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사가 5세대(G) 통신 기지국에 중국 화웨이의 통신장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통신사 간 5G 조기상용화 경쟁이 불붙은 상황에서 기술력과 가격 측면에서 장점이 큰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4G 도입 당시 보안상 우려로 화웨이 장비 도입을 포기했던 SK텔레콤과 KT가 이번 5G 네트워크 구축에선 어떤 선택을 내릴지 통신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 DB

◇ 가성비 내세운 화웨이…SK텔레콤과 KT로부터 5G 제안요구서 받아

12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SK텔레콤과 KT가 화웨이에 5G 상용시스템 개발 협력사 선정을 위한 5G 제안요구서(RFP)를 전달했다. LG유플러스는 2013년 화웨이와 4G를 도입한 이후 5G 설비 구축에서도 화웨이와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화웨이와 협력관계인 LG유플러스를 제외하고 SK텔레콤과 KT가 중국 업체인 화웨이의 5G 장비 도입을 검토하게 된 배경으로는 우선 저렴한 ‘가격’이 꼽힌다. 중국산 통신장비 가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국산이나 유럽산보다 절반 이상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추진중인 통신비 인하정책 때문에 통신사들이 가격이 저렴한 화웨이 장비 도입을 검토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화웨이의 기술력도 통신사들에 영향을 끼쳐는 분석이다. 현재 화웨이는 글로벌 1위 장비업체다. 이 회사는 5G 장비개발을 위해 지난 10년간 연구개발(R&D)에만 총 450억달러(약 48조원)를 투자했다. 지난달 16일 화웨이는 중국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과 함께 5G 코어 네트워크 기술 검증 테스트도 마쳤다.

이 테스트는 국제이동통신표준화기구(3GPP)의 최신 규격 기준에 맞춰 진행됐다. 화웨이 관계자는 “화웨이의 5G 코어 네트워크가 국제 5G 기술표준 규격에 부합하는지를 검증한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중국업체인 화웨이에 RFP를 발송한 이유에 대에 오성목 KT 네트워크 부문장(사장)은 “5G는 특정 장비업체(벤더)만이 아닌, 다양한 업체를 고려할 예정으로 특정 업체를 배제할 계획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 SKT는 ‘SK하이닉스’, KT는 ‘5G 상용화 세계최초’ 염두?

회사별로 살펴보면 SK텔레콤(017670)은 화웨이와 협력을 통해 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SK텔레콤이 화웨이 장비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외에도 중국을 반도체 사업의 중요한 생산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중국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현재 SK하이닉스의 전체 D램 생산량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최지우 한국네트워크협회 본부장은 “장비 공급처의 다양한 확보 차원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사업 때문에 SK텔레콤이 중국산 장비 도입을 검토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황창규 KT 회장이 2017년 2월 27일(현지시각) 스폐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7’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2019년 5G 조기 상용화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KT(030200)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목표 실현을 위해 화웨이 장비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통신장비업체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2019년 상반기까지 5G 조기상용화를 위해 기술적인 측면에서 화웨이 장비 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말도 들린다”며 “다른 장비업체들이 기술적으로 화웨이를 따라올려면 반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수 있어 KT가 조기 상용화를 위해 화웨이 장비 도입을 검토해야 했을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지우 본부장은 “업계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삼성이나 에릭슨 같은 다른 밴더들도 기본 프레임과 기술력은 갖추고 있기 때문에 화웨이 장비만 대안은 아닌 것 같다”며 “다만, 화웨이의 장비 기술력이 5G에 가장 최적화된 건 맞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과 KT 측은 “다양한 공급처 확보 차원에서 화웨이 장비 도입도 검토는 할수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가 없어 답변할 내용이 없다”고 답했다.

◇ 정부 입장이 ‘변수’… 보안성 요건 강화될까

SK텔레콤과 KT가 5G 최종 협력사로 화웨이를 낙점할 경우 4G 때처럼 보안 문제 논란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2013년 LG유플러스(032640)가 국내 최초로 화웨이의 4G 롱텀에볼루션(LTE) 통신 장비를 기지국에 도입할 때도 미국 의회와 우리 정부는 중국 통신망이 주한미군 정보를 유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다.

당시 LG유플러스는 미군 기지 근처에는 중국산 장비를 쓴 기지국을 두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고 화웨이 장비 도입을 밀어붙였다. SK텔레콤과 KT도 가성비가 좋은 화웨이 장비 도입을 고민했지만 정부의 보안상 우려를 받아들여 화웨이 장비로 만든 기지국 도입을 포기했다.

허성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보호기획과장은 “정부가 합리적 근거 없이 중국산 5G 장비 도입에 대해 반대 입장을 세우는 것은 국제협약 위반이 될수 있고, 아직 통신사로부터 중국산 장비 도입에 대한 승인 요청을 받은적도 없다”며 “정부가 정한 보안상 요건을 충족할 경우, 당연히 승인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오른쪽).

문제는 정부가 정할 보안상 요건의 강도다. 미국 정부는 4G 도입 당시보다 더 강화된 보안상 요건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미국이 지난 2013년에도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면서 적용된 보안상 요건이 약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미국 측은 5G 장비 보안상 요건이 강화되기를 원하고 있고, 중국산 장비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성비를 앞세운 화웨이 5G 장비를 통신 3사가 채택할 경우 국내 통신 장비시장을 독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최지우 본부장은 “국내 통신장비 생태계를 흔들 가능성이 있다”며 “화웨이는 같이 상생하자고 하면서도 2013년 LG유플러스를 통해 국내에 들어왔지만 국내 업체에 하청을 준적도 없다”고 말했다.

최우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방송기술정책과장은 “아직 5G 주파수 경매도 안했고, 망투자를 결정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화웨이 장비의 국내 시장 독식을 이야기 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다만, 정부는 국내 통신장비 중소업체에 대한 보호를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