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김상조-김기식...참여연대 출신 재벌개혁 라인 장악
‘재벌 저격수’ 김기식(53) 전 민주당 의원(더미래연구소장)이 30일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내정됐다. 김 내정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금융위원회 임명 제청을 재가한 뒤 다음달 2일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김 내정자는 1999년 통합 금감원이 출범한 이후 개혁성향의 시민운동가는 물론 정치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금감원장 자리에 앉게 된다. 그러나 친문 코드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 출신인 그는 시민운동가 중 금융전문가로 평가된다. 19대 국회의원 재직 시에도 금융당국을 담당하는 정무위에서 주로 활동했다. 당시 정무위 민주당 간사를 맡기도 했다.
‘금융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장에 그가 내정되면서 같은 참여연대 출신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삼각편대’를 이뤄 재벌개혁에 고삐를 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내정자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김 내정자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정과 개혁적 경제정책 개발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제19대 국회에서는 금융위와 금감원을 소관하는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금융 정책, 제도, 감독 등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보유했다”고 했다.
반면 개혁 강경파인 김 내정자와 공무원 조직인 금융위원간 불협 화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 시절 너무 강한 규제와 회초리를 휘둘렀던 부분이 있어 금융회사와 금융당국은 물론 같은 당 소속 의원들과도 마찰이 다소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 내정자는 채용비리로 추락한 금감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금감원은 내부 채용비리로 홍역을 치룬데 이어 전임 최흥식 원장이 채용비리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하면서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 개혁성향 시민운동가 출신 최초 금감원장...삼성 등 재벌 저격수
김 내정자는 시민단체 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1993년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소개로 박원순(현 서울시장), 조희연(서울시 교육감, 성공회대 교수) 등과 함께 참여연대를 창립했다.
이후 1999~2007년 참여연대 정책실장에 이어 2002~2007년 사무처장, 2007~2011년 정책위원장으로 일했다. 참여연대에서는 삼성 등 재벌 개혁과 2000년 총선 낙선운동 등 시민사회활동에 전력했다. 2011년에는 조국 서울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 등과 함께 시민단체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 대표를 맡기도 했다.
서울대 인류학과 재학 중이던 1986년 11월에는 구국학생연맹(구학련) 사건에 연루돼 첫 번째 구속됐고 이듬해 6월 항쟁 때에 두 번째 구속됐다. 구학련은 서울대 내 민족해방(NL) 계열 학생운동권 조직이다.
김 내정자는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서 제19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4년간 금융당국을 담당하는 정무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하며 2014년 6월부터 2016년 5월까지 민주당 간사를 맡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금감원장의 역할은 큰 흐름에서 금융시장의 공정성, 투명성,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금융감독의 큰 원칙을 얼마나 감독행정에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데 김 전 의원의 지금까지 행보는 감독의 이상을 구현하려는 것과 대단히 비슷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감독원장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주관과 색깔이 너무 강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시민운동가면서 학생운동권 출신 특유의 도덕적 우월성이 강한 인물이기에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나 조직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했다.
◇ 기업 구조조정 칼잡이 되나...은산분리 강경한 입장
금융권 안팎에서는 김 내정자 취임 후 기업 구조조정 드라이브가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김 내정자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기업이 위기에 직면하면 정부를 탓하며 정책적 자금을 지원하라는 소리가 쉽게 나온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내야 한다”며 “시장과 법률에 의한 구조조정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고 했다. 또 “기업회생절차는 반드시 청산을 전제한 것이 아니다. 이해당자자들의 자율적 조정이 실패하면 단호하게 법적 절차에 들어간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고통분담과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 원활해진다”고도 했다.
다른 기고문에서는 “최근 GM대우 처리 문제 및 금호타이어, 대우건설 등도 현안”이라며 “문제는 이 현안들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이 책임지고 일을 처리하지 않아 부실을 오히려 키워왔고, 그 결과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통과 희생이 수반되지 않는 구조조정은 없다. 누군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는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내정자는 정책금융기관이 구조조정을 책임지는 현재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수차례 주장했다. 선진국에서 정책금융기관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부실기업 지원과 구조조정 업무를 이렇게 장기간 지속적으로 담당하는 경우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내정자는 국회 의원 시절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은산분리 원칙을 강하게 고수했다. 이를 감안하면 인터넷전문은행이 요구하고 있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금융권 “규제강화 우려 vs 금융이해도 높아”...금융위와 불협화음 우려도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지만 ‘저격수’라고 평가받는 만큼 대체적으로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금융도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금융 시대를 맞아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과도기인데, 신임 금감원장 취임 후 금융권 전반의 규제 및 압박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도 “금융소비자 중심의 정책과 규제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긍정적인 평가도 상존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김 내정자는 금융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추진력도 뛰어나며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혜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며 “참여연대 시절에는 예리한 지적으로 금융업 발전에 기여한 바도 크다”고 했다.
금감원 상임기관인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김 내정자의 경우 다소 고집이 있는 편이어서 금융정책 추진에 발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금융위와 엇박자가 날 우려가 있다”며 “국회의원 시절에도 여야 합의된 사항을 유일하게 반대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 금감원 신뢰회복 급선무...금융사 보유한 재벌 지배구조 손볼듯
금감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자리다. 금감원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금융위 임명 제청 재가 후 4월 2일 취임식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내정자는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하나금융지주 사장 재직 시절의 채용비리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하면서 추락한 금감원의 신뢰성을 회복할 임무를 맡게 됐다.
김 내정자는 금융 관리·감독 체계 개편, 금감원 검사·감독 체계 개편, 금융회사 지배 구조 개선 등 금융 분야 주요 국정 과제 추진에도 나서야 한다. 또 금융위가 금융감독개선 4대 과제로 제시한 △금융부문 쇄신 △생산적금융 △포용적금융 △금융산업 경쟁촉진을 실현하기 위한 세부 실행안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현안인 금융권 채용비리 검사, 가계부채 문제 해소 및 금융소비자 보호 방안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다소 지지부진한 상황인 금융그룹통합감독 계획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는 삼성과 현대차, 롯데 등 금융사를 소유하고 있는 재벌 그룹을 묶어서 금융당국이 관리·감독하는 것이다.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을 놓고 벌어진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의 갈등, 은행권 채용비리 등도 김 내정자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교수는 “김 내정자는 19대 국회 정무위에서 활동하면서 금융산업의 발전보다는 서민약자 보호 등 지원 기능과 재벌 개혁을 강하게 요구했다”며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감독방향도 염두에 두고 수위를 조절하면서 적절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