제포럼을 조직한 한승환 업그라운드 대표는 포럼 종료 후 “행복한 경험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 최대 블록체인 포럼’으로 평가받는 이 행사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9일 서초구 한화 드림플러스에 위치한 업그라운드 사무실에서 포럼 공동주최자인 한승환(29), 백종찬(26)씨를 만났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한승환(이하 한): 한국에서 블록체인·암호화폐 이슈가 처음 다뤄지기 시작했던 때부터 오랜 기간 관련 오프라인 모임과 온라인 커뮤니티 모임에 참여해왔다. 그러다 3년 전 백종찬씨를 만나 같이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피넥터라는 블록체인 리서치·컨설팅 회사를 시작하게 됐다.

    백종찬씨와 저는 굉장히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 종찬씨는 중국계 블록체인 벤처 투자회사인 펜부시(fenbushi) 캐피털에서 일했고, 금융권 최대 블록체인 컨소시엄인 R3에도 있었다. 전 더 퍼블릭 블록체인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팀이나 프로젝트 단위에 투자하는 일을 3~4년 전부터 계속 해왔고, 직접 엔젤투자를 하거나 블록체인 프로젝트 관련 자문도 많이 했다. 서로의 경험이 굉장히 달랐기 때문에 경험을 교환할 때 더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넓게 볼 수 있었다.”

    -포럼을 기획한 이유는.

    한: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대규모 밋업(Meet-up·모임)도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여러 형태의 밋업에 참여해왔지만, 산업 단위에서 거대한 아젠다(의제)를 던질 수 있는 밋업은 없더라.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의미 없는 내용을 늘어놓거나 투자 유치를 위한 세일즈만 반복하는 모임도 많아졌다.

    블록체인이 산업의 형태를 갖추려면 누군가 아젠다를 던져야 하며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 이를 소화하는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G20 정상회담, 세계경제포럼(WEF) 같은 행사가 있다면 블록체인 산업에 기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백종찬씨와 함께 아이디어를 기획해 실행했다.”

    분산경제포럼 첫날 기조연설을 맡은 데이비드 차움. /분산경제포럼 제공
    -두 사람이 뭉치게 된 계기가 있나.

    백종찬(이하 백): 납득할 만한 수준의 사고력, 블록체인 산업과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데 노이즈 속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몇 없었다. 블록체인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고, 지금처럼 암호화폐 사기꾼조차 없었을 때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마주치면서 서로 눈에 띄었던 것 같다. 관점과 철학이 다르더라도 내 영역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대화조차 안 통하는 사람이 많았던 때라 내가 먼저 한승환씨를 찾아갔다.”

    한: 찾아온다고 했을 때 이미 종찬씨 존재를 알고 있었다. 연락이 왔을 때 맘 속으로는 이미 예스를 외쳤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블록체인·암호화폐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한: 원래 IT, 네트워크, 컴퓨팅, 화폐금융, 경제, 플랫폼 등에 관심이 많았다. 2012년 말 비트코인을 알게 됐는데 내 관심사가 다 모여 있는 분야였다. 풀타임으로 이 분야에 시간을 투자한 건 3년 정도 전이다. 관련 자료가 거의 없어서 혼자 스터디하거나 커뮤니티 활동하며 배울 수밖에 없었는데, 많은 것들을 배웠고 굉장히 즐거웠다. 블록체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면서 학습하는 과정이 정말 재밌더라.”

    백: 2013년 말쯤 누가 비트코인을 사라고 얘기하더라. 당시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워낙 학교 공부를 싫어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걸 즐기는 성격이다. 공부할 자료 뒤져서 찾고 개인 블로그 운영하며 글 쓰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좀 더 많이 알게 됐다.

    처음엔 왜 이 기술이 좋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별로 와닿지 않았다. 사용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만 집중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은 백지상태다. ‘이 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다’, ‘내가 이 분야에서 특별한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산경제포럼 공동주최자 한승환씨. /박원익 기자
    -포럼은 성공적이었나.

    백: 첫날 1200명 왔고, 둘째 날도 비슷하게 왔다. 준비한 자리가 부족해 이원 생중계도 했었다. 비탈릭 부테릭 같은 사람이 지금이야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예전엔 그냥 업계 아는 사람, 동네 너드(nerd, 괴짜)였다. 제가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모르고 해왔던 것처럼 그들도 그랬다.”

    -연사 섭외는 어떻게 했나.

    백: 비탈릭은 같이 일을 했었다. 펜부시에 있을 때 비탈릭이 펜부시 파트너였다. 로저 버는 한국에 자주 왔었기 때문에 밋업에서 만난 적도 많았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더라도 같은 산업 내에서 일해왔고 서로 이름 인지하고 있어서 얼마든지 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다.”

    한: 한국에 대한 관심도 분명히 있었다. 분산경제포럼 첫 번째 행사를 한국에서 개최하는 건 모두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암호화폐 시장을 봐도 그렇고 한국인으로서 개인적인 의미도 컸다. 시기가 굉장히 잘 맞아떨어진 것도 있다. 사실 이런 부분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한: 두 명이 거의 모든 일을 다 해야 했다. 산업과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아젠다를 정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는 문제다. 준비 기간이 길었으면 다른 사람에게 내용을 인계해 체계화하고 프로세스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겠지만 주어진 시간이 아주 짧았다. 짧은 기간에 집약적으로 엄청난 내용을 학습할 수 있었던 건 좋았다.”

    백: 이쪽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향이 다양하고 자유롭다. 초대해야 하는데 여권 정보를 안 넘기려고 하거나 연락을 했는데 3주 넘게 답이 안 온 적도 있다. 누구는 위챗 메신저만 사용하고 누구는 이메일 혹은 전화만 사용하는 등 연락 방식이 모두 달라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분산경제포럼 공동주최자 백종찬씨. /박원익 기자
    -비용 문제는 없었나.

    한: 연사료는 없었다.”

    백: 진정성이 중요했다. 연사들이 이해할만한 주제와 이야기를 다루는 포럼이었기 때문에 설득이 먹혔고 연사료 없이 기꺼이 와줬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한: 계속 재밌는 일을 하고 싶다. 여러 사람과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지적인 논증과 생각의 교류를 통해 공통된 인식 너머의 영역까지 빠르게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비즈니스 모델, 혹은 수익 모델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 쪽에 관심이 있었으면 애초에 이런 일 안 했을 거다. 물론 수익 모델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그걸 목표로 하진 않을 생각이다. 우선 재밌는 걸 계속하고 싶고 그 과정에서 블록체인 산업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백: 사고방식 자체가 목적을 세워 두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성취감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결과 내는 걸 더 좋아한다. 여러 회사에서 일을 해봤지만 정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과 일해본 경험은 별로 없었다. 지금은 회사 자체, 사람들과 대화하며 일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재밌다.”

    분산경제포럼에 연사로 나선 블록체인 업계 주요 인물들. /분산경제포럼 제공
    -분산경제의 미래는.

    한: 분산된 경제, 컴포넌트(구성 요소)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기존의 법인 기반 기업관이 사라질 수 있다. 제가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활동하며 가능성을 크게 목격했다.

    고전적인 주식회사 모델은 점차 없어질 것이다. 주식회사 모델만 경제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법인이라는 것은 도구일 뿐 본질은 이 법인을 통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형태의 제약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계속 갈 것으로 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업관도 완전히 바뀔 것이다. 개인이나 그룹, 느슨하게 연결된 개인의 합이 법인을 대체할 수 있다. 모든 정의가 바뀌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백: 예전엔 퍼블릭 블록체인이나 오픈 프로토콜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떤 개념이 구체적으로 정립되거나 널리 사용되기 전엔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공유 자동차를 보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돈을 내고 남의 자동차를 타는 행위가 어색했으나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내가 ‘이건 비논리적이야’라고 생각하는 동안 누군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한승환·백종찬 대표는

    한승환 대표는 오미세고(Omisego), 큐텀(Qtum) 등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자문을 제공하고 엔젤 투자를 진행해왔다. 올해 3월부터는 블록체인 관련 기업 지원·양성을 위한 ‘업그라운드(Upground)’의 대표를 맡아 이끌고 있다. 업그라운드는 블록체인 전문 기업 ‘액트투 테크놀로지스’와 한화그룹 금융 계열사가 함께 만든 블록체인 허브다.

    백종찬 대표는 중국계 블록체인 벤처 투자회사인 펜부시(fenbushi) 캐피털과 금융권 최대 블록체인 컨소시엄인 R3에서 일했다. 한승환 대표와 함께 설립한 피넥터를 이끌면서 블록체인 리서치·컨설팅 업무를 계속 진행하고 업그라운드, 액트투 테크놀로지스 등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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