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최저임금쇼크]⑨ '최저임금發 정책 충돌'…근로시간 줄이라더니 초과 근무 稅혜택 늘리겠다는 정부

  • 세종=전슬기 기자
  • 입력 : 2018.02.05 17:53 | 수정 : 2018.02.05 17:59

    경기도에서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김 모씨(64세)는 일주일 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 보전 정책인 일자리안정자금을 알아보다가 결국 포기했다.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하려면 직원 1인당 월급여(기본급과 야간·휴일근로 수당 등을 합한 급여 중 세금을 낸 소득)가 190만원 미만이어야 하는데, 24시간 음식을 파는 김씨 가게 직원들은 야간과 휴일 근무 수당이 많아 해당 기준에 맞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김씨는 야간 및 휴일 근무 수당 중 최대 월 20만원(연간 240만원)까지 세금을 면제하는 대상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확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자리안정자금 정책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이 보완책이 시행되면 일자리안정자금 신청 자격을 얻는 직원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현금으로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과 관련해 중소기업, 영세소상공인의 신청이 저조하자 보완책을 잇따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야간 및 휴일 근무 수당 비과세 대상자를 확대하는 것을 두고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 기조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16.4%) 이후 취약계층 일자리 감소 등 후폭풍이 불면서 정부 정책이 꼬이기 시작했다"며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정부, 야간·휴일 근무 수당 비과세 대상 확대…“근로시간 단축과 충돌”

    정부는 현재 생산직 근로자에만 적용하는 야간 및 휴일 근무 수당 월 최대 20만원 비과세 제도를 식당 종업원과 청소원, 경비원 등으로 확대하고, 적용 기준도 현행 월정액(기본급 기준, 야간·휴일 수당 제외) 150만원 미만에서 190만원 미만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이같은 움직임은 일자리안정자금 신청 대상자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일자리안정자금 신청 기준에는 근로자 1인당 월 급여가 190만원 미만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190만원은 기본급과 각종 야간·휴일 수당을 합한 급여 중 세금을 낸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비과세 수당은 월급여 계산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간과 휴일 근무가 많은 서비스 업계에서는 생산직과 같은 초과 근무 수당 비과세 혜택이 없어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정부의 보완책이 시행되면 식당 종업원들과 청소원, 경비원 등도 공장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야간과 휴일 근무 수당 중 월 20만원까지 세금을 면제받는다. 이렇게 되면 서비스 업종의 일자리안정자금 신청 기준이 월급여 19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완화되는 효과가 생긴다.

    정부는 제도 변경으로 약 40만명의 근로자들이 추가로 야간·휴일 근무 수당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생산직 근로자 중 약 50만~60만명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며 “이 제도가 서비스업으로 확대되면 약 40만명이 추가로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보완책은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시간 단축과 충돌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현재 최대 68시간(5일 근무 40시간+휴일 근무 16시간+연장 근무 12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7일 근무 40시간+연장 근무 12시간)까지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근로시간 단축 정책의 핵심은 야간과 휴일 근무를 가급적 하지 말라는 것인데, 비과세 혜택을 주는 야간 및 휴일 근무 대상자를 확대하는 것은 모순된 정책인 셈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최근 ‘근로소득 비과세제도의 현황과 문제점·개선 방향' 보고서에서 “1990년 도입된 생산직 근로자의 야간 근무수당 비과세 제도의 취지는 생산직 업종의 인력난을 개선하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과다한 근로시간을 축소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저소득층 근로를 지원하는 효율적인 제도가 있는 만큼 비과세 목적이 타당한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생산직 근로자에 대한 초과수당 비과세 제도 대신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도입된 EITC는 열심히 일해도 부부합산 연간 총 소득이 1300만원~2500만원 미만인 저소득 근로자와 자영업자 가구에 정부가 연간 최대 230만원까지 세금을 돌려주는 제도다.

    노동계 관계자는 “제도 변경으로 야간과 휴일 근무 수당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늘어나고,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이 가능한 근로자들도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면서도 “그러나 사업주와 직원들이 초과 근무를 더 선호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DB
    조선일보DB
    ◇ 사업주, 4대 보험 가입 부담 더 느껴…“비과세 대상자 확대 효과 지켜봐야”

    야간·휴일 근무 수당에 대한 비과세 대상자가 늘어나면 사업주들의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이 얼마나 증가할 수 있을까. 추정이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미 면세 혜택을 보는 생산직 근로자 중에서도 야간·휴일 근무 수당이 월 20만원을 훌쩍 넘어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사업주들이 일자리안정자금 신청과 관련해 ‘월급여 190만원 기준’보다 ‘4대 보험 가입’에 대해 부담을 더 느낀다는 것도 변수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4일 발표한 '2018년 소상공인 현안 실태 조사'에서 사업주들은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하지 않는 이유로 4대 보험 적용 기준(34.7%)을 가장 많이 꼽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시행 한 달이 지난 1일 기준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자수는 12만8100명으로 전체 예상 대상인원(268만명)의 4.8%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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