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하이트진로(000080)와 총수 2세인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을 일감 몰아주기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경영권 승계 작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박 부사장이 위법 판단을 받아도 경영권 승계가 원천 차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론이 악화되면 승계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하이트진로가 인력 지원, 통행세 거래, 주식매각 우회 지원 등을 통해 총수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 서영이앤티에 일감과 이익을 몰아준 것으로 보고 과징금 부과 및 검찰 고발 등의 조치를 취했다. 서영이앤티는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 일가가 지분 99.9%를 보유한 가족회사로 하이트홀딩스 지분 27.66%를 보유한 그룹 지배구조상 최상위 회사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왼쪽)과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

박 부사장이 이번 고발로 벌금형 이상의 형을 받게 되면 사회적 파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 교수는 “과거에는 총수 일가가 공정거래법 위반이나 배임·횡령 등으로 실형을 받아도 주요 자리에 복귀했지만, 최근에는 주주의 권한, 여론의 비판이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승계 과정에서 주주나 국민을 설득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의 경우 범죄에 연루된 CEO는 주주들이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지배구조가 투명해지면 중장기적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나쁜 평판을 만들기 때문에 (실적에도) 일시적인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이트진로 측은 “공정위 제재와 경영권 승계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공정위가 제재한다고 해서 지배구조나 지분율에 변동이 생기진 않는다”며 “서영이앤티의 일감 몰아주기 비중은 최대 90% 달했는데, 지속적으로 비중을 줄여 현재는 20%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주류 업계는 공정위의 이 같은 조치로 업계에도 적지 않은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 조치는 공정위가 부당행위를 하는 재계에 큰 시그널을 주고 있는 것”이라며 “재계는 이를 계기로 기업 투명성을 높이는 데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정위는 박 부사장이 2008년 서영이앤티를 인수한 직후부터 하이트진로가 부당하게 이익을 몰아준 것으로 파악했다. 하이트진로는 당초 OCI그룹 계열사인 삼광글라스에서 맥주 캔을 구매했으나, 이를 서영이앤티를 통해 구매하면서 1캔당 2원씩 총수 일가 회사에 지급했다.

신봉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은 “총수 일가가 지배력 강화 및 경영권 승계를 위해 장기간에 걸쳐 법 위반을 명확히 인지하고도 각종 변칙적인 수법을 사용해 부당지원을 했다”며 “공정거래질서를 심각히 훼손한 행위를 적발하고 엄중히 제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