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과학적 증거없는 부실 대응이 낳은 패소...WTO “韓,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이유 못 대"

  • 조귀동 기자

  • 입력 : 2018.02.23 14:40 | 수정 : 2018.02.23 17:57

    2015년 소송 당시 대응 논리 및 증거 확보 안 한 결과
    정부 “재심 판결까지 수산물 수입 안될 것”

    “한국은 특정 상품 수입을 왜 금지하는지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인) 2011년에 내려진 수입 금지 조치는 당시 이용 가능한 정보를 봤을 때 적절했지만, 2013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일부 품목에 대한 수입 금지와 까다로운 검사 요구에 대해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또 한국은 언제까지 해당 조치가 유지돼야 하는지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일본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금지 조치를 둘러싼 무역 분쟁에서 한국 정부의 조치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에서 난 수산물 28종의 수입 금지 및 일본산 식품에 대한 방사성 물질 추가 조사 등이 왜 도입되었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각각의 규제가 운영되는지, 실제 일본산 수산물이 어떤 위험성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된 한국 정부의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게 판결을 내린 패널(일종의 재판관)의 평가다. 정부는 상소(上訴)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재심에서도 이번 판결을 뒤집기는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한·일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규제 분쟁에서 한국의 수입규제 조치가 과학적 근거 없이 이뤄진 것이라며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한·일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규제 분쟁에서 한국의 수입규제 조치가 과학적 근거 없이 이뤄진 것이라며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국 수입 금지 조치 과학적 증거 없어”

    WTO는 22일(현지시각)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가 부당하다며 지난 2015년 제기한 소송에서 한국 정부의 조치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일본이 자국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해 제소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정부는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인근 8개 현에서 생산된 수산물 50종과 인근 13개 현에서 난 농산물 26종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후 2013년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의 수산물을 모두 수입 금지했다. 또 일본산 식품을 수입할 때 방사선 물질인 세슘 함유 여부를 검사하고, 미량 검출 시 기타 핵종 검사(방사능검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일본은 이 가운데 28개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가 부당하다고 WTO에 제소했다. 세슘 미량 검출 시 기타 핵종 검사 증명서를 요구한 것도 차별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2015년 5월 WTO에 한일 양자 협의를 요구한 뒤, 협상이 결렬되자 그해 8월 WTO 판결을 요구했다.


    2013년 손재학 당시 해양수산부 차관과 정승 당시 식약처장(왼쪽부터)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조선일보DB
    2013년 손재학 당시 해양수산부 차관과 정승 당시 식약처장(왼쪽부터)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조선일보DB
    WTO는 이날 판결문 격인 패널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서 WTO는 한국 패소 판결을 내린 핵심 근거로 “과학적 증거 불충분”을 들었다. 2011년 수입 제한 조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린 긴급 대응 조치라 타당성이 인정되지만, 2013년 수산물 수입 제한 및 방사능 검사 강화는 왜 그런 조치를 도입했는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WTO는 “2013년 수입 제한 조치를 도입하면서 한국 정부는 당시 입수 가능한 정보 하에서 인체 유해성 등 필요한 테스트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상당한 기간 동안 수입 규제 조치에 대해서 재검토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한국 정부는 수입 금지 조치와 관련된 과학적 근거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고 패널은 지적했다. 일본산 식품에서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미량 검출 됐을 때, 스트론튬 등 다른 유해 방사능 물질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증명서를 받도록 한 조치도 “왜 그런 검사 과정이 있어야 하는 지 설명이 제시되지 못했다”고 보고서는 서술했다.

    WTO는 이를 근거로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에 대한 포괄적 수입 금지 조치가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SPS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SPS는 과학적 증명 없이 식품 안전을 이유로 수입을 금지하면 WTO가 이런 당사국 정부 조치를 무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2014년 조사 활동 안 한 것도 ‘부메랑’으로 날아와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WTO가 패소 판정을 내리는 근거 가운데 하나였다. 2014년 12월 식품의약안전처는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전문가위원회’를 꾸렸지만 이듬해 2월 핵심 절차인 후쿠시마 원전 인근 지역 해저토와 심층수 채취 조사를 포기했다. 같은 해 5월에는 아예 조사를 중단했다. 이후에도 일본산 수산물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방사능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증거 수집에 나서지 않았다.

    WTO는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2014년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에 대한 검토에 나섰다고 선언했는데, 이후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못했다”고 썼다. 또 “2014년 9월 이후 한국 정부가 자국의 수입 규제 조치에 대한 검토를 어떻게 했었는지 구체적인 활동 내역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 검토 조치가 중단된 이유도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자체가 “과학적 증거 부족”을 뒷받침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과학적 증거없는 부실 대응이 낳은 패소...WTO “韓,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이유 못 대"
    이러한 결과에 대해 식품의약안전처,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는 “WTO 분쟁해결절차에 따른 상소를 제기할 계획”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논리를 내놓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는 상소하더라도 현재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번 판정은 1심에 해당하기 때문에 양측은 60일 이내에 상소할 수 있다. 상소심은 최종심이다. 상소 기구는 다시 60일 동안 1심 법률 판단의 적절성을 심리한 뒤 1심 패널 판정을 확정하거나 파기, 수정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일부 상소 위원이 공석으로 사건이 밀려 있어 60일 기간을 제대로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부는 “최종 판정은 올해 하반기에 나오거나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판결이 진행되는 동안 수입 금지 조치는 계속 유지된다. 산업부는 "기존 수입규제조치는 상소 등 WTO 분쟁해결절차 종료 이전까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WTO 판결 직후 “이 결정을 환영하며, 한국이 성실하고 신속하게 시정할 것을 요구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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