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11월 GM본사는 한국 군산공장을 신형 크루즈의 후속모델(J400) 생산기지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GM 노조는 ‘생산 철회는 절대 안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군산시 등 지역사회도 들썩였다. 군산시는 한국GM에 계획을 철회해달라며 나서서 협상에 나서는 등 신형 크루즈 생산에 목을 맸다.
미래발전방안을 내놓으라는 노조의 반발 등으로 궁지에 몰렸던 세르지오 호샤 당시 한국GM 사장은 2014년 7월 미국 디트로이트 본사를 수차례 설득한 끝에 군산공장에서 신형 크루즈를 생산하는 안을 승낙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신형 크루즈는 2017년 2월 출시됐지만, 결과적으로 군산공장 폐쇄를 앞당긴 애물단지가 됐다. 당시 한국GM 내부에서는 신형 크루즈보다는 다른 차를 배정 받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빨리 신차 배정을 받으려는 노조의 욕심과 서둘러 노사 교섭을 마치려는 사측의 조급증이 불러온 예고된 결과였다.
◇ GM본사 전략 변화, 높은 이자 부담, 크루즈 차종 실패 등 경영진 책임
2014년부터 손실을 이어온 한국GM은 2016년 말 기준으로 누적적자가 1조9456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5000억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1차 책임은 경영진에 있다. GM이 2014년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면서 여기로 수출하던 한국GM의 물량이 사라졌다. 여기에 한국GM은 2013년부터 미국 GM홀딩스로부터 높은 이자율의 원화를 차입해 지난 4년간 무려 440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부담해왔다. GM입장에서는 한국GM이 돈을 빼먹는 ATM기나 다름없었다.
군산공장 부실의 결정타는 지난해 출시한 신형 크루즈다. 경영진의 전략 실패로 신형 크루즈는 신차 효과없이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출시시점과 가격, 마케팅 등 모든 부분이 꼬였다. 한국GM은 지난해 2월 신형 크루즈의 조립과정에서 품질 문제가 발견됐다며 출시 시점을 두달 미뤘다. 인도 시기가 늦춰지면서 고객들이 이탈했다.
신형 크루즈의 판매가가 경쟁차 대비 고가로 책정된 것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올 뉴 크루즈의 최초 출시가는 1890만~2478만원대로 형성됐다. 경쟁 모델인 아반떼(1410만~2415만원)나 K3(1395만~2420만원)보다 엔트리 트림 가격이 400만원 가량 높았던 것.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지자 한국GM은 올 뉴 크루즈의 가격을 트림별로 최대 200만원까지 인하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지난해 한국GM의 크루즈는 총1만554대가 팔려 전년보다 판매량이 2.7% 줄었다. 신형모델을 출시했는데, 판매량이 줄어드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같은 기간 크루즈의 경쟁모델인 현대차 아반떼는 총 8만3861대, 기아차 K3도 2만8165대가 팔렸다.
◇ 챙길 것 확실하게 챙긴 노조도 군산공장 폐쇄에 영향
강성노조 문제도 한국GM 부실에 한몫했다. 지난 2016년 한국GM 노조는 임금협상 과정에서 14일간 부분파업을 벌여 약 1만5000대에 이르는 생산 차질을 겪었다. 지난해에도 진통이 지속하다 결국 연내 임금협상을 타결하는데 실패하고 해가 넘어서야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
GM 본사 측은 그동안 수차례 한국의 강성노조 문제를 거론하며 불만을 제기해 왔다. 스테판 자코비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한국GM의 노조가 생산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고, 지난해 퇴임한 제임스 김 한국GM 전 사장도 “GM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인상만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서는 노조의 행태는 스스로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챙길 것은 확실하게 챙겨갔다. 지난 2015년 노조는 회사에 휴업수당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공장의 생산 물량이 감소하기 시작하자, 기본급 인상과 함께 휴업수당을 올리는데 사활을 걸었다.
결국 사측이 양보해 한국GM 노조는 휴업수당을 80%까지 받게 됐다. 휴업수당 80%는 법적으로 정한 지급률 70%보다 10%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현재 군산공장 노동자들은 2년전부터 한달에 6~7일만 일하고 월급의 80%를 받아가고 있다.
또 연간 적자가 5000억원 이상이던 2014~2017년까지 한국GM은 노조원들에게 연간 1000만원 이상의 성과급을 줬다. 임금 인상률도 매년 3~4%에 달했다. 2014년엔 통상임금 확대 판결로 한 해에만 인건비 부담이 1300억원 늘었다. 한국GM 한 근무자는 “회사가 이런 상황인데도, 성과급은 들어오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GM 상황을 보면 한국 경영진은 무능했고, 노조는 자기 잇속만 챙겼다”며 “지금의 한국GM 위기 상황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