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평창올림픽 주인공은 북한이 아니다

입력 2018.02.12 06:00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날인 9일 오후 1시 30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진부중앙로. 평창올림픽을 밝힐 성화가 이곳을 지나 성화대가 있는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의 올림픽플라자로 달려갔다. 진부 거리에서 성화 봉송을 지켜보던 기자의 어머니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이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내줬다.

3시간 20분쯤 뒤 약 1.8㎞ 떨어진 KTX 진부역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도착했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이날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후 KTX 열차를 타고 진부역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KTX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진부역으로 이동하는 내내 통일부 조명균 장관과 천해성 차관,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의 촘촘한 수행을 받았다.

기자는 강원도 산골마을인 평창군 진부에서 나고 자랐다. 내 고향 평창에서 지구촌 최대의 겨울 스포츠 축제가 열리니 남들보다 조금 더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2010년과 2014년 개최권을 캐나다 밴쿠버와 러시아 소치에 내줬을 땐 부모님과 TV로 지켜보며 아쉬워했다. 2011년 7월 자크 로게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외쳤을 땐 감격했다.

그래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결정 이후 벌어진 ‘평양올림픽’ 논란은 안타깝고 불편하다. 북한은 평창이 이뤄낸 올림픽 무대에서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대가로 한국 정부에 각종 대북 제재 예외를 요구하고 국제사회의 제재 공조를 흔들었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개막일 전날인 8일 낮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건군 70주년 열병식을 했다. 매년 4월 25일 기념하던 조선인민군 창건일을 올해 갑자기 평창올림픽 개막 전날로 앞당겼다. 8일 저녁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이 강릉아트센터에서 특별공연을 하며 북한 체제 선전곡을 불렀다. 강릉 통일공원엔 1996년 9월 북한 무장공비가 타고 내려온 잠수함이 전시돼 있다. 무장공비 소탕작전 중 우리 측 사상자 수십명이 발생한 강릉에서 북한 예술단은 버젓이 김씨 일가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10일엔 김여정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친서(親書)를 전달하고 김정은을 대신해 구두로 문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초청했다. 북한은 문 대통령과 접견한 고위급 대표단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대상인 최휘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을 포함시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흠집을 냈다. 10일 강릉에서 치러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첫 경기에서는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이란 의혹을 산 가면을 쓰고 응원해 논란을 일으켰다. 외신에선 “북한 응원단이 모든 관심을 독차지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측은 개막식 참석을 위해 방한 전 “김정은이 평창올림픽의 메시지를 납치(hijack)할까 봐 우려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지금까지 북한의 행보를 볼 때 미국 정부의 이런 우려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평창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온통 북한에 쏠리면서 외국인들은 아직도 평창과 평양을 헷갈려 한다. 미국의 평창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조차 개막 행사 방송 중 자막에 ‘평창, 북한’이라고 잘못 써서 내보냈다.

평창올림픽은 북한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음껏 휘젓고 다녀도 되는 곳이 아니다. 평창올림픽의 주인공은 북한이 아니라, 92개국에서 출전한 선수와 이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전 세계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올림픽 정신을 담은 성화의 불꽃이 평창에서 불타오르고 있다. 정부가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기억되길 원한다면 더는 북한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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