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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칼럼] 제2, 제3의 삼성전자가 나오려면

  • 조선비즈 논설주간
  • 입력 : 2018.02.13 04:00

    [김기천 칼럼] 제2, 제3의 삼성전자가 나오려면
    1위 미국 1508억 달러, 2위 한국 923억 달러, 3위 중국 592억 달러, 4위 독일 439억 달러, 5위 일본 437억 달러···. 인터넷 그래픽 뉴스 사이트인 하우머치(howmuch.net)가 각국의 브랜드 가치 1위 기업을 기준으로 매긴 국가 순위다.

    하우머치는 이를 토대로 세계 지도를 다시 그렸다. 각국 1위 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국토 면적이 비례하도록 했다. 그 결과 오른쪽 끝의 한국과 왼쪽 끝의 미국이 영토 크기에서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는 그림이 나왔다. 한국과 미국의 양강 구도다.

    물론 이 그래픽은 현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 100대 기업 명단에는 아마존(1위), 애플(2위), 구글(3위) 등 미국 기업이 45개나 포함돼 있다. 중국 기업은 공상은행(10위), 건설은행(11위), 알리바바(12위) 등 22개다.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 진짜 G2 국가다. 이어 독일 10개, 일본 7개 등으로 이들 4개국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삼성(4위), 현대차 그룹(79위), LG그룹(88위) 등 3개다. 나름 괜찮은 성적이지만 국내 1위와 2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게 눈에 띤다. 현대차 그룹의 브랜드 가치는 178억 달러로 삼성(923억 달러)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삼성을 빼면 한국은 기업 브랜드 가치에서 별로 특별할 게 없는 나라다.

    기업 시가총액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 2일 현재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2831억 달러로 세계 18위다. 과거 톱(Top) 10에 들어간 적도 있지만 작년부터 미국 주가가 급등하고 중국 기업들이 약진한 탓에 순위가 밀렸다. 삼성전자보다 시가총액이 큰 기업은 거의 대부분 미국(12개)과 중국(4개) 회사다.

    시가총액 100대 기업의 국적은 미국 51개, 중국 13개, 독일 6개, 프랑스 5개, 영국 4개 등의 순이다. 한국은 삼성전자 하나 뿐이다. 국내 기업으로는 SK하이닉스(289위), 셀트리온(442위), 현대차(470위) 등 3개사가 500위 이내에 이름을 올리는 데 그쳤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등 기업 가치와 관련된 다른 지표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작년에 매출액 세계 8위, 영업이익(금융업 제외) 세계 2위의 실적을 올렸다. 다른 국내 기업들의 순위는 알 수 없지만 삼성전자와는 아득한 격차가 있을 게 분명하다.

    삼성전자만 눈에 띄는 이런 현실은 한국 경제의 큰 취약점이다. 국가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고, 만일의 경우 삼성을 대신할 기업이 없다는 점에서다. 국내 기업 환경과 산업구조, 세계 경제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제2, 제3의 삼성전자가 나올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삼성전자 자체가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한국 기업 환경에서는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나오기 힘들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서만 잘 해도 세계 톱 클래스에 오를 수 있다. 한국 기업은 그게 불가능하다. 세계 시장에서 빛을 발하려면 먼저 언어·문화의 장벽과 원천기술을 비롯한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삼성은 경영학에서 강조하는 선택과 집중도 하지 않았다. 하나를 제대로 하기도 힘든 판에 이것저것 벌려놓고 다 잘하겠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성공 사례가 거의 없는 방식이었다. 정경유착의 어두운 유산으로 인한 기업 이미지 하락도 핸디캡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면 삼성전자도 국내 다른 대기업들처럼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실제 1990년대 초반까지 삼성은 국내 1위였지만 세계 시장에선 잘해야 2류 브랜드였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했을 때만 해도 성공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전자는 한국 경제의 축복이기도 하다. 한국적 특성과 환경의 제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생생한 사례다. 외국의 그 어떤 기업보다 삼성전자를 벤치마킹하는 게 한국 기업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무작정 따라할 일은 아니고,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분별할 필요는 있다.

    삼성전자 역시 앞날이 불투명하기는 하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산업은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는 선두 업체들에 상당히 뒤쳐져 있고, 자동차 전장(電裝) 사업 등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새로운 먹거리 발굴이 절실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30조원을 투자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한국 기업들에 하나의 길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삼성전자에 버금가는 기업이 나오려면 먼저 삼성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연구가 있어야 한다. 가까운 성공 사례를 놔두고 환경도 다른 외국의 먼 사례만 찾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런 사실이 대체로 무시되고 있다. 삼성 경영에 대한 일부 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있지만 반향이 별로 없다. 삼성의 성공요인과 관련해 하청업체 쥐어짜기나 정경유착 덕분으로 폄하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삼성을 겨냥해 대기업 규제를 전반적으로 강화하는 식의 정책과 입법이 추진되기도 한다.

    삼성이 현실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흠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삼성 스스로 책임지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삼성전자를 더 잘 활용할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제2, 제3의 삼성전자가 나와야 한다. ‘삼성 배우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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