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억달러 코인 상품권, 작년말 마구 발행 후 비트코인 가격 폭등

조선일보
  • 임경업 기자
    입력 2018.02.02 03:13 | 수정 2018.02.02 11:25

    ['코인 상품권' 회사와 거래소 CEO는 같은 사람… 거대 사기극?]

    美, 세계 5위 거래소 조사 착수
    美금융당국, 거래소 비트피넥스·가상화폐업체 테더 가격조작 조사 착수

    비트코인 현금구매 막힌 점 이용 1달러=1테더 '구매 상품권' 발행
    비트피넥스서 대량 거래 일으켜
    발행규모 상응 달러 보유 불확실… 지급능력 없는 사기극 가능성 커

    세계 경제계를 뒤흔들었던 비트코인 가격 폭등이 '가상 화폐 거래소가 조작한 것'이라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금융 당국이 본격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미국 뉴욕타임스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지난 31일(현지 시각) "비트코인 가격을 일개 거래소에서 조작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지난해 12월 전 세계 5위권 가상 화폐 거래소인 비트피넥스(Bitfinex)와 가상 화폐 스타트업 테더(Tether) 관계자들에게 소환장을 보냈으며 현재까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비트피넥스와 테더가 가상 화폐의 일종인 '테더 코인'을 불법적으로 대량 발행해 지난해 말 비트코인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이용했다는 의혹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테더 코인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 화폐를 구매하는 일종의 '가상 화폐 전용 상품권'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예견했던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트위터에서 "비트코인 시장의 몰락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비트코인 국제 평균 시세는 1일 오후 10시 30분 현재 9400달러(1008만원) 선으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던 1월 6일 1만7000달러(1824만원)에서 약 45% 하락했다.

    외신들은 테더 코인의 불법 대량 유통이 지난해 연말 비정상적 비트코인 가격 폭등의 원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거래소가 테더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테더 코인을 시장에 유입시킨 다음 비트코인 가격을 '펌핑'(pumping·인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림)시켰다는 것이다. 가상 화폐 업계는 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가상 화폐 상품권 이용한 사기극인가

    테더 발행량 외
    의혹의 중심에는 홍콩에 법인을 둔 스타트업 테더가 발행하는 가상 화폐 테더 코인이 있다. 이 회사가 2015년부터 발행한 테더 코인은 시세가 끊임없이 변하는 비트코인·이더리움 같은 다른 가상 화폐와 달리 1테더 가격이 1달러로 고정돼 있다.

    테더가 인기를 모은 것은 해외 가상 화폐 거래소들의 정책 때문이다. 한국 가상 화폐 거래소는 원화를 입금하고 가상 화폐를 살 수 있지만, 해외 거래소 상당수는 달러나 유로 같은 법정화폐로 가상 화폐를 직접 사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매자들은 테더에 달러를 주고 이에 해당하는 만큼 테더 코인을 받은 뒤, 이 테더 코인으로 다시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구매한다. 가상 화폐를 판매할 때도 거래소에서 대금을 테더 코인으로 받은 뒤 테더 회사에서 현금으로 환전한다. 가격이 고정돼 달러나 마찬가지인 테더 코인이 가상 화폐 거래소에서 일종의 '상품권' 역할을 한 것이다.

    테더는 자신들이 발행한 테더 코인만큼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발행한 모든 테더 코인이 돌아오더라도 지급할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 테더는 지금까지 총 23억 테더 코인, 다시 말해 23억달러(약 2조4700억원)어치가 발행됐다. 문제는 이 회사가 테더 코인을 발행한 만큼 달러를 보유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지난해 9월 테더에 대한 회계 법인 감사에서 약 4억4300만달러(약 4700억원)의 은행 잔액이 확인됐다. 당시 테더 코인 발행량은 4억2000여만 개로 잔액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후 지난해 11~12월 두 달간 19억 테더 코인이 집중적으로 발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은행 잔액이 이에 맞춰 늘어났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테더가 지난해 9월 이후 4개월 동안 별도의 회계 감사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주 테더가 회계 법인과의 감사 계약을 종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테더가 이를 인정하면서 의혹은 불어났다. 지급 능력이 없는 불법 테더 코인을 대량으로 찍어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테더의 배후에 홍콩에 사업장을 둔 가상 화폐 거래소 비트피넥스가 있다는 사실도 지난해 12월 뒤늦게 밝혀지면서 이런 의혹을 키웠다. 두 회사는 모두 네덜란드 출신인 얀 루도비쿠스 반 데르 벨데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가상 화폐 발행 주체와 거래소가 사실상 한 몸이었다는 것이다.

    ◇일부 비관론자 "비트코인 폭락 가능성"

    일부 전문가들은 대량으로 불법 발행한 테더 코인이 비트코인 시세 조작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테더 코인이 집중적으로 발행되는 동안 비트코인 가격은 6000달러에서 1만9000달러로 2배 이상 폭등했다. 미국 금융 당국도 테더와 비트피넥스가 대량으로 발행된 테더 코인을 이용해 비트코인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면서 의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렸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테더 측은 성명에서 "규제 당국의 조사는 우리에겐 일상적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테더 코인 불법 발행을 통한 가격 조작 의혹이 사실로 나타나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 화폐 시장에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상 화폐 거래소가 치밀한 작전 세력이었다면 시장의 투명성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더를 통한 거래 비중은 전체 비트코인 시장에서 약 10%에 이른다. 블룸버그는 "미국 당국의 조사 소식이 알려진 뒤 한 시간 만에 가상 화폐 시가총액이 300억달러(약 32조원) 증발했다"고 보도했고,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사기임이 확인되면 비트코인 가격은 현재의 20%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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