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ㆍ조세

지급액 눈덩이 고용보험기금...최저임금 급인상 부담에 미가입자까지 혜택 준다니

  • 세종=전슬기 기자
  • 입력 : 2018.01.14 07:15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고용보험 미가입자 지원 확대 등으로 고용보험기금 지급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보험을 통해 조성된 고용보험기금은 실업급여, 출산전후휴가급여, 육아휴직급여 등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안전망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실업급여와 출산전후휴가급여 지급액도 늘어나는 구조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전년대비 16.4%나 올라 실업급여와 출산전후휴가급여 지급액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보험기금이 걷어들이는 돈 보다 내야 할 돈이 더 많아지면서 오는 2020년으로 예상된 적자 전환(연간 기준 총지출이 총수입보다 많아지는 것)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보험 가입 사업장은 물론 미가입 사업장까지 고용보험기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적자 전환 시기가 더 빨라질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사회보험 중기재정추계’에 따르면 2020년부터 고용보험기금의 적립금이 줄어드는 적자 상태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총지출이 총수입보다 많아지면서 그동안 쌓아놓은 적립금을 꺼내 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5년 고용보험기금의 적자 규모(총지출-총수입)는 2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말 기준 고용보험기금 누적액은 5조원 수준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최저임금 인상에 고용보험기금 지급액도 덩달아 증가

    고용보험은 의료보험, 국민연금, 산업재해보상보험과 함께 4대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다. 1인 이상(만 65세 이후 신규 취업했거나 초단기 근로자(1주 15시간 미만) 중 3개월 미만 근무한 근로자 제외)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보험료율은 각 근로자 월급의 1.3%(사업주 0.65% 부담, 근로자 0.65% 부담)다.

    실업급여액과 출산전후휴가급여액는 최저임금에 비례한다. 실업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90%다. 올해 하루치 하한액은 지난해 보다 7632원 증가한 5만4216원으로 결정됐다. 상한액도 5만원에서 6만원으로 올랐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해고자가 늘어나 실업급여 대상자는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전후휴가급여 하한액도 최저임금을 기반으로 산출된다. 올해 하한액은 160만원으로 지난해 보다 10만원 늘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별개로 실업급여액과 육아휴직급여액의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7월부터 실업급여액을 실직 전 3개월 평균임금 50%에서 60%로 상향 조정하고, 지급 기간도 30일 더 늘리기로 했다. 내년부터 육아휴직급여 상·하한액도 각각 현행 100만원, 50만원에서 120만원, 70만원으로 인상할 계획이다.

    고용보험기금에서 지급해야 할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고용보험기금은 이미 여유 자금 적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고용보험기금은 대량 실업 발생을 대비하기 위해 누적 적립금을 연간 지출액의 1.5배~ 2배 수준을 유지해야 하지만 최근 1 안팎을 기록하며 법정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6년 고용보험기금 실업급여사업 지출액만 5조8557억원으로 누적 적립금 규모인 4조9371억원보다 많았다.

    지난해 8월 기준 근로형태별 고용보험 가입률/출처=통계청
    지난해 8월 기준 근로형태별 고용보험 가입률/출처=통계청
    ◆ 정부 고용보험 미가입자에게도 비슷한 혜택 검토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 악화를 막으려면 고용보험 가입자를 늘리거나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그러나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71.2%에 그쳤다. 정규직은 85.9%, 비정규직은 44.1%였다. 이중 한시적(기간제·비기간제) 근로자의 가입률은 61.3%, 아르바이트 등 시간제 근로자는 23%에 불과하다.

    고용보험 가입률이 낮은 이유는 영세 사업주들이 보험료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사업주는 고용보험을 가입하면 의료보험, 국민연금, 산업재해보상보험료도 내야 한다. 또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원의 급여가 오르면 사업주의 보험료 부담도 늘어난다. 올해 최저임금 7530원 기준 근로자 1인당 사업주의 4대 보험료 부담액은 월 15만원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사업주가 직원의 4대 보험 가입을 꺼릴 수 있는 구조다. 정부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업장만 일자리안정자금(최저임금 인상분 13만원 지급)을 지원받을 수 있다면서 4대 보험 가입을 적극 독려하고 있지만 사업주들은 오히려 4대 보험 가입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

    금재호 과학기술교육대 교수는 “정부가 4대 보험에 가입하는 소상공인들에게 보험료 절반을 2년동안 세액공제 형식으로 지원해 주겠다면서 가입을 독려하고 있지만 한시적인 보험료 지원만으로는 인건비와 사회보험 부담금의 지속적인 증가를 감내할 수 있는 사업자는 많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라면서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사업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오히려 고용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혜택을 늘리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미가입 사업장에 출산전후휴가급여, 육아휴직급여 등 모성보호정책을 지원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많아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 이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도 재정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는 고용보험기금이 미가입자까지 떠안을 경우 빠른 시일 내 적자 전환은 불가피하다. 또 보험은 가입자에 한해 혜택을 보장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미가입자 지원은 고용보험기금 설립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정부는 이러한 논란을 감안해 고용보험기금이 아닌 일반 예산을 미가입자 지원에 투입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부처간 고용보험 미가입 여성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라며 “고용보험료 지원과 일반 재정 지원 등 모든 가능성을 연계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미가입자 지원은 고용보험 가입률을 떨어트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심지어 정부는 고용보험기금의 부담이 커지자 보험료율 인상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부가 고용보험에 대해 사업주 가입을 독려하면서도 보험료 인상을 검토하고, 사업주 미가입이 불법이라면서도 미가입자를 지원하는 상반된 정책을 계속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들이 고용보험 가입률을 올리기는커녕 더 떨어트리면서 기금 재원 부족으로 가입자들만 피해를 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고용보험의 목적에 맞지 않는 사업들을 정리해 기금의 부담을 줄이고, 사업주와 근로자들이 가입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게 일관성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출산전후휴가급여와 육아휴직급여 등은 건강보험료나 일반 재정으로 지원하고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며 “고용보험기금을 원래 목적에 맞게 재정비를 하고, 국세청이 가입 여부와 상관 없이 통합해 보험료를 걷는 식으로 징수 방식을 변경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고 보험료 부담을 느끼는 사업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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