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스위스중앙은행이 100억스위스프랑(원화 11조2000억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한 것을 계기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은 총재 사이의 ‘찰떡 공조’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를 최소 3차례 이상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글로벌 증시가 연일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고 원화 가치가 달러당 1090원까지 하락(환율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거시경제정책의 중추인 기재부와 한은이 시장안정을 위해 공조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 부총리와 이 총재는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합의 사실을 공동으로 발표하면서 이번 계약 체결이 양 기관 사이의 협력의 성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9일 한·스위스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발표를 위해 회동한 이주열 한은 총재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기재부와 한은은 이날 한·스위스 통화스왑 계약 체결 합의를 발표하기 위해 예정에도 없었던 김동연 부총리와 이주열 총재 간 회동 일정을 잡았다.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야 하는 김 부총리와 이 총재는 이날 오후 3시40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 뱅커스 클럽에서 20분쯤 대화를 나눈 뒤 통화 스와프 계약 체결 합의안을 발표했다. 스위스 현지시각 오전 8시에 한은과 스위스중앙은행이 동시에 통화 스와프 계약 사실을 발표하기로 한 사전 합의에 따른 움직임이었다.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 부총리와 이 총재는 서로 말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통화스와프 체결 사실을 알렸다. 마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사전에 각본을 짠것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김 부총리가 먼저 “오늘 총재님과 만나 격의없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인데 국민에게 좋은 소식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운을 떼고, 이 총재가 “한국과 스위스가 통화스왑을 체결하기로 해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 부총리가 “스위스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데 금액은 100억스위스프랑, 미 달러로 106억달러 규모이고 기간은 3년”이라고 설명했고, 이 총재는 “통화스와프는 양국 간 긴밀한 유대관계를 쌓아온 바탕 위에서 금융협력을 한차원 더 강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서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체결한) 캐나다 통화스와프 때와 마찬가지로 기재부와 한은이 협상 전단계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등 긴밀한 공조를 통해서 이뤄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 부총리와 이 총재는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IMF(국제통화기금) 연차총회 기간 중 한중 통화스와프 계약 연장 사실을 알릴 때도 공동발표 형식을 사용했다. 당시에도 사전에 계획되지 않았던 기자들과의 만남을 자청해 김 부총리와 이 총재가 공동으로 통화스와프 계약의 규모와 기간, 형식 등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재부와 한은은 거시금융정책의 중추이지만, 양 기관이 처한 상황 때문에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경기활성화에 주력하는 기재부는 한은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기대하지만, 물가안정이 설립목적인 한은은 경기과열을 항상 경계하는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양 기관은 한은의 금리정책 방향성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도 했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내렸을 때 기재부 관료들은 ‘비공식적’이라는 단서를 달고 강력하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0년 전인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에 어느 기관이 더 주도권을 행사했는지 등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기재부와 한은 간부들이 강만수 기재부 장관과 이성태 한은 총재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노출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연 부총리 부임 후 앙숙 같았던 기재부와 한은의 관계가 바뀌기 시작했다. 김 부총리 취임 후 지난해 6월 13일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한·스위스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만났던 이날까지 3번 공개 회동을 했다. 두 달에 한번꼴로 공개회동을 하며 정책 공조를 논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4일 회동 때는 김 부총리와 이 총재가 무려 100분간 단독 회동을 하며 당시의 급격한 원화 강세 현상 등에 대응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김동연 부총리와 이주열 총재는 과거 청와대 비서관과 부총재보로 일할 때부터 정책 파트너로 자주 만나 회의를 하면서 일을 함께한 경험을 갖고 있다”면서 “깊은 인간적 신뢰감을 공유하고 있는 김 부총리와 이 총재가 정부와 중앙은행 사이의 새로운 협력 파트너십을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총재가 오는 3월말 임기가 종료되기 때문에 기재부와 한은 사이의 찰떡 공조가 계속될 지 여부는 차기 한은 총재에 누가 임명될 지에 달려 있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