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주문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벤처기업 우아한형제들이 자율주행 배달로봇의 시제품 개발을 완료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이르면 5월부터 지방의 한 도시에서 실내 시험 주행을 시작하고 점차 실외로 주행 범위를 확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조만간 짜장면, 치킨을 싣고 인도(人道)를 누비는 국내 최초의 '로봇 철가방'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아한형제들이 만든 이 배달로봇의 이름은 딜리(Dilly)다. 맛있는(delicious) 음식을 배달(delivery)해 준다는 뜻을 담았다. 로봇 전문가인 고려대 정우진 교수팀과 협업해 제작한 이 로봇은 가로·세로·높이가 70~80㎝ 안팎의 둥글둥글한 모양이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네 개의 바퀴로 자율주행을 시작한다.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세 개의 독립된 공간도 갖추고 있다. 위치 확인, 장애물 감지를 위한 센서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탑재돼 있다. 장애물을 만나면 자동으로 회피하는 기능도 있다. 성인 남성이 걷는 속도(약 4㎞)로 주행이 가능하다.
◇"2~3년 내 실전 테스트"
이 로봇은 총 3단계의 테스트를 거쳐 실전 배치된다. 이르면 5월 푸드코트 매장에서 첫 번째 시범 운행을 시작한다. 실외 운행에 앞서 안전이 확보된 실내에서 자율주행 성능을 테스트하려는 것이다.
딜리는 푸드코트 곳곳을 누비며 음식을 주문한 사람들에게 완성된 음식을 가져다주고 다 먹은 식판을 회수하는 역할을 맡는다. 로봇 시제품도 이 같은 실내 테스트에 최적화된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올 하반기에는 대학 캠퍼스, 아파트 단지와 같은 제한된 실외 공간으로 실험 영역을 확장한다. 아직 계단은 오를 수 없기 때문에 자전거·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와 자동문 등을 이용하고, 신축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시스템과도 연동해 층간 이동까지 시도해 볼 계획이다.
우아한형제들 류진 이사는 "2~3년 안에는 음식점에서 고객의 집까지 로봇이 실제 시험 배달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다만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선하고 국내외 연구기관뿐 아니라 다양한 로봇 제조사들과도 협업한다는 계획이다.
푸드테크(food tech) 기업을 표방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만든 것은 1차적으로는 배달원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다. 배달원들이 외진 곳이나 언덕배기는 배달을 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기피 지역을 중심으로 로봇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 로봇이 배달음식뿐 아니라 신선식품, 신문, 유제품 등 배달이 필요한 모든 제품·서비스를 책임지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로봇이 잡무 줄여줘… 업무시간 절약
해외에서도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배달로봇 개발에 나서고 있다. 2014년 창업한 영국 런던의 스타트업 스타십테크놀로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현재까지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10만㎞가 넘는 시험 주행을 마쳤다. 도미노피자,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 스위스 우정국과도 협업했다. 이 배달로봇은 피자, 생필품, 우편물 등을 싣고 정해진 목적지까지 스스로 이동한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로봇의 출발, 도착, 이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로봇의 배달함에 담긴 물품은 수신자가 스마트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앱에서 열림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상 절대 열리지 않는다. 만약 길에서 누군가 배달품을 뺏으려고 하면 곧바로 현 상황을 녹화해 동영상 서비스인 유튜브에 올리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이탈리아 스타트업이 만든 자율배송 로봇 야페(Yape)는 얼굴 인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물건을 건네준다.
최근 대전 을지대병원은 배달로봇을 실제로 병원에 배치했다. 국내 중견기업 유진로봇이 제작한 자율주행로봇 고카트다. 이 로봇은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혈액이나 소변 샘플을 적재적소에 배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병원 내부의 전산망과 연동돼 있어 엘리베이터를 무선으로 호출하기 때문에 층간 이동도 자유롭다.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이광형 교수는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되는 상황에서 로봇을 잘 활용하면 사람은 보다 생산적인 업무에 매진할 수 있고 노동조건도 더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