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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칼럼] 그 많다는 로봇은 다 어디 있나

  • 조선비즈 논설주간
  • 입력 : 2018.03.13 04:00

    [김기천 칼럼] 그 많다는 로봇은 다 어디 있나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이 도처에서 확인되는데 단 한 곳 생산성 통계만은 예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우가 1987년에 한 말이다. 많은 기업들이 업무·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컴퓨터를 도입하고 있지만 정작 생산성이 개선되고 있다는 통계적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솔로우의 ‘생산성 역설(productivity paradox)’이라고 한다.

    요즘 세계 경제의 주요 화두인 인공지능, 로봇, 핀테크 등 기술 혁신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신기술이 쏟아지며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대다수 선진국에서 생산성 증가율이 갈수록 둔화되고 있는 게 큰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기술 혁신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신기술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좀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반면 과거 전기와 내연기관 등의 발명과는 달리 정보통신기술 발전은 혁신의 강도와 파장이 약해 경제 전반의 생산성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 경제에도 설명하기 힘든 역설이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현재 한국의 로봇밀도는 631대로 세계 1위다. 로봇밀도는 노동자 1만명당 산업용 로봇 설치대수를 가리킨다. 한국은 2010년부터 7년 연속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조업 자동화 수준에서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을 까마득하게 앞서고 있다. 로봇밀도는 한국에 이어 싱가포르(488대), 독일(309대), 일본(303대), 스웨덴(223대), 덴마크(211대), 미국(189대) 등의 순이다. 한국의 로봇밀도가 세계 최고 제조업 강국인 독일, 일본의 두 배를 넘는다. 선뜻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격차가 크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은 평범한 수준이다. 한국생산성본부의 국제 비교 연구를 보면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1~13위에 머무르고 있다. 자료가 없는 미국, 일본, 스위스 등 일부 선진국들이 제외된 결과여서 실제 순위는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통계청의 제조업 노동생산성 지수는 2012년부터 4년 내리 하락했다. 2010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16년 노동생산성 지수는 92.3이다. 2015년(91.3)보다 약간 개선됐지만 여전히 2010년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같은 기간 IFR이 집계한 국내 산업용 로봇 설치대수는 10만대에서 25만여대로 2배 이상 늘어났다.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자동화 투자를 하고 있는데 생산성 통계에서는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과 한국생산성본부의 통계가 조금 다르지만 2010년대 들어 생산성 증가율이 마이너스까지 기록한 것은 깜짝 놀랄 일이다. 불량 로봇을 도입했다가 돈만 날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선진국들의 생산성 증가율 둔화는 금융위기 이후 기업 투자가 크게 감소한 것을 비롯해 몇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자동화 투자를 통해 산업용 로봇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도 생산성이 둔화되고, 심지어 떨어지기까지 했다. 선진국 상황과는 큰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연구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의 로봇밀도가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자랑스레 인용한 자료만 여기저기 눈이 띈다. 팩트의 정확성을 확인하고, 자동화 투자의 효과를 검증하는 시도는 거의 없는 듯하다.

    국내에는 로봇밀도에 대한 통계 자체가 없다. 국내 기업 현장에 산업용 로봇이 몇 대 설치돼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IFR 자료는 한국로봇산업협회를 비롯해 일본, 중국, 북미, 유럽 등의 관련 기관·단체의 로봇 생산·판매·수출 자료를 취합해서 추정한 것이다. 나름 근거가 있지만 통계의 정확도는 장담할 수 없다.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기본은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생산성이 전부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거의 전부”라고 했다. 생산성이 정체되면 장기적으로 국민의 소득과 생활수준을 개선할 방법도 없다. 무조건 임금을 올리면 물가도 따라 올라 결국 실질 소득은 달라지지 않는다. 소득주도 성장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로봇밀도와 생산성 추이는 중요한 이슈다. 한국에서 자동화 투자가 늘어나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별 기업과 국가 경제 차원에서 자동화 투자 효과가 이렇게 상반되게 나타나는 이유가 뭔지 따져보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통계 오류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산업과 노동 시장 구조, 원·하청 생산방식, 인력 운용 시스템 등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진단을 제대로 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혁신 성장을 비롯한 정부 정책의 품질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그 많다는 로봇이 다 어디 있다는 것인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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