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도전자들]⑧ 최종웅 인코어드 대표 “한국서 안되면 美·日서 기회 찾아라"

입력 2018.02.20 05:30

60다 돼 창업, 한국서 40여 회 투자 유치 실패 실리콘 밸리 도전
소로스·소프트뱅크 투자...글로벌 에너지 데이터 플랫폼 목표

2017년 7월 일본 도쿄. 최종웅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이하 인코어드) 대표는 도쿄만(東京湾)이 내려다보이는 미나토구 소프트뱅크 본사에 앉아 있었다. 일본에 와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고 바다를 건너긴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우리 회사 기술을 일본에서 쓰려나 보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26층 회의실에 들어가자 미야우치 켄 소프트뱅크 대표이사 부사장을 비롯한 최고 임원진 8명이 집결해 있었다. 화면에 슬라이드를 띄우고 회사 소개를 시작한 지 10분 정도 흘렀을까. 미야우치 대표가 갑자기 일어나 걸어 나오더니 ‘오픈 에너지 플랫폼(open energy platform)’이라고 쓴 슬라이드를 가리켰다.

“이 사업 우리가 하고 싶네요.”

실리콘 밸리에 본사를 둔 에너지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인코어드가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1100만달러(한화 120억원)를 투자받은 순간이다. 최 대표는 “식스 밀리언(600만달러) 정도 투자받을 수 있다고 했더니 미야우치 대표가 ‘식스 빌리언(60억달러)?’하고 세 번이나 되묻더라”고 회고했다.

최종웅 인코어드 대표. / 박원익 기자
최 대표는 57세였던 2013년 LS산전 사장직을 내려놓고 실리콘 밸리에 인코어드를 설립했다. 남들이 은퇴를 생각할 시기에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스타트업을 시작한 것이다. LS산전 재직 시절 품고 있던 창업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기 사용량·패턴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스마트미터 ‘에너톡’을 개발했다.

소프트뱅크, 실리콘 밸리 투자회사 포메이션그룹,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글로벌 투자펀드 QSP 등으로부터 인코어드가 투자받은 금액은 총 3250만달러(한화 350억원). 글로벌 에너지 데이터 플랫폼으로 도약을 꿈꾸는 최 대표를 지난 1월 13일(현지시각) 실리콘 밸리 본사에서 만났다.

◇ 한국서 40번 거절당해…실리콘 밸리서 첫 투자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1985년 금성계전(LS산전 전신) 입사 초기에 실리콘 밸리에서 연수했다. 6개월 머물면서 충격을 받았다. 인텔 같은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던 때다. 언젠가 이들처럼 창업해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복귀해 대기업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살다 보니 잊어버렸다. 봉급쟁이 생활을 31년 했다.

LS산전 사장이 되니 살아온 날을 돌아보게 되더라. 대기업 사장까지 했으니 할 만큼 한 것 아닌가. 57세였다.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마음먹고 1년 만에 사표 던졌다.”

-사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2005년이었을거다. 실리콘 밸리쪽으로 출장 왔다가 팰로앨토에 있는 타마린이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는데, 그때 스마트미터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다. 당시 전자식 계량기가 있었지만 크고 불편했다. ‘전기선에 센서 붙이고 실시간으로 전류·전압 계산하도록 만들면 편하고 좋을 텐데’하는 생각에 식당에서 바로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회사 이름 인코어드(ENCORED)에 ‘앙코르(encore)’, ‘에너지 코어(Energy Core)’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 스마트미터 기반의 에너지 데이터 플랫폼이란 뜻이다. 2013년 4월 19일 팰로알토 스탠퍼드 대학 앞 유니버시티 애비뉴에서 회사를 시작했다.”

최종웅 인코어드 대표가 실리콘 밸리 본사에서 인코어드의 사업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 박원익 기자
-핵심 기술은 무엇인가.

“우리는 에너지 데이터 플랫폼을 지향한다. 스마트미터 디바이스를 통해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며 자체 데이터 분석 플랫폼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전기 사용량은 모두 계량기로 측정했다. 그런데 이게 25년 전, 30년 전 개발된 기술이다. 스마트 계량기라고 하는 것도 15분마다 한 번씩 데이터가 저장된다.

예를 들어 에어컨을 끄더라도 15분 후에야 반영되고 어떤 가전기기 때문에 전력 사용량이 줄었는지도 알 수 없다. ‘에너톡’은 1초 단위로 분석이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의 키는 데이터다. 실시간 데이터가 있어야 효과적인 전력 사용량 분석·예측이 가능하다.”

-실리콘 밸리를 택한 이유는.

“실리콘 밸리에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었다. 미국에 자주 다녀서 이곳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실리콘 밸리 자체가 낯설진 않았다.

결정적인 동기는 한국에서 투자를 못 받았기 때문이다. 투자회사 40곳 방문해 피칭(투자 유치를 위한 발표) 했는데 아무도 투자를 안 해주더라. 그땐 솔직히 대기업 사장까지 했으니 내 브랜드만 보고 투자해 줄 알았다. 결국 투자를 받으러 실리콘 밸리까지 건너왔고 여기서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초기 투자는 누가 주도했나.

“가장 주도적이었던 건 조 론스데일(페이팔 출신, 팰런티어 설립자)이었다. 당시 포메이션그룹에 있던 론스데일이 심사를 직접하고 투자 결정을 해줬다. 구본웅 포메이션그룹 대표도 도움을 많이 줬다. 시드(seed·초기 투자)로 350만달러 받았다. 투자 조건 중 하나가 창업을 실리콘 밸리에서 하는 것이었다. 30대 투자가들이 50대 말의 나에게 큰 자극을 줬다.”

◇ 美 전력 수요관리회사·발전회사와 협업 추진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QSP의 투자도 받았다. 비결이 있나.

“시리즈 A 투자(시드 이후 첫 후속 투자)를 조지 소로스의 QSP(Quantum Strategic Partners Ltd)가 리드했다. 포메이션그룹이 도와주긴 했지만, 행운이었다. QSP가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하려고 한국에 방문했다가 잘 안 됐는데 투자자 중 한 명이 우리 회사 한번 보자고 해서 한국 오피스를 방문했다. 투자 결정이 15분 만에 끝났다. 600만달러 먼저 투자하고 추가로 더 투자해 1100만달러 받았다.”

인코어드가 개발한 스마트미터 ‘에너톡’ 스마트폰앱으로 실시간 전기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다. / 인코어드 제공
-소프트뱅크와 손잡은 배경은.

“소프트뱅크가 데이터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더라. 일본에서 전기 소매판매업도 하고 있다. 실리콘 밸리 에너지·데이터 스타트업에 투자하려고 찾다가 인코어드를 발견한 거다.

600만달러 정도 투자받고 싶다 했더니 너무 작다며 1500만달러 투자하겠다고 하더라. 결국 600만달러만 인코어드 본사(북미법인)에 투자하고 500만달러는 일본 합자회사를 만들어 그쪽에 투자하는 쪽으로 이견을 조율했다.”

-실적 개선 압박은 없나.

“좋은 투자자를 만난 것 같다. 대형 투자자들이 실적으로 질책을 안 한다. 다만 3가지 지표 체크만 한다. 가입자 수, 스마트미터 데이터량, 연결된 에너지 용량 세 가지다. 한국 가입자 수는 10만 가구 돌파해 계속 늘고 있고, 데이터량은 500테라바이트를 넘었다.

최단 기간 가입자 수 100만 가구 돌파, 연결된 에너지 용량 기가와트 돌파가 목표다. 우리 기기·서비스 사용자를 늘리는 게 우선이고, 매출과 이익은 그다음 문제라고 생각한다.”

-올해 중점 과제는.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 오피스에서 사업 기반을 닦았는데, 올해부터는 미국 본사에 더 많이 머물 계획이다. 62명까지 늘었던 한국 오피스 인력도 40명으로 줄였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북미 시장을 공략, 완전히 새롭게 창업한다는 마음으로 해보려고 한다.

보스톤에도 오피스가 있었는데, 최근 실리콘 밸리 본사로 다 통합했다. 창업 원년으로 생각하고 미국 시장에 올인해 보려고 한다.”

인코어드 실리콘 밸리 본사에서 근무 중인 이호준 CMO(왼쪽)와 엔지니어 펑이송(가운데). / 박원익 기자
-미국 시장은 어떻게 공략할 계획인가.

“이호준 최고마케팅책임자(CMO)가 지금까지 미국 본사를 전담해서 잘 이끌어주었다. 현재 계획은 일단 미국 전력 수요관리사업자를 파트너로 만드는 것이다. 수요관리사업자는 빌딩, 공장 등 산업용 전기 사용량을 관리해주는 업체를 말한다. 그들과 협력해 우리가 개발한 실시간 수요관리 플랫폼을 적용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주요 업체인 ‘Olivine’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2단계는 전력회사와 손을 잡는 것이다. 배터리, 태양광 사용량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에도 관심 있다. 미국 전력 회사와 한국 관련 업체를 연결해주고 우리 플랫폼으로 최적 운영할 수 있게 해주는 비즈니스도 추진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우리가 개발한 가정용 수요관리 플랫폼으로 오는 6월 시범 사업을 시작한다.”

◇ 글로벌 에너지 데이터 플랫폼 목표…“깨달았을 때 행동해야”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미국에서 창업했으면 미국에서 승부를 봤어야 했다. 한국에서 기반을 먼저 만들고 건너와야겠다고 생각한 점이 아쉽다. 민간 전력회사들이 많은 미국과 한국은 시장 환경이 다르다. 한국 스마트미터 시장 열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미국에서 투자 유치 받고 한국에서 고용 창출한다는 애국심도 있었는데, 처음부터 여기서 고생하고 뛰었으면 다른 상황이 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환경이 많이 다른가.

“한국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다. 함께 사업을 하려고 하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하청 업체로 만들어 버린다. 스타트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도 얼마 못 가고 대기업에 붙어 버리는 일이 많다. 스타트업끼리 협력도 하기 어려운 생태계다.

실리콘 밸리의 경우 아마존도 IFTTT 같은 가전기기 제어·연동 소프트웨어 플랫폼 찾아서 협력한다. 생태계가 다르다. 투자하면 기다려 주는 분위기다. 혁신적인 기업가를 영웅으로 인정하고 대접하는 문화도 부럽다.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같은 사람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인코어드 실리콘 밸리 본사. / 박원익 기자
-경영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는 걸 스타트업 문화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때론 CEO가 강하게 푸시할 필요도 있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가장 빠르게 의사 결정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조직 내 2~3인자가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면 그 사람이 판단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모두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달려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한국 법인은 분리해 IPO(기업 공개) 하는 게 목표다. 북미 법인은 인수·합병(M&A)을 지향하고 있다. 사용자 증가에 맞춰 플랫폼 안정화하는 데 4년 걸렸고 170억원을 썼다. 이를 더 발전시켜 ‘끊김 없는 글로벌 에너지 데이터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싶다.”

-예비 창업자를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깨달았을 때 빨리 행동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최종웅 대표는

1957년 강릉 출생. 부산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충남대에서 컴퓨터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금성계전(현 LS산전)에 입사해 전무, 부사장을 거쳐 2012년엔 LS산전 사장으로 근무했다. 2013년 인코어드 테크놀로지스를 창업한 후 스타트업 설립자이자 CEO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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