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社, 동판본 만들어 인도 총리에 전달

입력 2018.02.28 03:00

[한국·인도 비즈니스 서밋]

'인도가 6·25때 포로감시단 파견' 本紙 1953년 9월 3일자 지면
참전한 인도 의무부대원 627명, 전쟁 기간 중 환자 21만명 돌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27일 오전 '제2회 한·인도 비즈니스 서밋' 개회에 앞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 1953년 9월 3일 자 조선일보 지면 동판(銅板)본을 전달하며, 6·25 때 한국을 지키기 위해 전장을 누볐던 인도군 이야기를 전했다.

27일 열린‘제2회 한·인도 비즈니스 서밋’개막식에 앞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모디 인도 총리에게 1953년 9월 3일 자 본지 지면이 담긴 동판(銅板)본을 전달하고 있다.
27일 열린‘제2회 한·인도 비즈니스 서밋’개막식에 앞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모디 인도 총리에게 1953년 9월 3일 자 본지 지면이 담긴 동판(銅板)본을 전달하고 있다. 왼쪽부터 수레시 프라부 인도 상공부 장관, 방상훈 사장, 모디 총리, 백운규 산업통상부 장관. /뉴델리=남강호 기자
조선일보는 6·25 휴전 직후인 당시 인도군 1002명이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인도는 6·25 초창기인 1950년부터 1954년까지 6800여 명의 군인을 한국에 보냈다. 6·25 당시 중립국을 표방했던 인도는 전투 부대를 파병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을 지원할 것을 권고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의료지원단, 포로감시단 등 비전투 부대를 파견했다. 인도 의무부대원 627명은 전쟁 기간 21만명의 한국인 환자를 돌봤고 2300회의 수술을 진행하는 등 수많은 부상자의 목숨을 구했다. 동판 기사 속에 등장하는 인도군은 포로 감시 부대로 휴전 이후 포로 관리와 포로 송환 업무를 담당했다. 인도는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 협정에 따라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의장국을 맡기도 했다.

1953년 9월 3일 자 조선일보 지면 동판(銅板)본.
1953년 9월 3일 자 조선일보 지면 동판(銅板)본. 포로 관리 임무 수행을 위해 파견된 인도군들이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인천항에서 대기 중인 인도군의 사진을 담았다. /남강호 기자
방 사장은 "양국 간의 소중한 인연을 밝혀 줄 이야기를 소개해 주겠다"며 대구에 있는 유니 나야르 중령 부부 묘에 대해 설명했다. 6·25 초기 인도 의무부대를 이끌던 나야르 중령은 낙동강 일대에서 작전 중 전사했다. 남편을 그리워하던 나야르 중령의 아내는 2011년 눈을 감으며 "남편의 묘소가 있는 한국에 함께 묻히고 싶다"고 유언했고, 대구 추모공원에 있는 남편 곁에 안장됐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은 나야르 중령의 딸 파바시 모한씨는 현재 미국 워싱턴에서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모한씨는 지난 2012년 "아버지의 기념비를 잘 관리해달라"며 대구 수성구 측에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모디 총리는 방상훈 사장에게 "양국의 특별한 관계는 2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가야국 김수로왕의 비 허황옥 이야기로 화답했다. '삼국유사' 등에 따르면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배를 타고 가야국에 와 김수로왕과 결혼해 가야국의 왕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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