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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속철도에 비친 춘절 풍경의 명암

  •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 입력 : 2018.02.13 17:55

    열차객석 앞까지 음식배달 서비스...춘제 기간에도 쉬지 않는 배달원
    고속철도 덕 빨라진 귀향길...고속철 건설 농민공 오토바이 타고 힘든 귀성

    중국 신화통신은 열차 승객이 스마트폰으로 주문한 음식을 다음 역에서 모아 해당 객석까지 배달하는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
    중국 신화통신은 열차 승객이 스마트폰으로 주문한 음식을 다음 역에서 모아 해당 객석까지 배달하는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
    베이징과 상하이를 최고 시속 400km로 달리는 고속철도 일부 객차 좌석 앞에는 QR코드가 부착돼 있다.스마트폰으로 음식배달을 주문할 때 활용할 수 있다. KFC 패스트푸드는 물론 지역 특산 면(面)요리까지 역내 배송센터에 도착한 음식은 열차가 2~3분간 정차할 때 객차로 옮겨져 해당 객석 앞으로 배달된다.

    신화통신이 최근 ‘혀끝의 춘윈(春運⋅춘절 특별 수송)’이라며 전한 풍경이다. 중국의 경제 발전을 보여주는 고속철도와 ‘배달의 기사’ 같은 온라인 음식배달 서비스가 춘윈의 풍경에 스며든 것이다. 중국에서는 2월1일부터 3월12일까지 40일간 진행되는 춘제 특별 수송을 춘윈으로 부른다. 춘윈은 1953년 인민일보에 처음 등장했다.

    중국에서 춘제 공식 연휴는 15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되지만 미리 휴가를 내고 한달 이상 쉬는 근로자들이 많다. ‘인류 최대의 이동’으로 비유되는 춘윈에 올해엔 연인원 30억명이 이동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고속철도는 전세계 고속철 노선의 65%를 차지하지만 아직도 철도가 닿지 않는 지역이 적지 않다.  /블룸버그
    중국의 고속철도는 전세계 고속철 노선의 65%를 차지하지만 아직도 철도가 닿지 않는 지역이 적지 않다. /블룸버그
    올해 춘윈 기간 미국 인구(3억명)보다 많은 4억명이 철도를 이용하고 상당수가 고속철도를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춘윈 때는고속철도 승객수가 처음으로 일반 기차 승객수를 넘어섰다.

    하지만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한 춘윈의 풍경은 그 뒤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지난해 상하이에서 메이퇀(美團)의 온라인 음식 배달원으로 전직한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 왕쥔창씨는 춘제에도 고향을 가지 않는다.

    춘제 기간 임금이 3배로 뛰기 때문이다. 여기에 춘제 전날까지 일하면 1000위안(약 17만원) 보너스가 지급되고 정월 초닷새까지 돌아와도 700위안(약 12만원)의 보너스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혀끝의 춘윈’이 가능한 뒤에는 이들의 수고 덕분이다. 고향까지 고속철도가 달리지 않는 왕 씨는 춘윈의 번잡한 귀향길을 피해 다른 때 고향을 찾을 수 있다고 위로한다.

    국가우정국 발전연구중심 관계자는 신화통신에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귀성 선물을 주문해 귀성객보다 선물이 먼저 고향집에 도착하기도 한다”며 “작년 춘윈 기간에는 매일 1억개 이상의 짐이 배달됐고, 이 가운데 60% 이상이 귀성선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올해 춘제기간 미국 인구보다 많은 4억명이 철도를 이용해 귀향길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상하이 훙차오역 /블룸버그
    중국에서는 올해 춘제기간 미국 인구보다 많은 4억명이 철도를 이용해 귀향길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상하이 훙차오역 /블룸버그
    고속철도, 전자상거래, 택배산업 등의 발달이 만든 새로운 춘제 풍경은 거대한 플라스틱 백을 어깨에 매고 아이 손을 잡고 값싼 일반 열차를 타고 귀향길에 오른 농민공들의 모습을 더욱 부각시킨다.

    베이징에서 출발해 네이멍구 후허하오터(呼和浩特)로 가는 열차에서 신화통신이 만난 한 승객은 ”기차를 타면서 김이 모락 모락나는 홍샤오로우(红烧肉, 간장 양념으로 조린 삼겹살)를 먹는 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지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10시간 이상을 입석으로 가야하는 농민공들도 있다고 SCMP는 전했다. 이들에게 ‘혀끝의 춘윈’은 여전히 사치다.

    올해에도 수십만명의 농민공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고향을 찾는다고 관영 CCTV가 전했다. 최장 1400km에 이르는 길을 밤낮을 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전세계 고속철도 노선의 65%에 해당하는 2만 5000km가 중국에 깔려있지만 아직도 철도가 닿지 않는 고향을 둔 농민공들이 적지 않은 것도 ‘위험한 길’을 택하는 이유다.


    중국 CCTV는 올해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귀향길에 오르는 농민공이 수십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CCTV
    중국 CCTV는 올해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귀향길에 오르는 농민공이 수십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CCTV
    하지만 이들도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고 SCMP는 전했다. 임금을 받지 못해 빈손으로 귀향할지, 도시의 어두운 숙소에서 마냥 임금을 받을 날을 기다려야할 지 고민하는 농민공들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춘제가 다가오면 때로는 중앙정부가 때로는 지방정부가 농민공들의 돈을 받게 만들어 준 사연을 전하는 기사가 이어진다. 중국 정부가 작년 1~11월까지 12만 8000건의 임금체불을 조사해 281만명이 총 224억 5000만위안의 임금을 받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임금체불 문제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정부가 건설사에 월간 단위로 급여를 지불하라고 지시해도 현장에선 자금이 없다는 이유로 먹히지 않는다. 불법 재하청이 만연한 상황에서 돈을 횡령하는 부패가 끊이지 않는 것도 농민공들의 임금체불 문제를 심화시킨다.

    2억 8200만명(2016년 기준)에 이르는 농민공은 저임의 노동력을 제공해 중국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주역으로 비유된다. 세계 최장 노선의 고속철도와 화려한 공항에는 이들의 땀이 배어있다.

    하지만 농민공들은 중국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에 속해있다. 베이징시가 작년 11월 잇단 화재사건 이후 안전을 위해 무허가 건물을 강제 철거하는 바람에 추운 겨울 농민공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이들의 힘든 상황을 보여준다는 게 SCMP의 지적이다.

    ‘이게 중국몽(中國夢)이냐’는 여론의 비판에 베이징시의 ‘디돤런커우(低端人口⋅하층민) 정리 작업’은 중단됐지만 이미 쫓겨난 농민공들이 상당수에 달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하층 계급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을 위협하다고 있다고 전했다.

    오는 21일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왼쪽) 출간 170주년이다. 중국의 계층사회를 그린 공상과학소설로 휴고상을 받은 베이징저뎨  /바이두
    오는 21일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왼쪽) 출간 170주년이다. 중국의 계층사회를 그린 공상과학소설로 휴고상을 받은 베이징저뎨 /바이두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당시 이 소식을 전하면서 2016년 공상과학 소설(SF) 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 중단편소설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하오징팡(郝景芳)의 베이징저뎨(北京折疊, Folding Beijing)를 소개하며 현실의 베이징과 닮았다고 지적했다.

    이 소설은 깨어있는 시간이 철저히 다른 3개 계층이 같은 장소에 존재하는 가상현실을 다뤘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스콧 로젤 교수는 중국의 교육 및 건강 실태를 대대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에는 “또 다른 중국(the other China)”이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은 내달 5일 개막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에서 헌법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넣을 예정이다. 작년 10월 중국 공산당 당장(黨章·당헌)에 삽입된 ‘시진핑 사상’을 두고 중국은 ‘마르크스주의 중국화의 최신성과’라고 강조한다.

    21일은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출간 170주년이고 5월5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다. 모든 사회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규정한 마르크스가 춘제의 풍경에 비친 계급사회를 보고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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