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 지하 1층 식품관의 오리온 '초코파이하우스' 앞에 20여 명의 손님이 줄을 섰다. '디저트 초코파이'를 맛보기 위해서다. 지난달 문을 연 이 매장에는 하루 평균 1500명의 손님이 몰린다. 소셜미디어(SNS)에 '강남점 가면 초코파이하우스를 꼭 들러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는 등 입소문을 탔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식품관 옆 푸드코트 300석도 여전히 만원이었다.
반면 같은 시각 4~5층 여성 의류 매장은 한산했다. 매장마다 옷을 살피는 고객은 한두 명 정도였다. 한 여성복 점포는 손님 한 명이 들어서자 직원 3명이 일시에 손님에게 다가갔다. 주부 정혜인(45)씨는 "모임을 하거나 장을 보기 위해 백화점 식품 매장엔 일주일에 2~3번 정도 방문하지만, 의류 매장에는 1년에 서너 번 정도 간다"며 "요즘엔 옷 10벌 중 7벌 정도는 온라인에서 구매한다"고 했다.
◇백화점에서 나가는 패션
패션·잡화 중심인 백화점 매출의 중심축이 식품·생활용품 분야로도 옮겨가고 있다. 백화점에서 옷을 사는 소비자 비중은 줄고 식품관에서 장을 보거나 외식을 즐기는 소비자는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3년 롯데백화점의 패션·잡화 매출 비중은 77.6%였지만, 지난해엔 74.6%로 3%포인트 줄었다. 반면 식품 매출 비중은 2013년 11.8%에서 지난해 13.3%로 늘었다. 현대백화점도 같은 기간 패션·잡화는 74.7%에서 72%로 감소했고, 식품은 16.8%에서 17.9%로 증가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요즘에는 백화점에서 옷을 구매해 소유하는 것보다 프리미엄 식품을 맛보고 그 경험을 SNS로 공유하는 것에 더 관심이 높은 소비자가 굉장히 많다"고 했다.
백화점 입점에 사활을 걸던 패션·잡화 업체들은 점점 백화점 밖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빈폴키즈' 오프라인 매장을 접고 온라인에서만 팔고 있다. LF 역시 지난 2016년 '질바이질스튜어트'와 '일꼬르소'를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전환했다. 아비스타는 지난해 여성복 '탱커스'와 'BNX'의 오프라인 매장을 없애고 온라인과 홈쇼핑에 집중하기로 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에서 옷을 입어본 뒤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백화점 매장을 포기하면 브랜드 고급화에는 어려움을 겪겠지만, 대신 매장 운영비와 판매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식품·음식점
반면 식품업체는 앞다퉈 백화점에 진출하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디저트를 좋아하는 소비자가 많이 찾는 신세계 강남점에서 인기를 끌어 디저트 초코파이의 브랜드를 고급화하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롯데푸드는 지난해 롯데백화점 평촌점에 우유 디저트 매장 '파스퇴르 밀크바(Milk Bar)'를 열었다. 빙그레는 현대시티아울렛 서울 동대문점에 '옐로우카페'를, 광동제약도 현대시티아울렛 가든파이브점에 '청춘카페 바이 비타500' 매장을 열었다.
백화점들은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달 롯데백화점은 본점에 업계 최초로 일본 오마카세(정해진 메뉴가 아니라 주방장이 그날의 메뉴를 결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밥집 '스시치하루'를 열었다. 롯데백화점 측은 "한 달 사이 SNS에 올라온 스시치하루 후기만 1000건이 넘는다"며 "오마카세 서비스라는 독특한 경험을 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이 결국 패션·리빙 등 다른 부분에서도 지갑을 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지난해 인천 차이나타운 중식당 '만다복'과 일본 가나가와현 돈가스집 '다이치'를 유치했다. 현대백화점은 맛집 유치 전담 부서인 '식품개발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경우 강남 한정식 맛집 '봉우리', 서울 북창동 메밀국숫집 '송옥' 등을 입점시켰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1월 강남점 파미에스테이션 규모를 확장하며 서울 홍대 일식 덮밥집인 '홍대만뽀', 연남동 태국 식당 '소이연남', 이태원 터키 요릿집 '케르반' 등 맛집 11곳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